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무 것도 찾지 않는 방랑자의 여행기 [여행]

#4 우리는 어딘가를 그리워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
글 입력 2019.07.06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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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찾지 않는 방랑자의 여행기

#4 우리는 어딘가를 그리워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

Opinion 민현




[8] 로마&바티칸, 예술과 역사의 도시



3주 동안 나를 설레게 했던 스페인을 지나 이탈리아로 떠나왔다. 이름만 들어도 무수한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로마’. 과거의 영광을 간직한 채 우뚝 솟아있는 콜로세움과 판테온 등 2천년이 지난 건물들과 이를 보러온 수많은 관광객들, 그 관광객들에 조금 피곤해진 로마인들이 모인 도시. 그리고 어릴적 한번쯤 스쳐봤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 속에 자리잡았을 그 로마에 도착했다.

 

솔직히 처음 도착했을 때 로마는 더러운 거리, 불친절한 사람들, 더운 날씨가 오묘하게 합쳐진 불쾌함으로 나를 압도했다. 그 불쾌함을 이겨내기 위해 스페인에서 늘상 하던대로 밤늦게까지 맥주를 마시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아마 내가 걸어본 길 중에 가장 위험했다. 로마에선 절대 혼자 밤 늦게 걸어다니지 말라는 충고가 그때서야 퍼뜩 생각났고, 무서운 마음에 조금 더 빠른 걸음으로 무사히 도착했다, 다행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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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린 시절 나를 설레게 했던 신화들과 지금까지 나를 괴롭히는 그 역사를 직접 눈으로 볼 시간이다. 다음날, 나는 쇠사슬 성당 - 콜로세움 - 카라칼라 욕장 - 대전차 경기장 - 진실의 입 - 판테온 - 수많은 광장들로 이르는 워킹투어에 나섰다.


나 홀로 워킹투어에다가 그 더운 날씨에 금방 지쳤지만, 어차피 2천년 전 사람들도 이 동네를 다 걸어다녔을 거라는 생각에 계속 걸었다. 한국사람들이 정성스레 차려주는 한식이 고파 신청한 민박집 사장님은 그렇게 피곤에 젖은 나를 보고는 작은 컵라면 하나를 선물로 주셨다.


다음날, 체력과 정신력을 모두 요구하는 바티칸에 발을 들였다. 아테네 학당, 천지창조, 라오콘 군상 등 어디선가 한번쯤 봤던 그 작품들을 눈 앞에서 보니 감동이 밀려왔다. '천재'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르네상스 삼총사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다빈치는 나에게 '이게 바로 예술이다.'라는 말을 작품으로 말한다. 사실 엄청난 게 와 닿지는 않았다. 이전 학기에 미학 수업에서 어느정도의 배경 지식을 쌓고, 미술 공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유는 아마 예술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은 종교를 바탕으로 한 유럽 문화에 대해 너무 생소했기 때문이 아닐까.


나에게는 종교라고 해봤자 지금까지 절에 몇번 들락날락했던 게 전부였기 때문에 신을 믿는 사람들이 감동하는 장면이 굉장히 신기했다. 그들에게는 그 작품들이 예술작품이자, 자신의 믿음에 대한 어떤 신념을 갖게 해주는 의미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럽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들이 늘 곁에 두고 사는 예술과 종교에 대해 깊게 이해해야 한다. 다음에 올 때는 그 문화를 내 안에 조금 더 깊게 쌓고 오고 싶어졌다.



* 역사


역사에 대한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로마는 로물루스나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같은 위대한 황제들이 세웠지만, 그 로마를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기억하게 만든 건 르네상스를 세운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다빈치와 같은 예술가들이다. 찬란한 역사와 예술을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한 도시는 단언컨대, 로마 하나 뿐이다.


내가 걸었던 모든 길들이 예전 로마 사람들이 걸었던 길인데다가 그 길에서 둘러보면 모든 돌덩이들이 정말 엄청난 유적이었다. 그래서 엄청나게 웅장한 로마의 모습에 압도 된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우리나라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이러한 유물이나 예술이 없다고 말했을 때는 솔직히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나무로 지어진 우리나라의 문화재들은 다 타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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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역사의 가치가 떨어지는 건 아니다. 로마에는 로마의 역사가 있고, 서울에는 서울의 역사가 있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역사의 우열을 가리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못 보게 된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저 남아있는 유물들이, 예술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조용히 감상할 뿐이다.


당연히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우리는 눈으로 보고 상상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할 일은 어떤 역사가 더 우월했는지 평가하는 게 아니라 그 역사의 단면을 조금이라도 볼 수 있음에 감사하는 게 아닐까.




[9] 폼페이- 포지타노 - 살레르노



로마가 자신의 역사를 사람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천년이 넘는 시간 노력했다면, 폼페이는 그 역사를 화산재로 덮어서 지켜왔다. 사실 엄청나게 더운 열기 때문에 내가 화산재에 덮이는 기분이었다. 로마의 거대한 유적지를 보고 온 탓인지, 폼페이의 돌덩이들은 사실 나에게 큰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 유럽 여행하면  꼭 오고싶은 도시 중 하나였는데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지는 않아 더 아쉬웠다. 포지타노라는 관광지 마을에선 지나가는 한국인들에게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다. 외국인이 정말 많은 제주도의 한 해안가에 온 것처럼 한국인들이 정말 많았다.


살레르노는 카타니아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잠깐 머물렀던 이탈리아 중부 해안의 작은 마을이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전 세계 어디에나 있다는 중국인도 없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불안감을 느꼈다. 살레르노에 오지 못할 가능성에다 혹시 무슨 일을 당하지 않을까, 내일 내가 탈 배는 잘 준비되어 있을까 하는 걱정이 꼬리를 물자 어깨를 누르는 가방이 점점 무거워졌고 사람들의 시선도 부담스러웠다. 호스텔도 없는 작은 마을에서 싼가격이지만 그래도 부담되는 B&B까지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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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우연히 이곳에 5일이나 머무는 사람을 찾았고, 다행히 저녁 한끼에 숙소까지 쉐어해주셨다. 앞에 썼던 불안감은 어느새 날아갔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아시안들은 나를 더 홀가분하게 해주었고, 영어가 통하지 않아 손짓발짓으로 설명해주는 사람들은 너무 친절했다.


가방도 그저 가방일 뿐이었고, 어쩌다 눈을 맞춘 사람들은 ‘Chao’하면서 웃어주었다. 관광객에게 불친절한 도시였던 로마를 벗어나자마자 이제 나를 감싸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낯선 곳에 혼자 있을 때 사람이 얼마나 불안해지는 지, 더하여 여행에서 함께하는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두 느끼게 해주는 곳이었다. 조금 더 풍요로운 마음을 갖고 나는 편안히 카타니아로 향하는 배에 오를 수 있었다.




[11] 시칠리아, 또다른 이탈리아



선상에서의 하룻밤을 보낸 후, 지중해의 중심 시칠리아에 도착했다. 시칠리아를 여행 계획에 넣은 건 너무 무모한 생각이 아니었을까, 한국인은 고사하고 이 세계 어딜 가도 있다는 중국사람들조차 보이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앞선다.


사실 어디로 가야할 지 조차 감도 안 오는 이 곳에서 난 일주일을 보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칠리아를 꼭 오고싶었던 이유는, 이 섬을 세운 화산과 그 화산에 당도한 그리스인들이 세운 신전 때문이다. 아직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화산과 그리스 인들이 그 옆에 세운 신전, 나의 환상을 자극하기에 시칠리아라는 섬은 충분했다.



* 카타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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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그리스, 북아프리카, 유럽 사람들이 모두 다녀갔던 곳이라 그런지 이 도시의 분위기는 로마나 이탈리아 남부와는 또 달랐다. 회색빛 돌들로 건축된 건물들은 바로크 양식의 무늬가 수놓아져 있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양했다.


활기차면서도 어딘가 어두워보이는 카타니아의 사람들을 보며 이탈리아의 새로운 모습에 반했다. 지역 색이 아직도 짙은 이곳에선 로마나 다른 도시에서 당연시했던 요구를 하면(올리브오일에 발사믹 소스를 뿌려달라던지), 장난인지 모르게 “It’s Sicily, not Italia.”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햇살이 짙게 깔리는 카타니아의 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 에트나 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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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에트나화산. 버스로 구불구불 올라가니 벌써 해발 2000m를 넘었다. 한번더 케이블카를 타고 2500m까지 가니 벌써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2주 전에 작은 폭발이 있다고 해서 정상을 찍어보진 못했지만 어쨌든 화산을 밟았다.


그리고 내가 가본 곳 중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갔다는 의미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새빨간 용암과 무시무시한 돌들을 상상했지만, 화산은 생각보다 평온한 곳이었다. 다만 한 그루의 나무도 없고, 얼마나 큰 폭발이 있었는지 짐작도 안될만큼 잘게 부스러진 돌들만 바닥에 있을 뿐이었다.



* 신전의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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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향기를 느끼려면 당연히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봐야겠지만, 상대적으로 가까운 아그리젠토의 콩코르디아 신전을 보러갔다. “신전의 계곡”이라는 멋진 이름이 붙은 이 유적은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콩코르디아 신전을 비롯해 수많은 신전들의 잔해가 있는 곳이다.


내리쬐는 태양볕을 뒤로 하고 신전을 봤을 때, 이곳에 정착한 그리스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저렇게 큰 신전을 어떻게 지었을까하고 생각하며 과거엔 분명 어떤 신전의 기둥이었을 돌덩이에 앉아 그 신전을 쳐다본다.



* 슬럼프


피곤했다. 어딜 돌아다니는 것도, 전체적으로 짠 유럽 음식을 먹는 것에 슬슬 지쳐왔다. 한달이라는 시간동안 한식을 먹고싶다거나 누가 보고싶다거나 하는 생각은 많았지만 집에 가고싶다는 생각이 드니 앞으로 남은 한달간의 일정이 설렘과 기대보다는 걱정으로 다가왔다. 아, 이 긴 여행의 슬럼프가 찾아왔나보다. 시칠리아에 오고 나서 한국인을 거의 만나지 못하다보니 오는 외로움에, 몸에 쌓인 피로도 한 몫을 했다. 한국에서 세웠던 계획도 여기까지여서 이제 정말 깜깜한 터널을 걸어가듯 하루하루 헤쳐나가야하는 것도 불안했다.


밤거리를 걸으며 Home이라는 노래를 듣다가 나는 한국에 사는 게 정말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있을 때 당연했던 것들이 너무 그리워졌다. 집에서 먹던 익숙한 맛의 밥과 별다른 고민 없이 들어가던 카페, 부르면 나오던 동네친구들까지. 그럴때면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다. 잘있니, 라고 물어보면 당연히 잘 있지, 라고 대답한다.


그렇게 한국에 있는 것처럼 느끼고 나면 조금은 괜찮아진다. 지금은 집에 가고싶지만 언젠가 여행에서의 슬럼프도 그리워질 것 같다. 나는 한국에 돌아가 일상으로 복귀할 것이다. 그러면 지금 이때가 너무도 생각날 게 분명하다. 아마 우리는 어딘가를 그리워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이 슬럼프도 여행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로, 초연하게 넘겨보기로 결심해본다.




[12] 피렌체, 상상했던 피렌체보다 아름다운



일주일 간 몸담갔던 시칠리아를 떠나 피렌체로 향했다. 이미 여행 오기 전부터 익숙한 도시였기 때문에 너무 기대되었다. 피렌체는 상상했던 피렌체보다 더 아름다운 도시였다. 르네상스를 열었던 도시인 피렌체는 그에 걸맞게 엄청난 예술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도시였다.


메디치 가문의 후원과 그 후원으로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쳤던 천재들의 이야기는 피렌체를 매력적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들의 노력은 지금까지 이어져 우피치 미술관이 되었고, 르네상스를 동경하던 한국인에게 보티첼리, 도나텔로,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천재들의 작품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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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의 상징은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일본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두오모다. 그 아름답고도 슬픈 사랑 이야기에 마음이 끌렸는지 많은 커플들이 피렌체에서 웨딩 사진을 찍곤 했다. 아니면 다른 사람들은 피렌체의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미켈란젤로 언덕에 올라가 별을 보고 맥주를 마시며 피렌체를 즐긴다.

나는 르네상스를 보고 피렌체를 왔지만, 각자 다른 사람들이 다른 생각으로 피렌체에 있었다. 각자 다른 마음과 생각을 갖고 돌아가겠지만 그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아마 비슷할 것이라 생각한다. 피렌체는 상상했던 피렌체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도시라는 것.



[13] 베니스,  수상도시에서 여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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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도시 베니스에 도착했다. 바다에 떠있는 이 도시에선 버스나 택시, 자전거 등이 다니지 않는다. 계속 거리를 거닐면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다녔던 곳 같다. 문을 열면 바다가 있는 집이라니, 정말 동화책 속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다.


이곳 저곳 쏘다닐 곳이 많지는 않지만, 마침 내가 방문한 때에 베니스 비엔날레가 열린다고 하니 그것만이라도 꼭 구경하기로 한다. 정말 간만에 여유가 넘치는 도시에 도착했다. 휴가철을 맞아 전세계에서 찾아온 수많은 관광객들은 나의 여유를 방해하겠지만, 혼자 이어폰을 꽂고 섬 끝자락에 앉아 여유를 만끽해본다. 이탈리아의 마지막이 될 이 도시의 여유를.



* 비엔날레



Biennale Arte

: 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



Interesting times에 살고 있는 나는 비엔날레를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다음날 찾은 비엔날레는 지금까지 봐왔던 과거의 예술이 아니라, 예술의 현재를 담았다. 도시 자체가 예술인 베니스에서 각 나라의 예술을 보고 느낀다. 사실 예술 그 자체로 놓고 보기 힘들 수 있다. 비엔날레 국가관에서는각 나라가 말하고 싶은 사상, 문화, 가치관 등을 예술의 형태로 녹여내었다.


과연 그렇다면 한국관엔 어떤 작품이 있을까. 사실 한국말이 쓰여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한국관 메인 영상은 거의 일본어와 중국어로 채워져 있었다. 처음에 입장할 때 나는 베니스에서 한국적인 것, 아니면 한국사람들의 예술을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뭔가 화가 나서 한국관을 나와서 제목을 보니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라는 제목이 이제서야 보였다. 그리고 쓰여있는 'Corea'라는 이름.


세상엔 다양한 Corea가 있다. 남한, 북한, 재일교포들, 재중교포들, 멀리 카자흐스탄까지 이동한 사람들까지 마음 속에는 각자 다양한 Corea가 있다. Corea는 같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 이제 그들이 쓰는 말은 각각 다르다. 그렇게 역사는 다양한 곳에 다양한 사람들의 Corea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 다른 말을 쓴다. 내가 쓰는 한국어나 태극기 같은 것으로 Corea를 대표하는 건 아닐텐데, 나는 한국말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화가났었다.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다시 보니 이 문구의 의미가 와닿는다. 과거와 역사가 어쨌든 그 모든 사람들도 Corea다. 미래의 Corea는 단순히 '한국'이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을 대표할 수 있는 단어가 되지 않을까.



* 반환점


기나긴 여행의 반환점을 돌았다. 여행이 길어질수록 무뎌지고 익숙해진다. 한달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이제 거리에 한국말이 들리는 게 오히려 어색하다. 사실 이번 글은 아마 이 여행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적은 글이 될 것이다. 슬럼프도 왔었고, 날씨도 무더웠으며, 그래서인지 의욕도 점차 하락하는 와중이었다. 한국에 있으면 할 수 있었던 것들,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고민도 마음을 짓누른다.


긴 여행은 마라톤이다. 처음엔 의욕적으로 앞으로 달려가지만, 반환점을 돌면 다시 돌아갈 시작점이 어느새 보이지 않고 지치게 마련이다. 넘어지고 상처가 나고 목이 타고 다리가 풀릴 것 같다. 그래도 나의 레이스 중간 중간에 내게 물을 건네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도 정말 많았다. 여행을 하며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건 그렇게 나의 여행을 함께 해준 사람들이었다. 그러면 나는 다시 웃음 짓고 힘을 내 시작점을 향해 달려간다.


우리는 어딘가를 그리워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지금은 힘들고 지치더라도 이 모든 것이 다시 돌아가면 너무나도 그리워질 것 같다. 그리고 그 그리움은, 내가 여행하지 않았다면 얻을 수 없는 가장 귀한 기념품이 될 것이다. 잠깐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도, 거리의 풍경도,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도 나는 돌아갔을 때 그리워할 것이다. 앞으로 한달 남은 여행도 미치도록 그리워질만큼 나를 남길 것이다.



[손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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