[ART insight] 내일을 살아갈 오늘의 나에게

Fake it, 'till you make it
글 입력 2019.07.01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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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전환점이 된 사건이 있나요?”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원서를 넣을 대학을 정하던 순간이다. 그때의 나는 딱히 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지 않은 것도 없었던 평범한 고3이었기에 안정적인 전공과 성적에 맞는 대학을 선택했다. 대학에 온 이후에는 그 순간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맞지 않는 전공을 공부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진로에 대한 혼란과 나만 빼고 모두가 각자의 분야에서 빛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 사이에서 자격지심이 자라났다. 지금의 방황을 만든 내 인생의 전환점, 전공을 정하던 바로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20살의 나는 수도 없이 생각했다.


그 순간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어른이 되었고, 대학에 입학했고, 사는 곳이 바뀌었고,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전환점이 맞긴 하다.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가장 많은 변화가 일어난 시기였으니까. 그런데도 그전의 삶과 그 이후의 삶이 묘하게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인은 ‘나’였다. 20살의 나는 여전히 우유부단하고, 소심하고, 질투가 많고, 쉽게 부서지고 흔들리던 19살의 나 그대로였다. 변화를 두려워하던 19살의 나는 20살이 되어서도 나의 익숙하고 안전한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은 바뀌었지만, 내가 바뀌지 않았기에 초라하고 연약한 나의 세계는 그대로였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환경 말고, 내가 가장 많이 바뀐 시기가 언제였는지.




Fake it, ‘till you make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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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홀리데이를 떠나기로 결심한 게 언제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인생에 한 번쯤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해봐야지, 라는 막연한 생각은 항상 하고 있었다.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한 건 지난 9월 즈음이다. 휴학을 하고, 비자 서류를 준비하고, 짐을 챙기면서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모든 준비가 끝났을 즈음엔 막연한 걱정과 두려움이 밀려들었지만, 애써 미뤄둔 채로 지난 3월 밴쿠버행 비행기에 올랐다.


20살의 나는 19살의 내가 만들어놓은 안전지대 바깥으로 나가지 못했다. 새로운 사람과 섞이는 게 무서워서 모임이란 모임은 죄다 피했고 익숙한 장소에서 익숙한 것만 하는 편안한 일상을 살았다. 하지만 평화롭던 나의 안전지대는 밴쿠버 도착과 함께 처참히 무너졌다.


이곳에서는 안전지대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커피 주문이나 기본적인 행정 업무와 같은 사소한 일상조차 하나의 도전이었다. 과 모임조차 잘 나가지 않던 나는 영어공부를 위해 매일매일 새로운 사람과 만나야 했고, ‘Outgoing’한 성격을 최대 장점으로 치는 이곳에서 일을 구하기 위해 팔자에 없는 밝은 척도 열심히 해야 했다. 그야말로 ‘살기 위해’, 안전지대 밖으로 나가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아도 편안히 지낼 수 있는 안전지대 안에서 살던 나는 바깥의 세상으로 매일매일을 한 발자국씩 나아갔다. 생판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 걸기, 직접 발로 뛰며 일자리 구하기, 다양한 모임 참석하기 등등 평소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것들이 일상이 되었다. 그동안 기를 쓰고 피해 온 변화가 일상이 되자 불안은 틈만 나면 나를 덮쳐왔다. 낯선 타지에서 매일매일을 나 자신을 깨 가며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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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동시에, 재미있었다. 새로움으로 가득 찬 하루가 끝나면 진이 다 빠졌지만, 안전지대 바깥에서 발견한 새로운 나를 보는 것은 기대 이상으로 짜릿했다.


낯을 심하게 가리던 나는 어느새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먼저 ‘How are you?’라는 인사를 건넬 수 있게 되었고, 외국인 손님만 오면 얼어붙던 나는 어느새 저녁 시간만 되면 줄이 길게 늘어서는 카페에서 영어로 손님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물론 불안했다. 새로운 도전은 곧 불확실함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나와, 그 과정에서 변화해가는 내 모습이 좋았다.


“Fake it, ‘till you make it!”


밴쿠버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즈음, 이곳에서의 생활을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던 내게 룸메이트가 해 주었던 말이다. 무언가를 이루어낼 때까지 그런 척하라. 변화는 어쩌면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자신이 없어도 있는 척, 도전하는 게 무서워도 무섭지 않은 척 익숙한 나에서 벗어나 보는 것. 그렇게 편안한 나에게서 벗어나면,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레인쿠버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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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는 ‘레인쿠버’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비가 많이 오는 도시다. 가을부터 겨울까지가 본격적인 레인쿠버 기간으로, 12월에는 평균 20일 정도 비가 온다. 내가 밴쿠버에 도착한 3월은 이보다는 덜했지만, 여전히 비가 오거나 구름이 낀 날이 한 달 중 절반을 넘었다.


비가 오거나 구름이 낀 밴쿠버는 사뭇 우울한 분위기를 풍긴다. 칙칙하고 우중충한 밴쿠버의 하늘 아래서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아름다운 해변과 공원이 많은 이곳이지만, 날씨가 받쳐주지 않으면 칙칙한 분위기만이 느껴질 뿐이다. 반면 맑은 날의 밴쿠버 날씨는 가히 환상적이다.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고 여름에도 20도를 웃도는 따뜻한 날씨, 파란 하늘과 그림 같은 구름, 키 큰 나무들과 바닷가, 저 멀리 보이는 설산의 풍경이 합쳐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맑은 날에는 간만의 햇살을 즐기기 위해 공원과 바닷가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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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곳에서 날씨가 사람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밴쿠버 날씨는 내게 불안함의 창구 같은 것이었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긴장하고 변화하며 살았던 탓일까, 한 겹씩 나를 깨어나가는 일상에서 저만치 미뤄두었던 불안함들은 먹구름과 소나기를 핑계로 한 번에 쏟아져 내리곤 했다. 그러다 해가 뜨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끔히 사라졌다. 그러다 또 구름이 몰려오면, 이때다 싶어 밀려오는 불안과 걱정에 다시 허우적대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익숙한 나와 새로운 나 사이에서 흔들리며 살아갈 내게 필연적으로 다가올 불안을 그냥 안고 살아가기로 했다. 먹구름이 끼고, 해가 뜨고, 비가 내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듯, 이 모든 불안과 흔들림을 그저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자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새로운 내일이 불안하고 두렵지만, 그만큼 편안하고 익숙한 세계에서 벗어나 변해가는 나 자신이 좋아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 흔들리며 살아갈 것이다.


날씨 하나에도 끊임없이 흔들리며, 익숙한 나를 한 겹씩 깨고 내일을 살아갈 오늘의 나에게 이 글을 바치고 싶다.



[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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