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깊이 읽기가 필요한 시대 - 다시 책으로 [도서]

글 입력 2019.07.09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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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론이 뭐죠? 세 줄 요약 좀. 좋은 글이네요. 물론 읽지는 않았습니다." 인터넷 기사의 댓글 창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최근엔 이런 문자 기반 매체뿐만이 아니다. 20분이 넘는 유튜브 영상에선 몇 분부터 본론 시작이란 댓글이 가장 많은 추천 수를 기록하기도 한다. 바야흐로 한 줄 평, 한 줄 요약, 한 줄 댓글의 시대다. 디지털 세계를 유영하는 사람들은 갈수록 긴 글, 어려운 문장 대신 짧고 쉬운 글에 호응한다. 이는 곧 읽기에 필수 요소인 집중력이 저하되었음을 시사한다.

흥미로운 점은 영미권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이 책에 의하면, 서양에서는 tl;dr(too long; didn't read)이라는 온라인 신조어가 존재한다. 너무 길어서 읽지 않았다는 뜻이 담긴 용어다. 이렇듯 시간을 들여 글을 읽는 게 불편해지니 텍스트의 총합인 책에서 멀어지는 것도 당연지사. 독서를 하는 인구가 줄어드는 건 이제 전 세계적인 사회문화 현상이 되었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당면한 해결 과제인 셈이다.

저자인 매리언 울프가 책을 집필한 동기 또한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그는 정보 기술의 발달로 인류가 진일보한 반면, 우리의 깊이 읽기 능력이 퇴행하는 모습에 우려를 표한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문해력은 인간의 타고난 특성이 아니라 후천적 성취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매리언은 뇌 과학을 근거로 삼아 읽는 뇌의 복잡하고 놀라운 구조를 설명한다. 그밖에 유의미한 연구 결과를 빌어 디지털과 종이 매체의 차이점도 이야기한다. 이렇듯 독서는 인간의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말하는 그의 사려 깊은 통찰에 주목해보자.



디지털 매체와 인쇄 매체의 차이점


디지털 기기는 우리의 주의력을 분산시키는 원인으로 꾸준히 지목되어왔다. 안구 운동 연구자들에 따르면 디지털 읽기에서는 '훑어보기'가 표준이다. 먼저 F자형이나 지그재그로 텍스트상의 단어만 재빨리 훑어 맥락을 파악하고 맨 끝의 결론으로 직행한다. 그 후 본문으로 돌아가 세부 내용을 보는 형식이다.

필자 역시 스마트폰에 의존하는 시간이 길어지며 이러한 습성이 익숙해졌다. 눈길을 끄는 기사가 있으면 클릭하여 두세 줄 정도의 문장을 읽은 뒤 곧바로 스크롤을 쭉쭉 내린다. 길이와 결론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리곤 생각한다. '음, 길다. 하지만 유익한 글이니까 저장하고 나중에 보자.' 이렇게 절반도 읽지 않은 기사를 메모 앱에 채워둔다. 정독할 시간은 충분한데도 말이다. 혹은 기사를 읽다가 뜬금없이 다른 SNS를 배회하고 나서 다시 기사를 읽는다. 이 산만한 과정을 하루에 몇 번이고 반복한다. 그러니 내용 파악은 점점 부실해지고 머릿속에 남는 지식도 없다.

순식간에 몸에 밴 버릇은 독서에도 적용된다. 요즘은 책 한 권을 끈기 있게 독파한 때가 언제인지 가물거릴 정도다. 가령 한 시간 동안 책을 읽는다고 치면 10분 이상은 스마트폰을 확인한다. 혹은 갑자기 안 하던 방 정리를 하고 나서 다시 책을 드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저자는 이것을 블리딩 오버 효과라고 부른다. 즉 뇌의 신경 가소성으로 인해 디지털 환경에 노출될수록 뇌의 회로도 디지털 매체의 특징을 닮아간다. 멀티태스킹이 수월해지는 반면 몰입도는 떨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종이책 읽기가 더욱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변해가는 뇌의 경로를 재설정하여 집중력을 회복할 방법은 독서에 있다. 책은 깊이 읽기에 적합한 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손으로 밑줄을 긋거나 포스트잇을 붙이는 등 각자의 페이스에 맞춰 탐독한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여러 번 다시 읽으며 천천히 곱씹는다. 앞 페이지로 돌아가 잊어버린 내용을 상기시킬 수도 있다. 전자책이나 온라인상에서는 같은 행위를 하기가 쉽지 않다. 종이책만큼의 생생한 감각도 부족하다. 전자 기기와 달리 책이 지닌 물성은 촉각을 활성화시킨다. 이러한 감각피질은 뇌의 시각, 언어 영역과 상호작용하여 심도 있는 읽기에 도움을 준다. 편의성은 부족하지만 인지와 장기 기억 측면에서 종이책이 유리한 이유다.

이와 같은 차이점을 입증한 연구 사례가 있다. 바로 노르웨이 학자인 안네 망겐이 동료들과 한 실험이다. 그는 피험자인 학생들에게 절반은 킨들로 소설을 읽게 하고 절반은 종이책으로 읽게 했다. 그 결과, 종이책으로 읽은 학생들의 줄거리 재구성 능력이 스크린으로 읽은 학생들보다 더 뛰어났다. 이스라엘 과학자 타밈 카치르가 초등학교 5학년생을 상대로 한 연구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도출된다. 다수의 아이가 디지털 읽기를 선호했으나 핵심을 이해하는 데는 인쇄물이 더 효과적이었다.



독자들이여, 다시 책으로 돌아갑시다


저자는 종이책의 필요성에 관해 객관적 사례와 주관적 경험을 토대로 적절히 나열한다. 그중 가장 큰 경각심을 일깨운 것은 비판적 사고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경고다. 콘텐츠를 대신 선별해주는 큐레이션이 각광받을 만큼 우리는 정보 과잉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올바른 정보를 판별하는 분별력과 해석력이 필수로 자리매김한다. 충분한 비판의식을 갖추지 못하면 허위 정보에 매몰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타인의 생각만 답습할 수도 있다.

잠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보고서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18 한국>을 살펴보자. 한국은 설문에 참여한 37개국 중 5위로서 뉴스 선택 시 '좋아요'나 댓글 수에 좌우되는 경향이 높다. 분명한 사실은 다수의 대중에 의해 형성된 여론이 언제나 정당하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판적 사고 없이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함을 인식하고 이의를 제기할 의지도 위협받는다. 따라서 책을 통해 배경지식을 습득하고 주어진 정보를 각자의 관점에서 분석해야 한다는 말은 설득력을 높인다.

그러나 새로운 차원의 변화가 진행되는 세상에서 종이책만을 완벽한 해결 방안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양손잡이 뇌를 발달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교과서적이지만 책을 읽는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선 간과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우리의 문해력과 공감 능력, 비판적 사고 등을 유지하기 위해 균형 잡힌 뇌를 추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디지털 매체에 사로잡힌 일상을 되돌아보고 깊이 읽기와 함께하는 사색의 나날이 필요하다. 하루의 대부분을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보낸다면, 천천히 짧은 시간이라도 책 읽기에 전념하는 시간을 늘려보자. 오랜 세월을 거쳐 쌓아 올린 우리의 읽는 능력을 상실하기 전에 말이다.


참고자료: 중앙시사매거진, 2018년 한국인이 세상을 읽는 방식


[장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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