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나와 너에 관한 해묵은 단상 - 연극 '결투' 프리뷰 [공연]

나는 누구일까
글 입력 2019.07.02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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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갈수록 세계는 점점 넓어지는데 개인의 세계는 점점 좁아지는 것만 같다. 하루에 수백, 수천 명이 내 옆을 스쳐가지만 그들의 이름과 성격은 알 수가 없다. 만나는 사람만 만나고, 하는 일만 하고, 가는 곳만 가는 생활에 편안함을 느끼다가 가끔 안락이 권태로 진화할 즈음 우발적인 만남과 사건을 동경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과 여유가 허락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시 세계를 좁혀버린다. 타인에게 상처 받기보다는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낫고, 나 하나도 건사하기 힘드니 감당치 못할 관계는 구태여 늘리지 않는 것, 현대인의 새로운 생존 방식이다.

20세기 신자유주의가 끌고 온 여파는 참으로 거대하다. 사회의 모든 부조리와 인간성의 몰락을 모두 신자유주의, 이 다섯 글자에 귀인해버리는 것도 같지만, 이전의 사회와 판이한 세상을 만들어 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경쟁과 승리에 매몰된 채 주위를 살피지 않아 사회가 부실해졌다는 비판은 이제 진부하다. 연대와 애정의 소멸은 신자유주의를 모른다 하더라도 피부로 느낄 수 있으니.

이제 바야흐로 21세기, 그렇다면 2019년의 사회와 인간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이 진부한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어쩌면 연대의식과 인간애에 대한 필요성까지 증발된 게 아닌가, 하는 회의적 물음도 가져본다.

2019년 현재,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각자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눈길을 돌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관심을 끊어버렸다. 이 불행한 공식에서 탈피한 예외적 소수가 사회를 뻑뻑하게나마 굴러가도록 돕는 윤활제가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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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일까


연극 '결투'는 나 자신의 분열과 싸움을 그리며 진정한 인간다움과 관계에 대해 질문한다. 나 자신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나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 그리고 타인과 나는 어떤 방식으로 공존할 수 있는지. 사회나 윤리 수업 시간에 한 번쯤은 토론해보았던 질문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해묵은 질문이자 고전적 고민거리가 바로 '나'와 '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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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와 '영향을 주고받는 일'이 완전히 비폭력적일 수 있을까?

- 연출의도 中


나를 구성하는 세계에 대해 관심도가 떨어지는, 이 슬픈 선로에서 탈피한 예외적 소수는 '예민충'이 되었다. 혐오 사회 내의 혐오를 지적하면 '가뜩이나 피곤한데 정말 피곤하게 산다.'와 같은 한숨이 되돌아온다. 피로가 혐오를 이겨버린 이 사회 내에서 우리는 점점 더 무뎌지고,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있다. 내가 가하는 폭력성에 대한 역치는 높아져만 가면서 상대에 대한 이해는 점점 더 얕아져만 간다.

결국 이 사회에서 우리들의 관계는 폭력성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강자와 약자의 이분법 역시 누군가 더 폭력적이기에 조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폭력성이 권력을 담보할 수 있기에 생겨난 것이다. 상대를 밟고 일어서야 타인들보다 높은 시선에서 세상을 관조할 수 있는 사회, 말만 들어서는 거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인 것만 같은 사회를 누가 생산했을까. 바로 우리 자신이다.

하지만 이 사회에 종말을 선고하지 않는 까닭은 아직 생존해있기 때문이고, 아직 갈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나는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너는 어떻게 나와 공생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이 사회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 연극 '결투' 역시 이 오래되고 유효한 단상을 다룬다. 진보보다 연결을, 경쟁보다 인간을 되돌아보게 될 '결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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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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