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구원은 글쓰기였다. "쓰기의 말들" [도서]

글 입력 2019.07.07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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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힘을 믿는다.



스스로가 미운 순간이 많았다. 친구들의 한 마디에 괜히 억울해 말을 쉬이 뱉고 들어온 어느 날의 밤도, 계획한 일들을 지키지 못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내 모습을 볼 때도 그랬다. 하나씩 무언가 이뤄가는 친구들 옆에서 나만 제자리인 것 같은 초라한 기분을 느낄 때마다 체한 듯 속이 뒤틀리고 답답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누군가에게 대화로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는 게 어색했다. 지금도 꽤 그렇다. 어지러운 마음을 담담하게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못된 자존심 때문인지 나의 초라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내가 찾던 것은 백지와 검은색 볼펜이다. 그 두 가지만 있으면 최고의 상담사를 만난 듯 마음에 평온함이 찾아오곤 했다. 죽을 때까지 믿고 의지할 것이 하나 생겼구나. 글을 쓰기 시작하며 거친 내면의 요동과 세상의 풍파 속에서 붙잡을 것이 생겼다고 믿는다. 아주 강력하게 말이다.

    

고민과 잡념을 글로 쓰며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냈다. 누구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마치 대화를 하듯 고민과 생각을 검은 글씨로 내뱉었다. 부끄러워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생각들까지 마음에서 쏟아내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종이를 어딘가 나만 아는 곳에 고이 모셔두기만 한다면 비밀 보장까지 되니 이렇게 안전한 심리 상담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한바탕 글쓰기로 쏟아내기만 하면 신기하게도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겼다. 글쓰기는 나에게 주술이자 명상이다. 어지러운 마음을 비우고, 세상 속에 던져진 나를 오롯이 바라보고, 지나간 과거를 보듬어주는 행위, 내가 나답게 서있을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행위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에게 용기를 부여하고 사랑의 말을 건네주기 시작했다.


글쓰기의 효과를 알게 된 뒤 주변 사람들에게 글쓰기를 조심스레 권하는 편이다. 기록하는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지, 마음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위안을 주는지 나의 변화를 아는 사람들에게 털어놓곤 했다. 종이와 펜만 있으면 상담비도 없이 나를 바꿀 수 있다. 무한한 경쟁과 핍박한 사회 속에 변함없이 죽을 때까지 내 곁을 지켜주는 존재가 있다는 게, 지구 어느 곳에 떨어지든 마음을 돌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한지 경험한 사람으로서 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내 마음과 똑 닮은, 글쓰기의 효과를 책으로 말하고 있는 작가님들의 글을 흥미롭게 읽는 편이다. “역시 나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어, 글쓰기는 위대해!” 혼자 생각하며 글쓰기에 관한 책들을 읽고 깊이 응원한다. 나의 마음이 읽힌듯한 내용을 볼 때면 작가님과 대화를 하며 정서적 교류를 한 것만 같다. 그런 책들은 개인 SNS에 소개하며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의 효과를 경험하고, 세상 속에서 저마다의 무기를 가지길 바라왔다.




오직 쓰기에 대한 책,  「쓰기의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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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글쓰기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어오며 열성적인 팬을 자처하게 된 작가님이 있다. 바로 은유 작가님이다. 가슴에 사무치는 글, 삶과 닮은 글을 담은 작가님의 책은 글쓰기를 더 신뢰하게 만든 계기이기도 했다. 글이 잡히지 않는 어느 날에도 이 책만 펼치면 글쓰기의 영험한 기운을 느끼곤 했다. 책의 왼쪽 페이지마다 글쓰기에 관한 인물들의 말이 적혀있다. 말 그대로 「쓰기의 말들」이다.  오른쪽 페이지는 작가님의 글이다. 이 책을 읽으며 너무나 좋았던 것은 작가님께서 글과 함께한 세월 속에서 가졌던 '쓰는 행위'에 대한 생각이다. 마음이 울렁거렸다.



삶의 구체성을 벗어난 무책임한 비유가 아닌 일상의 구석까지 훑어 내는, 삶의 무자비와 세계의 인식 불가능성을 순순히 인정하는 진짜배기 글을 쓰고 싶었다.



진심이 드러나는 작가님만의 문체는 색깔이 진했다. 책을 단숨에 읽을 만큼 흡입력이 있었다. 절대 가볍지 않았다. 삶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는 글이었다. 쓰는 행위에 대해 투철히 고민했던 흔적들은 나에게 울림을 주었고 현실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결코 일상을 단순히 보지 않는 시각이 글쓰기를 사랑하는 내게 지침이 되어주기도 했다.



나는 글쓰기에 재능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글 쓰는 일은 지겹고 괴로운 반복 노동인데 그 고통을 감내할 만한 동력이 자기에게 있는가. 재능이 있나 없나 묻기보다 나는 왜 쓰(고자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고 여긴다. 프리모 레비는 동기가 분명했다. 그럼에도 피로 물든 수용소의 기억을 일일이 들춰내고 복기하는 일이 얼마나 고역이었을까. 그러나 그 무참한 죽음과 끝 모를 수치가 몸속에 쌓여 있다면 또 어떻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싶다.


그는 1945년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돌아와 2년 뒤 『이것이 인간인가』를 발표하고 마지막 책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내는 동안 르포르타주와 소설 등 여러 권의 책을 남겼다. 그의 고백대로 '인간에 대한 지칠 줄 몰랐던 관심'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작업이다. 쓸 수도 없고 안 쓸 수도 없는 딜레마에 놓인 한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한다. 쓰는 고통이 크면 안 쓴다. 안 쓰는 고통이 더 큰 사람은 쓴다.



나 역시 안 쓰는 고통이 큰 사람이 아닌가. 쓰지 않으면 집안이 어지럽듯 삶이 정돈이 되지 않은 느낌이다. 나는 왜 쓰는가, 쓰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가 스스로를 향해 던졌던 물음에 대한 답을 책을 읽으며 조금이나마 정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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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글 쓰는 존재는 모두 비슷하구나 생각을 했다. 나의 변덕스러움, 나약함, 얄팍함. 모든 것을 직면하면서 우직하게 나아가는 것, 어쨌거나 매일 써 내려가는 것, 왜 쓰는지 분명히 아는 것. 내가 글의 세계를 직면하며 생겨난 모든 감정들이 책에 담겨있었다. 감히 쓰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말하고 있는 내게 은유 작가님은 먼저 길을 걸어가고 깨우침을 얻은 선배 같았다.


나는 나를 ‘글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글쓰기는 나를 내 자리로 돌려놓는 최면 효과가 있다. 마른 김 굽고 하얀 밥 지어 먹고 커피 내려서 글 쓰려고 노트북 앞에 앉을 때 가장 생이 평화롭다.


동류를 찾는 본능일까. 글쓰기 수업에서 나와 같은 부류, 감각의 주파수가 맞는 사람을 만나고 만드는 게 큰 기쁨이다. 글을 잘 쓰고 싶어서 와 놓고 막상 글 쓰는 건 회피하는 이들을 볼 때 난처하다. 그 자기모순을 직시하도록 하고 쓰도록 권한다.


쓰기 전엔 잘 쓸 수도 없지만 자기가 얼마나 못 쓰는 줄도 모른다는 것. 써야 알고 알아야 나아지고 나아지면 좋아지고 좋아지면 안심한다. 안 쓰면 불안하고 쓰면 안심하는 사람, 그렇게 글 쓰는 사람이 된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나 또한 동류가 된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글쓰기 수업을 하며,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오며 느낀 작가님만의 작은 이야기들은 글쓰기로 마음을 치유한 나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진실을 담은 글, 울퉁불퉁하지만 투명한 글을 바라보는 작가님의 시선에서 나 역시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글은 나의 구원이었다. 그리고 인간의 구원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겨우 100여 년이 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지구의 일생 속 찰나의 생물체일 뿐이다. 이 짧은 생에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태어난 나는 행복한 존재다. 세상을 보고, 느끼고, 소통하고, 사회를 이루어 내가 가진 세계를 표현하는 인간이 가진 특성에 늘 감사하다.


하지만 우리는 삶을 당연하다 여기며, 패배감, 우울감, 열등감은 끈질기게 따라다닌다. 그것들에 싸워 이겨내는 일, 나다운 삶을 찾아가는 일, 울퉁불퉁하지만 진실된 나만의 고유한 삶을 찾아나가는 힘을 글쓰기는 부여해준다. 그것도 아주 간단하고 쉽게 어느 곳에서나 말이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를 찬양한다. 죽을 때까지 믿을 수 있고 나를 더 나은 곳으로 이끌어준 존재이기에.



남을 부러워하지 말고 자기가 발 디딘 삶에 근거해서 한 줄씩 쓰면 된다.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은 누구나 글감이 있다는 것.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뿐이랴. 글쓰기는 만인에게 공평하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글쓰기 앞에서 공평하다. 글을 써보자. 당신의 세상이 좀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안 쓰는 사람이 쓰게 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나 역시 바란다.



[장경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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