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을 토해내는 연극, "마음의 범죄"

글 입력 2019.07.08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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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아픈 할아버지를 모시는 세 자매 중 첫째 순진. 곧 마흔을 앞둔 그녀는 적막한 집에서 자그마한 빵에 촛불 하나 켜두곤 마음의 소원을 빈다. 촛불을 끄는 순간 갑자기 바깥에서 북적이는 소리가 들린다. 지난 몇년간 가수의 꿈을 이룬다고 서울로 올라간 둘째 가진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오랜만에 가족이 모이게 된 계기는 막내 아진의 사건 때문이었다. 잘나가는 집안에 시집을 갔던 아진이 자신의 남편에게 상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머지않아 사건의 주인공 아진도 집으로 오고, 세 자매는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인다.

연극 <마음의 범죄>는 제주도에 있는 첫째 순진의 집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그녀의 집 한정된 공간만을 다루기 때문인지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더욱 일상적이고 사실감있게 느껴졌다. 이 배경이 되는 집은 굉장히 중요한 공간이다. 지극히 익숙하게 와닿는 공간인 집 안에서 세 자매가 각각 쌓아온 삶의 조각이 하나씩 모이고, 또 드러난다. 이 연극은 각자의 삶을 살아온 세 사람이 서로 묻어두고 덮어뒀던 아픈 기억을 입 밖으로 외치고 토해냄으로써 자신의 내면을 치유하는 과정을 다룬다. 각기 다른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나, 처음부터 끝까지 공통된 것은 "말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입 밖으로 꺼내고 공유함으로써 그들은 고여있던 시간 속 곪은 상처를 비로소 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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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순진의 이야기



순진은 맏이였기 때문인지 굉장히 순종적인 편이다. 도망간 아버지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어머니를 대신해, 할아버지와 함께 가족을 챙기는 역할을 맡아왔다. 둘째에게 끊임없이 양보를 하고(혹은 앙보가 요구되고) 할아버지의 고지식한 말에 영향을 받는 등의 환경적 배경을 거쳐오면서 그녀의 자존감은 점차 낮아진다.


그녀는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본 적이 없다.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 그리고 자신의 자궁에 일어난 문제로 여성으로서 자신감을 잃은 그녀는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스스로를 자꾸 고립시킨다. 오랜만에 온 자매가 모이자 순진의 내면을 잠식했던 불만족과 열등감이 터져나온다. 둘째와 언쟁을 벌이기도 하지만 이는 그녀에게 해소의 작용을 가져왔다. 동생들의 응원에 힘입어 전 남자친구에게 연락을 하고, 할아버지의 그늘에서 조금쯤 벗어나온다.



둘째, 가진의 이야기



시원시원한 웃음이 매력적인 그녀는 그 누구보다 쿨해보이지만 사실은 속에 말 못할 고민을 안고만 있는 사람이다. 그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한 태도 뒤에는 내면의 고민이 자리한다. 그녀는 자살한 어머니를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이었다. 그 이후 트라우마가 생긴 그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밤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지언정 다른 일에 더욱 몰두하며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쓴다.

노래하는 게 그 무엇보다 즐거웠던 가진은 훌쩍 서울로 올라가 재즈 바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로 활동해왔지만, 고향으로 내려온 그녀는 노래를 부르는 일을 그만두었다 말한다. 이는 그녀의 심리적 요인으로 인해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되었던 것으로, 그녀의 과거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사실 그녀가 학창시절 고향을 급히 떠났던 이유는 자신이 다치게 만들었던 동갑내기 남자아이에 대한 죄악감 때문이었다. 매듭짓지 않은 기억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이 남자를 향한 사랑인지, 단순한 미련인지, 혹은 죄악감 때문만인지를 모른 채 그녀는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고 동기와 재회함으로써 그의 진정한 행복을 빌어줄 수 있게 되었다 말한다.



셋째, 아진의 이야기



아진은 고향의 유명한 정치가와 일찌감치 결혼한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솔직히 말하지 못한 그녀의 결혼 생활은 비참함의 끝에 서 있었던 것인지, 남편을 총으로 쏜 그녀는 자극적인 사건의 주인공으로 등극하고 만다.


오랜만에 가족과 만난 그녀는 이상한 행동을 한다. 끊임없이 레모네이드를 만들어 먹는 것이다. 그것도 혀가 얼얼할 정도로 달디 단 레모네이드를. 일상을 제약당했다고 느낀 그녀는 남편을 총으로 쏴버린 후에야 마음이 후련해진 듯 계속해서 레모네이드로 목을 축인다.

주위 모든 사람들이 아진에게 왜 그랬냐고 묻지만 아진은 섣불리 대답하지 않는다. 과거에 그녀를 만나 은혜를 입었다 말하는 변호사 백의서를 만나고, 또 "말을 해야 살 수 있다"고 간곡히 외치는 자매 덕분에 그녀는 조심스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남편에게 받았던 폭행과 집에 들여온 강아지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외도에 대한 것들을. 하지만 점차 극단으로 치닫는 소송 건 아래 그녀는 어머니를 떠올리며 자살을 택한다. 다행히 이를 발견한 이웃의 구조로 그녀는 살아나고, 자신을 부둥켜안고 우는 언니들에게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녀는 어머니가 왜 고양이와 함께 자살했는지 비로소 알 것 같다 얘기한다. 고양이를 미워서 죽이려던 게 아니라,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길이 너무도 무서워서 사랑하는 이와 함께 여정을 떠나고 싶었던 것이라고.

*

이처럼 세 자매의 각기 다른 이야기는 하나의 물줄기처럼 절묘하게 이어져 무대 위에 펼쳐진다. 한 순간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한 연극인 듯 싶지만 이는 멀리 있는 타인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말 못할 비밀로 스스로를 옭아매고 사람들 사이에서 고통받는 일상 그 자체에 귀를 기울여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극 말미에 둘째 가진이 막내 아진을 향해 외친다.

"우린 힘든 날들을 이겨나가는 법을 배워야 해."

크든 작든 고통의 연속인 인생 속에서,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그냥 사는 것이 아닌 투쟁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건 "우리"에 있다. 자매들이 혼자였다면 자신 내면에 응어리진 아픔과 괴로움을 치유할 수 있었을까? 어머니의 죽음에 함께 힘겨워하던 세 자매는 모든 사건이 극단으로 치솟는 와중 할아버지의 죽음을 두고는 이상하게 웃어버린다.


자신의 아픔을 밖으로 꺼낼 용기조차 없어 목소리를 죽이고 살았던 "개인"은 "우리"라는 틀 안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속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럼에도 우릴 살아가게 하는 것은 일상의 아주 사소함들, 아주 당연하게 여길지 모르는 관계에 근원을 두기에. 우여곡절 끝에 둘째와 막내가 준비한 첫째 순진의 생일파티에서 그녀가 빈 소원도 그랬다.

"우리 모두가 웃고 있었으면 좋겠어."

그 생일파티의 자리에서, 이제 앞으로 아진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언니의 작은 소원"이 되었던 것이다.

<마음의 범죄>가 왜 페미니즘 극인지에 대해서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만하다. 연극은 페미니즘에 대해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며 다루지 않는다.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서로의 아픔을 외쳐 나누는 것. 일부 대중의 페미니즘에 대한 이유 없는 거부감을 불식시킬 수 있는 연극이 아닌가 생각됐다. 때로 짭쪼롬한 눈물 한바가지를 흘리게도 하지만, 너무도 사랑스러운 순진, 가진, 아진 세 여인의 삶. 연대의 힘과 용기를 전하는 연극이다. 무대를 넘어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모습을 참 애틋하다고 여기게 된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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