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5.18과 기억의 연대 [영화]

<김군>과 <소년이 온다>
글 입력 2019.07.04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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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몇몇 국회의원들의 5.18 망언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민주화 운동을 ‘폭동’으로 정의하고 5.18 유공자들을 세금을 축내는 괴물 집단으로 치부하는 발언들이었다. 그에 대한 징계를 주장하는 의견이 나왔지만, 당 간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해 징계나 5.18 특별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도 끝내 결론을 내지 못한 채 흐지부지 되었다. 그렇게,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올해 39주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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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군



김군.jpg
 


<김군>은 5.18 당시 찍힌 한 장의 사진을 단초로 시작한다. 5.18 기념관에 걸리는 동시에 군사평론가 지만원으로부터 북한 제1광수로 지목된, 매서운 눈매를 가진 한 청년의 사진. 그에 대한 추측은 다양하다. 트럭 위에 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장교였을 것, 다루기 힘든 무기를 능숙하게 만지는 훈련된 군인이었을 것, 앳된 얼굴로 보아 미필자였을 것이라는 추측들. “김군은 과연 누구였을까?”에서 출발하는 제작진의 물음은, 그에 대한 증언을 통해 단서를 이어 가면서 점차 형체를 갖춰 나간다.


그러나 김군이 누구였는지 밝혀내는 작업은 쉽지 않다. 당시 분위기 상 서로의 정확한 신분과 이름을 밝히지 않고 서로를 성으로만 구분했기 때문이다. 사진 속 장소와 시기를 찾아 당시 자리에 있었던 사람을 수소문하지만, 함께 활동한 사이라도 서로의 개인사에 대해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기 힘든 상황이었기에 단서를 찾기 더욱 어려웠다.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어도 너무 오래 전 일이라 대부분의 기억이 희미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와 같은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5년여의 리서치를 통해 결정적인 증언을 확보한다. 가족이 운영하던 가게를 자주 드나들었던 청년을 기억하는 주옥씨로부터 그의 성이 김씨이고, 다리 밑에 살던 넝마주이 중 하나라는 단서를 얻는다. 이후 김군으로 오인 받은 이강갑씨와, 김군을 딱하게 여겨 삼십여년이 지났는데도 기억하고 있던 최영철씨를 거쳐 드디어 김군의 최후를 목격한 최진수씨의 증언에 다다랐을 때, “김군 찾기” 문제는 해소된다.


<김군>은, 그러나 김군이 누구인지를 밝혀낸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다. 김군의 서사를 주축으로 진행되는 것 같지만, 영화의 핵심은 김군이 누구인지를 찾아내는 것에 있지 않다. 오히려 추적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각자의 기억이 달라 김군이 누구인지 불분명하게 된다. 하지만 GV를 진행한 변영주 감독은 그들의 기억이 신빙성 없다고 치부하기보다는, 그 행간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피해자의 기억은 자신이 특히 고통스러웠던 부분에 중점을 두고 과장되는 부분이 있어 객관적 정황과 다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가 특별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인 것 같다. 5년여 간의 방대한 아카이빙을 통해 섬세하게 얽힌 개인들의 서사를 이어나가고, 그를 통해 단순히 과거의 삶에 대한 조명에 그치지 않고 현재의 삶으로까지 확장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인물들의 이름 하나 하나가 잊히지 않는다. 증언하면서도 괴로워하고 아직도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건 이후에도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스크린 속 인물이 아니라 내 이웃, 내가 될 수도 있었던 사람. 어쩌면 그들 중 누구와 관련되었을지도 모르는, 상영 내내 눈물을 훔치셨던 옆자리 노부부를 보면서도, 단 한 사람이라도 생이 이어지는 한은 과거의 사건이라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이미 끝난 교과서 속의 사건일지 모른다. 그 지점에서 이미 피해를 입은 실체에 대한 고려는 없다. 그렇기에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자신이 유리한대로 프레이밍하려는 시도들이 계속되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 사건의 영향으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사람들이 아직도 그 삶을 이어가고 있고, 나의 삶이 파괴당할 가능성 또한 언제나 존재한다. 과거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과거 시민군 셋이 재회하고, 주옥씨가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주먹밥을 나눠주는 마지막 장면이 말하듯, 기억의 연대가 현재의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년이 온다



공교롭게도 <김군>을 본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게 되었다. 같은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두 작품은 문법에 있어서도 상당히 비슷했다. 동호의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동호의 집에 세 들어 살던 정대, 정미 남매, 동호가 시신을 수습하던 병원에서 만난 대학생 진수, 은숙, 여공시절 정미의 동료였던 선주, 동호 어머니의 이야기까지. 같은 사건이 관계된 인물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담은 서사가 마치 잉크가 물에 퍼지듯 서서히 확장된다.


동호는 정대와 정미를 찾으러 병원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동호는 시신을 수습하고 유가족에게 찾아주는 일을 하며 진수, 은숙, 선주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계엄군을 상대로 버티겠다는 작전이 실패한 이후 그들의 삶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동호는 계엄군에게 무참히 사살당하고, 진수는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죄책감 때문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은숙의 일상 또한 뺨 일곱 대로 인해 망가진다. 선주는 고문의 트라우마로 남자와 접촉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동호의 가족들 또한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죽은 자, 살아남은 자, 삶을 견디는 자, 서서히 죽어가는 자들의 입장에서 비극을 묘사하면서도, 작가는 인터뷰에서 <소년이 온다>가 고발식 소설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구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통해 사건을 경험하고 악몽을 견디면서, 본인의 평소 문체와 달리 생생하고 구체적인 비극을 써내려 갔던 것은 작가로서의 사명감 때문일 것이다. 규격화된 ‘피해자’가 아닌 개인의 이야기를 알리기 위해. 우리가 희생자로 알고 있는 자들이 실은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 남았다는 것을, 죽을 것을 알면서도 남게 했던 그 양심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같은 것들을.


교과서에서 접할 수 없는 개인의 서사에 몰입하면서, 나는 그 대상과의 거리감이 좁혀지는 체험을 했다. 이번에 가장 놀라웠던 것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다면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을까?와 같은 질문을 했을 때 항상 회의적이던 내가, 최초로 “나도 싸울 수 있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는 점이었다. 사람들이 폭력에 맞섰던 것은 그들이 대단히 영웅적이어서가 아니라, 선택의 순간 반대의 선택지를 도저히 행할 수 없게 만든 양심이라는 것이 그때 문득 발현됐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죽거나 죽을 때까지 고통 속에 살게 될 가능성과, 당장 옳은 것을 행하겠다는 신념을 재 볼 틈도 없이, 그저 그럴 수밖에 없었던 분위기가 존재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사건에 대한 기억을 이렇게 생생하게 재현하면서, 작가가 고발식 소설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 이유가 무엇일지 고민했다. 아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밝히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는 것이라서가 아닐까. 비극은 과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기 위해서. 이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스러져간 개개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기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어떻게 왜곡하든, 실체를 보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어쩌면 내가 될 수도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똑바로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만드는 일이다.



“그 경험은 방사능 피폭과 비슷해요, 라고 고문 생존자가 말하는 인터뷰를 읽었다. …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소년이 온다>, 207p






임예림 태그.jpg
 

[임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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