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수다스럽지 않은 고통을 실어 오는 노랫말 [음악]
글 입력 2019.07.0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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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플 때 찾아가는 사람노래가 시작되자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미간을 찌푸렸다. 이윽고 축 늘어진 한쪽 팔을 의자에 걸쳤다. 습관적으로 입 주변을 손으로 닦아가며 신중하게 노래를 이어 나갔다. 관객들은 이소라라는 하나의 소실점을 향해 쉴 틈 없이 빨려 들어갔다.너무도 집중했던 탓인지 가끔 툭툭 던지는 농담에 눈 녹듯 긴장이 풀렸다. 게다가 수백 번도 넘게 반복해서 들어왔던 노래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 그 믿기지 않는 사실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밀려왔다.2년 전 겨울, 나는 이소라 콘서트에 다녀왔다. 그로부터 2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 순간을 되감아 보곤 했다. 마치 물건을 두고 온 사람처럼 기억을 자꾸만 들춰보았다. 그녀와 공유했던 시간은 어떤 의미였을까. 대체 무엇이 이토록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걸까.질문을 곱씹어 보다가 한 가지를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의 노래에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삶의 내밀함이 담겨있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사랑이 주는 충만함을 노래하는 ‘Track 3’과 ‘청혼’, 슬픔을 털어내지 못하는 연약함이 담긴 ‘Track 7’과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가 있다.나 또한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어서 그랬을까. 미련과 후회로 점철된 가사가 내 얘기처럼 들렸다. 한 살을 먹었을 때 지난해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건지, 어쩌다가 모든 걸 무던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시간이 흐르면 굳게 믿었던 마음은 왜 '한때'의 신념으로 변하는 건지. 눈에 밟혔지만, 어른이 되기 위해 하나둘 놓아버렸던 질문들을 'Track 9'에서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걷고 말하고 배우고 난 후로 난 좀 변했고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화나게 하고당연한 고독 속에 살게 해Hey you, don't forget고독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살아가매일 독하게 부족하게 만들어널 다그쳐 흘러가(중략)- 이소라, Track 9마음이 아플 때 찾아가는 사람이 누구인지 묻는다면 이소라를 말한다.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면 말없이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녀의 노래는 무언가를 발산하거나 터뜨리지 않는다. 수다스럽지 않은 고통이 실어 오는 노랫말은 마음을 따듯한 손길로 어루만진다.아플수록 성장하는 이소라의 음악어떤 날은 그녀가 왜 그렇게 고통스럽고 애절하게 노래하는 건지 궁금했다. 이를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어느 날, 책을 펼쳐 목차를 훑어보다가 반가운 단어를 발견하게 되었다. ‘문학으로서의 이소라 – 이소라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문학으로서의 이소라라니!”곧장 그 부분을 펼쳐 단숨에 읽어낼 수밖에 없었다. 2011년, 나는 가수다에 출연했던 이소라는 이현우의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를 불렀다. 그리고 해당 노래를 4시간 전에 부를 수 없다는 사실을 선언했다. 원래는 ‘가을에 편지를 쓰겠어요’ 혹은 ‘아침이슬’을 부르려고 했으나 부를 수 없는 마음을 이유로 급히 바꾸게 되었다. 그렇게 별다른 반주 없이 피아노와 목소리만으로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를 불렀다고 한다.그녀에게 노래는 곧 자기 자신이었다. 마음을 담아낼 수 있는 노래를 선택하는 것은 자신을 존중하는 그녀만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때로는 스스로와 노래를 분리하지 않아 고통스러워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런데도 한 마디라도 끝까지 품을 들여서 마침표를 찍었다.본격적으로 내면의 어두움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세 번째 앨범 ‘슬픔과 분노에 관한’이었다. 그 이후로도 노래 속 그녀는 멀어져 가는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떠나간 사랑에 아파하는 사람이었다. 가령 애인과의 이야기를 친구에게 털어놓는 '시시콜콜한 이야기',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바람이 분다'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삶의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이소라는 아플수록 성장하고 성숙한 음악을 들려주었다."그의 고통은 수다스럽지 않다. 진정한 고통은 침묵의 형식으로 현존한다. 고통스러운 사람은 고통스럽다고 말할 힘이 없을 것이다. 없는 고통을 불러들여야 할 때 어떤 가수들은 울부짖고 칭얼댄다. 그는 그럴 필요가 너무 없다.”-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한겨레출판, 2018, 88쪽.사소한 일 하나하나가 마음에 걸렸던 스무 살 무렵, 성장통을 함께 겪어낸 이소라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그녀에게 셀 수 없는 마음의 빚을 지웠다는 걸. 고즈넉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오늘도 가슴에 자그마한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간다.에디터의 추천곡1. Track 32. Track 83. 난 별4. 믿음5. 내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6. 바람이 분다7. 시시콜콜한 이야기[고은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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