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미션] Overture : 입덕의 서곡 - 뮤지컬 노트르담드파리

첫, 이 글자에 새겨진 설렘
글 입력 2019.07.02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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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첫 만남, 첫 연애, 첫 입학... '첫'만큼 마법 같은 단어가 또 있을까. '첫'이 수식한 단어가 무엇이든 간에, '첫'은 온갖 설렘과 두근거림으로 그를 포장한다. 처음만큼 서툴 수 있고, 설렐 수 있고, 기대할 수 있다는 것, 그게 바로 '처음'이라는 포장지의 매력이다. 포장지 안에 숨겨진 본질이 형편없다 하더라도, 처음은 항상 매끈한 추억으로 머릿속에 새겨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이 오랜 연뮤(연극, 뮤지컬) 덕질에도 처음이 있었을 텐데, 오늘은 그 처음에 대해 회고해보고자 한다. 잘못 끼워도 단단히 잘못 끼운 그 단추의 기원을 찾아서.



Overture : Notre Dame de Paris


나의 첫 뮤지컬은 '캣츠'였다. 내한공연으로 기억한다. 아주 어렸던 나에게 '캣츠'는 무서운 분장을 한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언어(영어로 추정)로 노래를 부르다가 객석을 가로지르는 쇼였다. '캣츠'는 화려하고 개성적인 고양이 분장을 한 배우들이 등장하는 뮤지컬인데, 그 웅장함과 화려함이 어린 나에게는 너무 어려웠던 것 같다.

그 후 '지킬앤하이드'와 '오페라의 유령'도 관람했던 기억이 있다. 특히 '오페라의 유령'은 현재 9년째 무대에 돌아오고 있지 않기 때문에, 흐릿하게나마 남아있는 팬텀과 크리스틴의 기억이 너무나 소중하다. 무대의 매력을 알게 된 것도 이때쯤이었던 것 같다. 왜 사람들이 이 비싼 돈을 주고 이 쇼를 보는지(뮤지컬이라는 단어를 몰랐을 때였다),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가 휘청일 때 조금 깨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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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난 내가 커서 한 달에 공연을 열 번 넘게 보는 덕후가 될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모든 것은 중학교 2학년 겨울, 음악 선생님이 보여 주신 '노트르담드파리' 파리 초연 DVD로부터 비롯되었다.

'노트르담드파리'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이 원작이다. '노트르담의 꼽추'로도 잘 알려진 이 작품은 19세기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을 배경으로 한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집시 에스메랄다를 사랑하는 꼽추 콰지모도, 콰지모도를 돌봐주고 길러주었던 위선적인 신부 프롤로, 그리고 약혼자가 있음에도 에스메랄다에게 눈을 돌린 페뷔스, 이 세 인물이 등장한다. 그리고 음유시인인 그랭구아르가 극 전체의 해설자 역할을 겸해 극을 이끌어간다.

'노트르담드파리'는 성스루(sung-through) 뮤지컬이다. 대사 없이 노래로만 이루어진 뮤지컬이기에 연극이나 드라마, 영화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조금 이질감을 느낄 수도 있다. 뮤지컬, 하면 농담처럼 따라오는 편견 중 하나도 성스루 뮤지컬과 관련이 있다. "밥 먹었니?" 등의 간단한 일상적 대사에도 음을 붙여 과해 보인다는 편견 말이다.




하지만 이는 정말 편견에 불과하다. 대다수 성스루 뮤지컬은 일상적 대사보다 은유적 가사가 훨씬 많기에 이질감이 크게 들지 않는다. 물론 연극보다 집중력이 떨어질 수는 있지만, 아름다운 선율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성스루 뮤지컬의 매력은 충분하지 않나 싶다. 내가 '노트르담드파리'에 매료된 이유도 넘버 때문이었다.



첫눈에, 아니 '첫귀'에 반하다


'노트르담드파리'의 첫 넘버인 '대성당들의 시대'를 듣고 나서 나는 운명을 직감했다. 브루노 펠티에의 부드럽지만 진한 목소리로 호소력 있게 전달된 멜로디는 내 마음속 어딘가에 안착해 아주 오랫동안 떠나지 않았다. 매끄럽게 종이 위를 배회하면서 새카만 흔적을 새기는 흑연처럼, 브루노 펠티에의 목소리는 내 머릿속에 아주 진한 흔적을 남겼다.




브루노 펠티에는 '노트르담드파리'의 초연 멤버 중 하나로, 음유시인 그랭구아르를 연기한 뮤지컬배우다. 현재까지도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고, 한국에서도 종종 콘서트를 열곤 한다. 하지만 외국 배우다보니 한국에서 실물을 마주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콘서트를 여는 날이면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공연에 참석했다. 정말 '무슨 일이 있어도' 공연장에 갔다.

2015년, 브루노 펠티에가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었다. 나는 당연히 몇 달 전부터 티켓을 사두고 하루하루 설렘 섞인 기다림을 견뎠다. 하지만 신도 무심하시지, 나는 공연을 한 달여 앞두고 망막을 수술해야 하는 악재에 처해버렸다. 학교도 3주 가까이 빠지고, 정상적인 생활이 전혀 불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표를 취소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공연 며칠 전에 내 눈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고, 간신히 실눈을 뜰 수 있는 정도까지 회복이 되어 공연장에 무사히 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때부터 기적(?)을 믿기 시작했는데, 평소에는 아주 잠깐만 눈을 뜨고 있어도 찌르는 듯한 통증 탓에 눈물을 줄줄 흘려야 했던 내가 두 시간 공연 내내 두 눈을 번쩍 뜬 상태로 멀쩡히 관람했기 때문이다. 집에 오는 차 안에서는 한 번도 눈을 뜨지 못했지만. (물론 지금 내 눈은 지극히 건강하다.)

아무튼, 기적과 운명, 이런 극적인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건 아무래도 극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내 통장과 체력, 가끔은 멘탈도 가차 없이 부숴버리는 게 공연이지만, 동시에 내 갈증과 빈틈을 조금이나마 채워주는 것도 공연이다. 인생의 2%가 부족하다고 해서 곧바로 죽음과 마주하는 건 아니지만, 그 2%가 주는 행복감이 내일을 살아내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그 2%, 나에게 공연이란 그런 것이다.

*

공연을 향한 나의 절절한 외사랑은 여러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여전히 처음은 너무나 설레고 신선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뮤지컬 '노트르담드파리'에서 콰지모도가 보여준 순정처럼, 아무리 공연이 내 통장에 상처를 주고 체력에 공격을 가해도 나는 무대를 짝사랑한다.

오늘의 인터미션 넘버는 뮤지컬 '스타마니아' 속 삽입곡, 브루노 펠티에의 S.O.S입니다.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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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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