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드라이브(Drive) - 숭고하고 잔인한 고독 [영화]

말 없이 보여지는 모든 것들
글 입력 2019.07.05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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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며 사실 전달을 위해, 변명하고 표현하기 위해, 어쩌면 심심풀이용으로 많은 말들을 쏟아낸다. 뱉어내는 말 만큼 원하는 목적이 전달된다면 좋겠지만 늘 그렇진 않다. 너무 많은 말들은 오해를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수백 마디의 말보다 잠시의 침묵과 눈빛이 더 많은 것을 전달하기도 한다. 쓸데없는 수다 없이 담담하지만 무엇보다 많은 것을 보여주는 그런 영화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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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조차 언급되지 않는 ‘드라이버’(라이언 고슬링)은 낮에는 카센터 수리공과 자동차 액션 씬 스턴트맨을 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밤에는 돈을 받고 딱 5분동안 범죄자들의 도주를 도와 운전해주는 일을 한다. 그런 그는 우연한 계기로 같은 아파트 주민인 아이린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감옥에 갔던 아이린의 남편이 감옥 안에서 많은 빚을 지었지만 갚지 못해 아이린과 그녀의 아들이 위험해지자 드라이버는 그들을 돕기 위해 나선다.


[크기변환]드라이브 1.jpg
 

이 영화는 그리 수다스럽지 않다. 드라이브라는 제목만을 보고 스피드 있는 카체이싱 영화를 기대한 사람에게는 당황스러울지 모른다. 그 만큼 화려한 액션 씬도, 멋진 자동차 추격전이나 폭발 장면도 없다. 그러나 영화가 끝날 때쯤이면 그 어떤 영화보다 세련된 장면들이 아른거린다. 담담한 화려함이 극대화되는 두 장면을 골라보았다.



#1. 오프닝



소설을 쓸 때 많은 작가들이 첫 문장을 고민한다. 책을 더 읽어볼지 말지는 많은 경우에서 첫 문장을 읽어본 후 순식간에 결정 내려진다. 이미 많이 알려진 ‘3초 효과’ 또한 새로운 만남에서 인상은 3초만에 결정 난다는 이론이다. 그런 만큼 처음은 중요하다. 당연하게도 이는 영화 또한 마찬가지다.

좋은 오프닝이 좋은 영화라는 결론을 내릴 순 없지만 적어도 영화 초반부에 단시간에 몰입하게 해주는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영화 드라이브의 오프닝은 드라이버가 일하는 방식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누군가에게 걸려온 전화에 그는 익숙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한다.


“시간과 장소만 말하면 5분을 드리죠. 그 5분간은 무조건 책임집니다. 이유불문하고. 단, 그 앞뒤로 1분만 넘겨도 전 손 뗍니다.”



그렇게 강도들의 도주를 도와주는 드라이버의 장면은 상상과는 조금 다르다. 그는 미칠듯한 스피드로 경찰차를 따돌리지 않는다. 묵묵히 경찰들의 무전을 라디오로 엿들으며 골목을 통해 조용히 빠져나간다. 박진감 넘치게 연출해주는 카메라 앵글도 없다. 너무나 정직하게 차 내부와 외부의 상황을 비추기만 한다. 유유히 경찰들을 따돌린 그는 첫 번째 강도가 차에 탄지 정확히 5분만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뒤돌아보지 않고 유유히 인파 속으로 사라진다.

이 짧은 몇 분간의 장면을 통해 우리는 그가 아주 칼 같고 군더더기 없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유난스레 운전실력을 뽐내지도 않는다. 눈에 띄기보단 군중 속에 숨으며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는걸 꺼려하는 듯 하다. 한마디로 그는 아주 고독한 사람이다. 바로 이어져서 이런 그의 고독함이 극대화되는 장면이 이어진다.


[크기변환]드라이브 2.jpg
 

음악과 시작되는 오프닝은(9분 18초) 묵직한 비트로 시작된다. 단번에 귀를 사로잡는 이 노래는 드라이버를 응축해놓은 듯 잘 어울린다. 밤의 도로를 달리는 그의 주변에는 화려한 네온사인이 일렁인다. 노래에서는 신디사이저의 전자음이 건조하게 반복된다.

이 전자음과 도시의 네온사인이 함께 나오면서 사이버펑크 같은 분위기를 연출해냄으로써 그의 고독함과 냉철함에 어떠한 연민의 감정이나 사연을 부각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느끼게 해준다. 긁힌 듯한 낮고 거친 목소리의 보컬은 드라이버의 강한 남성성을 극대화 시킨다. 이쑤시개를 물고 무표정하게 운전하는 모습에서는 느와르적인 아름다움마저 느껴진다.

조만간 사랑에 빠질 아이린을 지나쳐 엘리베이터에 탄 뒤 텅 빈 집에 들어가는 장면에서는 여성보컬의 목소리가 속삭이듯 흘러나온다. 그 전까지 느껴지던 마초적인 분위기가 약간 수그러들고 어쩌면 그의 내면 안에 존재할 부드러운 감정과 행동들이 엿보인다. 그에 따라 혼자인 집을 바라보는 장면에서는 어쩐지 고독함이 쓸쓸함으로 바뀌어 보인다.

다시 집을 나서는 장면에서는 음악의 센스 있는 활용이 돋보인다. 영상 11분 25초경에 드라이버가 불을 끄는 순간과 음악의 끊김을 절묘하게 매치 시키면서 한동안 대사 없이 흘러나오던 장면의 느슨함을 끊고 단박에 이목을 집중시킨다. 곧 이어질 핵심적인 스토리를 풀어나가기 전에 주의를 환기시키면서도 어떠한 박자 감이 느껴지게 하여 영화의 흐름을 쥐고 있다는 느낌을 주면서 센스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주인공에 대한 설명을 몇 마디의 대사 없이 행동과 음악만으로 직관적으로 느껴지도록 풀어낸 오프닝 씬이다.



#2 엘리베이터 씬



이 영화에서 가장 로맨틱한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 이 장면일 것이다. 아이린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탄 드라이버는 먼저 탑승해있던 남자가 그들을 죽이려 온 조직의 직원임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린다. 어쩌면 다시는 아이린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는 처음으로 그의 마음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며 그녀에게 입을 맞춘다. 주변의 모든 빛은 사그라들고 둘에게 은은한 조명이 비춰진다.

화면에서 제3의 남자는 아예 배제되면서 관객들에게 이 세상에 아이린과 드라이버 둘만 남은듯한 느낌을 준다. 부드럽고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오고 키스 신을 슬로우모션으로 보여주면서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느낌을 주어 온전히 그 순간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 전까지의 장면들에서 잠시 가려져있었지만 이 영화의 큰 축 중 하나가 ‘사랑’이었음을 상기시킨다.

아이린의 입장에서 보여지듯 관객들 또한 드라이버의 로맨틱함에 빠져있던 순간 음악과 조명이 사라지며 영화는 갑자기 장르가 전환된다. 드라이버는 조직원을 때려눕힌 뒤 무자비하게 짓밟는다. 둘 사이의 주고 받는 화려한 액션은 없다. 카메라는 드라이버의 얼굴과 아이린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비출 뿐이다. 좀 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이 무표정하지만 격렬하게 조직원의 얼굴을 밟는 드라이버의 표정은 섬뜩하다.

아이린의 얼굴이 클로즈업 된다. 아름답던 BGM은 사라지고 드라이버가 남자를 때리는 소리만 울린다. 충격을 받은 아이린은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얼어붙는다. 불과 몇 초 전 드라이버의 로맨틱함에 빠져있던 관객들은 아이린과 마찬가지로 충격을 받게 된다. 앞 장면과의 비교를 통해 아이린의 두려움과 드라이버의 잔혹함을 극대화시킨다.

도망치듯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아이린을 보는 드라이버의 눈빛은 너무나도 처량하다. 주인을 위해 맹목적인 충성심을 보였지만 사납다는 이유로 버려진 사냥개처럼 초라한 뒷모습과 폭력적인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린에 대한 그의 사랑을 증명하는 듯 하다. 단 한마디의 대사 없이 인물, 화면, 음악만을 이용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과 그 변화를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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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버가 이전에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관한 내용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영화 초반에는 그가 슈퍼에서 아이린을 먼저 발견하고도 다가가지 않는 장면이 연출된다. 그가 굳이 새로운 인연을 만들지 않고 홀로 지낸다는 걸 알 수 있다. 카 레이싱을 후원해주는 후원자를 만났을 때도 악수를 하지 않고 ‘손이 더럽다’고 말한다. 정말 손이 더러웠다기보다는 좋지 않은 일들에 손을 댔다는 표현일 것이다. 그만큼 그는 고독하고 외로운, 어쩌면 떳떳하지 못할 생활을 해왔을 것이다.

그런 그가 대가 없는 순수함으로 아이린만을 위해 행하는 희생은 그 잔인함과 폭력성에 비해 숭고해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그 폭력을 통해 자신의 인간성을 발견했을지 모를 그에게 어울리는 영화의 큰 주제곡 College-A Real Hero를 소개하며 마무리한다.

 


"Real human being, And a real hero"



[김유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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