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첫 번째 죽음에 관하여 [영화]

창 밖으로 뛰어내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
글 입력 2019.07.12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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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토이스토리4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 이제 정말 끝이구나.'


<토이스토리3>를 본 날 밤. 영화관의 불이 켜지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토이스토리는 이제 완전하게 끝이 났구나, 먹먹하지만 훌륭한 마무리네 라고. 그런 내 예상은 가볍게 빗나가 한 달 전, <토이스토리4>가 개봉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이런 결말에서 스토리가 또 진행될 수가 있지? 라는 의심스런 마음이 들었다. 너무나 흥행했던 시리즈였으니 팬들을 위해, 혹은 수익을 위해 억지로 뒷이야기를 우겨넣은 것은 아닐까. 그렇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3편 이후로 장난감들에게 더 이상의 사건을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3편을 통해 장난감들은 새로운 세상을, 아름다운 마무리를 맞았으니까. 그렇지만 ‘보니의 집’은 새로운 세상은 아니었다. 인간에 비유하자면 ‘이직’의 개념이었다. 그리고 4편의 주제는 진정한 끝, ‘은퇴'이다. 즉 첫 번째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디의 첫 번째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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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우리는 한 번의 죽음을 생각한다. 자신의 장기가 더 이상 삶에 협조하기를 거부할 때 찾아오는 육체적 죽음.


그렇지만 칼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의 저서 김영민 교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은 두 번씩 죽는다고 말했다. 육체적 죽음 이전에, 자신의 인생을 정의하던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어 삶의 의미가 사라졌을 때 사회적 죽음이 온다는 것이다. 이 사회적 죽음은 토이스토리4의 전체적인 내용을 아우르는 주제였다.


우디는 앤디가 가장 아끼는 장난감으로서 앤디와 즐겁게 놀아주고, 다른 장난감들을 이끌어주는 인생을 살았다. 보니의 장난감이 되면서 인생의 2막이 열리는듯 했지만, 보니에게 우디는 그다지 소중한 장난감이 아니었다. 엄마가 벼룩시장에 내다 버려도 별로 개의치 않을 들러리에 불과한 존재. 우디는 보니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었지만 보니는 우디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일방적인 사랑. 애써 웃어보던 우디는 서서히 지쳐갔다.


그런 보니에게 포키가 나타난다. 쓰레기 조각을 엉성하게 엮어 만들어진 포키. 남들에게는 쓰레기에 불과하지만 보니에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장난감이 되었다. 그렇지만 포키는 변해버린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꾸만 쓰레기통으로, 보니의 품 밖으로 도망을 친다.


우디는 보니의 사랑을 담뿍 받는 포키가 부럽기도 하면서, 가장 사랑받는 장난감의 역할을 행하지 않는 포키가 답답하기도 하다. 우디가 가장 그리워하던, 주인에게 사랑을 듬뿍 받던 그런 행복한 날들. 그렇게 소중한 기회가 찾아왔는데도 즐기지 못하는 포키를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우디에게 무엇보다도 간절한 시간이기 때문에.




봐, 나 아직 살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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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키는 도망을 친다. 우디는 따라가서 잡는다. 보니는 다시 행복해진다. 상황은 계속 반복되었고, 포키는 왜 우디가 자꾸 자신을 쫓아오는지 궁금해진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우디는 당연하다는 듯 소리친다. "보니는 네가 없으면 안 돼. 네가 있어야 보니는 행복해진다고!"


우디는 정말 보니만을 위해서 포키를 따라가는 것일까?


영화 중반 쯤 개비개비가 다시 한 번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묻는다. 스크린에는 순간 적막이 흐르고, 우디는 그 슬픈 눈을 깜빡이며 속내를 고백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 밖에 없잖아."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최고의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말을 뱉은 우디의 눈을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보니를 위해서라고 합리화했지만 결국 자신의 사회적 죽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우디의 씁쓸한 모습과 그 표정.


포키를 붙잡는 건 우디에게 사실 중요한 일이 아니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처럼 보니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일까? 보니의 행복만 바라보고 달리기에 우디는 일방적인 사랑으로 지쳐 있다.


그렇다면 보니에게 인정받기 위해서일까? 포키를 따라 달리는 자동차 창문으로 몸을 던져, 죽을 뻔한 고비를 여러 번 넘긴 건 우디지만 결국 보니가 따뜻하게 안아 주는 건 포키일 뿐이다. 보니는 결코 우디의 노력을 알아줄 수 없다. 그리고 우디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우디가 자꾸만 몸을 던져 포키를 따라가는 이유에는 보니가 없다. 그는 이 세상에 소리치고 싶은 거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여기 있지 않느냐고.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고 싶은 행동.


포키를 따라 달려야 했던 날들. 그 시간 속에서 우디는 수천 번 수만 번 스스로에게 되뇌었을 것이다. 왜 나는 이렇게까지 열심히 포키를 구해야 하는 것일까. 지금 여기서 멈춘다면, 정말 이 세상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까?




인생의 2막이 열리고,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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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는 결국 새로운 삶을 선택했다.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는 세계를 벗어나, 보핍을 따라 새로운 인생을 구축하기로 했다. 토이스토리 1~3편에 걸친 우디의 각종 활약을 내려놓고 떠나는 진정한 은퇴였다.


과감하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우디의 마지막 모습은 참 멋있었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디는 이제 수많은 질문과 물음표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장난감으로서 역할에 국한된 틀에서 벗어나 진정한 본인의 삶을 개척하여 나가겠지.


가끔 존재 가치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 날이 있다.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일까, 나에게는 무슨 존재 가치가 있을까? 섣불리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소중해.”, “너라는 사람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존재 가치가 있어.”, “네가 죽으면 슬퍼할 주변 사람들을 생각해 봐.” 같이 당연하지만 추상적이기에 와닿지 않는 말 대신. 정말로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필요하다. 내가 이 세상에 무엇을 기여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무슨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가는 어쩌면 의식주보다도 필수적인 요소이고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그리고 직업이 평생이 이유가 되기에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 길다.


첫 번째 죽음을 맞이하는 날은 아직 내게 까마득하게 멀리 있지만 오늘도 나는 나의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다. 달리는 차의 창문 밖으로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우디를 떠올리면서.





[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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