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관계도 처세의 일종이라서 [영화]

글 입력 2019.07.06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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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 시간이 제일 싫었다. 수업이 시작되면 이름이 호명됐다. 교육과정을 따라 체육을 학습했다는 감각은 내 기억에 없다. 교사는 공 몇 개 던져주고 교무실로 들어가거나 담배 태웠다. 학교 바깥으로 이탈하지 않으면 그 시간에 뭘 하든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갔다. MP3로 영화를 봤다. 영화를 받지 못한 날엔 음악을 듣거나 변기에 앉아있었다. 그때 내가 그릴 궤적을 생각했다. 상승하다가 추락하는 그런 모양이 아니라 바닥 언저리에 고여 있는 그래프가 내 삶일 거라 생각했다. 변기에 앉아있는 게 싫었다. 끼워달라고 말하지 못하는 내가 싫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싫었다. 그래서 체육시간이 싫었다.


내가 못생겼다고 생각했다.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했다. 볼품없는 외양을 메꿀 만큼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매력 자원이 없다고 여겨 아무에게도 말 걸지 않았다. 누구도 나와 관계 맺기를 원하지 않을 거라 규정했다. 그러면서 집단 중심에 편입되고 싶었다. 내 농담에 모두 웃는 상상을 했다.


동시에 지금 나는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된 것뿐이라며 스스로의 처지를 자위했다. 친구라고 호명되는 저 관계엔 분명 권력이 작동할 것이라 재단했다. 어쨌거나 나는 외로웠다. 누군가 내게 말 걸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들>의 선은 사위에 아무도 없다. 피구팀을 짤 때 가장 마지막에 지명되는 신세다. ‘금 밟았다’는 누명에 항의하지만 편들어주는 이 없다. ‘우리’끼리 놀 수 있도록 너는 게임에서 빠지라는 맥락의 언어임을 선 역시 안다. 그 ‘우리’에 포함될 가능성이 없음을 인정하기 싫어 항의하는 거다. 항의는 당연히 무위에 그친다. 다른 급우의 말과 행동을 살피며 어떻게 하면 무리에 이입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나름의 처사를 취해도 별 소용없다. 선은 왕따다. 선은 더 위축된다.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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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가 방학식 때 전학 온다. 선이 학급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알지 못하는 지아는 금방 선과 친구가 된다. 지아는 어른의 무례한 언사에 보복할 만큼 당돌하다. 선은 자기와 다른 지아가 좋다. 선과 지아는 비밀을 교환한다. 타인이 모르는 ‘너’의 비밀을 오롯이 나만 간직하고 있다고 느낄 때 나는 너에게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다. 나를 믿고 좋아한다는 의식의 발로처럼 여겨진다. 지나가는 타인이라면 말할 수 없는 것들을 그 사람이 내게 말하는 순간 그 사람과 나는 우리가 된다. 선과 지아는 ‘우리’가 됐다.


그래도 숨기고 싶은 것들이 있다. 선은 방학 내내 자신이 왕따라는 걸 지아에게 말하지 않았다. 지아가 선에게 말한 비밀도 실상과 다른 것이었다. 어쩌면 진짜 비밀은 영원히 발언될 수 없다. 관계는 정교하게 짜인 직물 같은 게 아니다. 물에 적시면 사라지는 휴지 조각이다.


비밀을 말함으로써 서로를 자기 인생에 연루시키는 일은 꿈같은 일이다. 진짜 비밀은 보기 버거운 상처다. 그걸 보고 위로를 건네는 동시에 역겹다고 느끼는 게 인간의 마음이다.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보면 관계란 것도 처세의 일종이다. 타인이 나와 관계 맺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도록 자신을 가장해야 한다. 비밀과 상처가 삭제된 또 다른 나를 연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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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하고 지아는 선에게 냉랭하다. 선은 내가 뭔가 잘못했냐고 묻지만 이미 알고 있다. 배신당했어도 선은 지아에게 계속 다가간다. 그런데도 관계는 회복되지 못한다. 지아는 비밀의 실상을 간파한 선을 보기 버겁다. 그래서 밀어낸다. 관계의 타래가 얽혀서 오해가 누적된 그들은 재생 불가능의 지경까지 도달한다. 그때까지 <우리들>은 관계 유지에 얼마나 많은 품이 드는지 설명하는 사회학 같다.


영화는 마지막에 이르러 관계의 희망적 차원을 거론한다. 누더기가 된 관계에서 먼저 손 내미는 건 선이다. "그럼 언제 놀아?" 라고 묻는 선 동생 윤의 한 마디는 <우리들>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나’를 가장하고 연기하는 작업이 배제된 선과 지아의 관계는 영화 마지막에서야 진짜 시작된다.


그러니까 네가 친구가 없지. 영화 속 지아의 외침을 듣고 많이 울었다. 나한테 하는 말 같았다. 어차피 모든 관계는 영원한 시간을 담보할 수 없다며 나는 오해나 갈등이 생길 때마다 거기서 도망치는 방법을 취했다. 편하면서 비겁한 방법이었다. 그러면서 외롭다고 느끼는 나는 텅 빈 인간이 아닐까. 체육 시간이 생각난다. 공허함을 느끼면서 그게 낫다고 자위하던 중2병의 나.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박성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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