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권력, 혹은 폭력 [문화 전반]

글 입력 2019.07.11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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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공개된 ‘배스킨라빈스’의 제품 광고가 여아 모델을 성적으로 상품화했다는 이유로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비판이 계속되자 사측은 광고를 삭제하고 사과문을 올렸으나 이로 인해 촉발된 수많은 담론까지 삭제하지는 못했다. 광고가 기획되고 제작되어 소비되는 과정에서 구석구석 들춰진 여성과 아동을 둘러싼 시선들은 가히 충격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 충격적인 과정에 가담한 사람들이 정말 작정하고 여아를 성적으로 상품화하여 소아성애적 측면으로 생산 및 소비하고자 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으리라. 광고는 아무렇지 않게 제작되어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에 가닿았을 것이다. 광고의 문제점을 일절 이해하지 못한 듯한 사과문 역시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삭제되었을 것이다. 2008년생 모델은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상품화의 맥락에 합류되었다. 이거, 정말 아무렇지 않은 걸까?


*


해당 광고가 모델에게 투영한 이미지는 크게 두 가지의 방면에서 문제적인데, 우선 기존 여아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강화시킨다는 점에서 그렇다. 배스킨라빈스는 7월에 출시되는 ‘핑크스타’라는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온갖 분홍색 이미지들 속에서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채 얌전하게 아이스크림을 먹는 여아의 모습을 연출했다.


보통 아동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는 순수하고 활동적인 이미지는 철저히 배제되었다. 남아와 여아가 섞여 등장하거나 남아만이 등장하는 광고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다. 아이스크림 광고인데도 아이스크림의 맛이나 아이스크림을 먹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강조되지 않고, 온갖 스테레오타입을 흡수한 시각적 이미지가 되어 ‘바라봐지는’ 아동만이 이 광고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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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모델이 등장하는 다른 광고

 


두 번째 문제점은 성인 여성에게 주어지는 여성 혐오적 스테레오타입을 아동에게 투영했다는 것이다. 모델의 짙은 화장과 카메라를 응시하는 시선, 얼굴(특히 입술)을 부각시키는 클로즈업 샷 등 광고에 등장한 성 상품화의 방식은 이미 수없이 사용되어 왔으나 이번 경우는 그것이 아동에게까지 이르게 된 것.


아이가 성인처럼 나와서 문제가 된다는 것은 동시에 성인 여성에게 얼마나 유해한 스테레오타입이 강제되고 있는지 반증하는데, 그로부터 탈피하기 위한 운동이 지속되고 있는 와중에 그에 속박된 아동을 바라보는 충격이자 그것이 아동의 자유라고 말하는 것을 보는 허탈함이다. 윤리적 둔감함이 쌓이고 쌓여 마비에 이른 수준이다. 이제야 수면 위로 올라왔지만, 문제가 가시화되기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거대하게 축적되었을 빙산은 지금도 언제든 사회를 좌초시킬 수 있을 정도로 공고히 자리하고 있다.


 


선명한 경계를 위해 무너지는 경계



사실 이 두 가지의 문제점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여성 혐오라는 같은 뿌리에서 두 가지의 양상으로 갈라져 나왔을 뿐이다. 앞서 언급한 광고에 등장한 기존 여아의 스테레오타입은 얌전함과 조숙함을 강조하여 여아를 아동의 영역이 아닌 (가부장제 내) 여성의 영역으로 편입시킨다. 여아와 성인 여성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리는 움직임이다. 이것이 위험한 이유는 아동의 약함을 성인 여성에게 전이하여 여성을 수동적이고 무력한 존재로 규정하는 동시에, 성인 여성에게 강제되는 상품화를 아동에게 전이하여 여아를 위험에 노출시키는 엄연한 여성 혐오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못생긴’ 성인 여성이 ‘예쁜’ 아동을 질투해서 광고를 비판한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던 것을 보면 여아를 예쁘다고 규정할 수 있으며 성인 여성과 대치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모양이다. 여성에 대한 타자화와 더불어 여성 혐오에 대한 분노를 여성에 대한 질투로 환원하는, 몹시 가부장적인 관점이 작동되고 있다. 여기서 여아와 성인 여성의 경계는 여성과 남성과의 경계를 선명히 하기 위해 무너진다. 흐려진 경계를 사이에 두고 뭉뚱그려진 여아와 성인 여성은 타자로 전락하고 남성과의 권력 관계에 종속됨으로써 납작하게 규정된다. 예쁜 여자, 그리고 예쁜 여자를 질투하는 못생긴 여자로.


 


아동의 결정권을 결정하려는 어른들



아동의 안전을 위해서 법적·사회적 제재에 달하는 구속력이 필수적으로 작동되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한국 사회는 이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노 키즈 존’이 말해주듯 아이를 보호하는 것을 넘어 아이를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조차 않으려는 것처럼 보이는 한국 사회는 아동의 모든 권리를 경시하면서도 ‘성적 자기 결정권’만은 끔찍하게 챙기는 듯싶다. 그러나 여기서 ‘성적 자기 결정권’은 누군가에 의해 자의적으로 결정된 것이라는 점에서 원래의 정의와 완전히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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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세 아동에게 술을 먹이고 성행위를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30대 학원장의 형량은 피해 아동이 사건 당시 ‘반항이 불가능한 상태’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8년에서 3년으로 대폭 감형되었다. 법원이 생각하는 아동의 성적 자기 결정권이란 이런 것이다. 10세 아동이 30대 성인에게 ‘충분한’ 반항을 하지 않으면 성행위에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 근거. 동등한 관계로서의 합의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상대방의 동의는 어떠한 경우든 허구적 개념이 맞다. 아동의 성적 자기 결정권은 다른 곳도 아닌 법 체계에 의해 상황에 따라 조작할 수 있는 허구적 개념이 되어 성 착취를 정당화하는 핑계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아이다움을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폭력이라는 주장은 그래서 틀렸다. 짙은 화장과 상품화 도상으로 연출되는 ‘아이답지 않음’은 권리가 아니라 강제된 것이다. 타자의 관점으로 아동의 권리를 인정하려는 사람들은 아동이 주창하지도 않은 권리를 근거로 들이밀며 실제 아동의 권리를 짓밟는 데 사용한다. ‘아이다움’과 ‘아이답지 않음’ 중, 무엇이 아이에게 더 위협이 되며 무엇이 더 실질적으로 유해한지 고민해보아야 한다. ‘아이다움’은 스테레오타입이라기보다 스테레오타입을 차단하고자 하는 보호막에 차라리 가깝다.


 


난 아무렇지 않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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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맥락에서 배스킨라빈스의 사과문은 무의미하다. 아동의 부모와 합의된 내용이며 일반적인 아동 모델의 스타일링을 했을 뿐이라는 해명에서 아동에 대한 보호를 약속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감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사과문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우리가 보기엔 아무렇지 않지만 네가 불편하다면 사과할게’ 정도 될까.


그러나 이것은 특이한 일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여아는 법의 테두리에서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윤리적, 도의적, 암묵적 약속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해 형성된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조차 이들을 외면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자들을 제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 역시 아무렇지 않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은 권력이자 폭력이다. 광고주의 의도가 어떻든 광고의 사회적 영향과 광고가 소비되는 맥락에서 아무렇지 않을 수 없는 자는 따로 있는데, 아무렇지 않은 타자가 아무렇지 않다는 이유로 그들을 소외한다. 그리고 비판하는 목소리를 조롱하거나 모델을 희롱하는 등 아무렇지 않을 수 없는 일은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너무나 익숙한 도식이다.


그러나 불편을 자각한 수많은 사람이 뒤돌지 않았듯, 그리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낙오되고 있듯 아무렇지 않은 자들이 결코 아무렇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이 올 것이다. 순진함 속 불순함이 드러나길 바란다. 조금씩 깨끗해져 가는 세상의 물결을 따라가지 못하는 이물질로 남아 침전하게 되리.



[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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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iqww
    • 다른 부분은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첫 번째 문제점으로 지적하신 '기존 여아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강화시킨다.'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해당 광고에 등장하는 사람의 이미지는 눈여겨 보지 않으면 성인인지 아동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존 매체에서 많이 등장한 성인 여성의 이미지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성인 여성의 이미지'라는 것 자체로도 이미 성 상품화의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번 논란은 꽤 타당하다고도 여겨집니다. 하지만 해당 광고 출연자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광고를 처음 보는 입장에서 해당 광고에 등장하는 '성인 여성의 이미지'에 어떻게 '여아에 대한 이미지'가 이어지는지는 의문이 생깁니다. 광고 자체에 해당 모델이 아동임이 표현되는 장치가 없다고 생각되거든요. 그래서 저는 왜 굳이 아동 모델을 캐스팅 했는지에 대해 강한 의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성인 모델이 소화했어도 크게 달라질 것 없어 보이는데 말이죠.
      사실, 같은 맥락으로 보면 두 번째 문제점으로 얘기해 주신 '여성 혐오적 스테레오타입을 아동에게 투영'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광고 내적으로만 보면 투영할 아동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주관적이긴 합니다. 모델을 딱 보면 아이 같다고 하시면 저도 할 말이 없으니까요.) 그냥 성 상품화 광고 내지는 여성 혐오적 스테레오타입을 양산하는 광고라고만 생각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광고 외적으로 해당 모델이 실제로는 아동이었다는 점에서 아동에게 그런 고정관념을 투영한다고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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