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드라마 '킬링이브'를 통해 본, 여성 중심 콘텐츠의 현주소 [TV/드라마]

글 입력 2019.07.12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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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로 대표되는 다양한 스트리밍 콘텐츠 서비스가 활성화되기 시작하면서 콘텐츠 시장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시청자와 제작자 간의 거리가 좁혀졌다는 점 역시 그 변화 중 하나다. 스트리밍 콘텐츠의 대부분은 시즌제로 진행된다. 때문에 현재 제작되고 있는 콘텐츠의 경우 SNS나 시청률을 통해 시청자들의 선호도나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 다음 시즌 진행 여부를 결정하기도 하고, 다음 시즌 내용에 시청자들의 의견을 반영하기도 한다. 또 제작사는 시청자들이 선호하는 콘텐츠의 특성을 확인하고 이에 맞춰 새로운 콘텐츠를 제작한다.


이처럼 시청자와 제작자 간의 거리가 좁혀지면서 콘텐츠는 시청자들의 취향과 요구를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생겨난 최근 스트리밍 콘텐츠의 큰 흐름 중 하나는 ‘여성 중심 서사’다. 페미니즘의 확산과 시청자들의 인식 변화로 인해 이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여성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여성 중심 서사가 인기를 끌고 있다. 오늘은 최근 왓차에 의해 공식적으로 한국에 수입된 ‘킬링이브’를 중심으로 여성 서사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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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이브는 국내에서 정식 수입되기 이전부터 많은 화제와 기대를 모았다. 2018년 첫 번째 에피소드 반영 이후 매회 시청자 수가 증가해 마지막 방송은 첫 방송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시청자 수를 올리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비평가들 역시 킬링이브의 매력을 인정했다. 세계적인 비평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 킬링이브의 신선도 지수는 97%로 매우 높은 편이며, 영국 아카데미 TV 시상식에서 15개 부분에 노미네이트되고 최우수 드라마 상등을 받아 3관왕에 올랐다. TV 크래프트 어워즈에서도 9개 부분에 노미네이트되고, 음악상 등을 받아 2관왕에 올랐다.

 

특히 주인공 이브를 연기한 한국계 캐나다인 배우 산드라 오는 골든 2019년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아시아계 배우 최초이자 아시아계 배우로는 38년 만에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쥐었다.

 

이처럼 검증된 작품성은 물론, 사이코패스 킬러와 영국 정보국 요원이 서로를 향해 왠지 모를 끌림을 느끼면서 얽힌다는 흥미로운 스토리 라인 역시 한국 시청자들의 기대를 모으기 충분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국내 시청자들이 기대한 점은 바로 ‘아시아계 여성 배우’가 주연을 맡는다는 거였다.


지금까지 스트리밍 콘텐츠 서비스에서 주로 볼 수 있었던 해외 제작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는 여성 중심이라고 해도 주로 1세계 백인 중심의 서사가 주라는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인종의 여성들이 주요 인물을 맡은 포스터는 다양한 여성들의 서사에 관심이 많은 국내 시청자들의 기대를 높이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지난 6월 28일, 왓챠플레이에서 단독으로 공개된 킬링이브가 공개됐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렇게 높아진 국내 시청자들의 기대를 ‘일단은’ 충족시켜 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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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이브의 서사에서 가장 중점이 되는 것은 영국 정보국 요원 ‘이브’와 사이코패스 킬러 ‘빌라넬’의 관계다. 둘이 처해있는 환경과 성격, 가치관은 매우 다르지만 둘은 서로에게서 형용할 수 없는 유대감을 느끼고 서로에게 빠져들게 된다. 어떻게 보면 흔하다고 할 수 있는 스토리지만 드라마에서는 관계가 진전되어감에 따라 변화하는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매우 섬세하게 그려냈다. 한편으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두 사람의 관계 때문에 드라마를 보는 내내 긴장을 놓칠 수 있다. 섬세한 감정 묘사와 긴장의 연속, 이는 성전환에서 오는 쾌감에서 더욱 극대화된다.


지금까지 보통 잔혹하게 사람을 살해하는 사이코패스 킬러의 역할이나, 그 킬러를 쫓는 인물은 대부분 남성 캐릭터였다. 그러나 킬링이브에서는 여성 킬러와 여성 수사관 캐릭터를 내세우고 있다. 단순하게 성별만 바꾼 것과는 다르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캐릭터이기 때문에 가능한 사건 전개들을 킬링이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빌라넬이 암살을 위해 움직일 때 위압적인 남성 매니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그의 앞에 탐폰을 꺼내 그를 당황시키는 장면 등은 아마도 지금까지의 남성 킬러 캐릭터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던 모습일 것이다.


이와 같은 쾌감은 지금까지 다양한 드라마에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내공을 쌓아온 산드라 오와 천방지축이지만 영리하고 민첩한 사이코패스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해 낸 조디 코머의 연기력을 바탕으로 극대화된다. 그 외에도 영국, 프랑스, 독일, 루마니아 등 유럽 각국이 배경이 된 감각적인 미장센과 액션씬 등의 연출이 탄탄한 것 역시 극의 재미와 완성도를 더해주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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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장점들은 시청자들을 매혹시키는데 충분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은 남는다. 킬링이브는 시즌 1에서 2로 넘어가면서 제작진들이 교체된다. 교체로 인한 변화도 생겨났는데, 이 변화가 과연 킬링이브라는 콘텐츠에 유익한 변화일지 의심스럽다. 우선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은 중심 스토리, 중심 시점의 변화다. 킬링‘이브’는 이브라는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만큼 산드라 오가 역할을 맡은 영국 정보원의 이브가 주요 인물로, 시즌 1에서는 주로 이브 시점에서 사건과 심리가 전개된다.


그런데 시즌 2에서는, 물론 이브의 분량이 여전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브에 맞춰 이야기가 전개되기보다는 빌라넬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더불어 둘의 관계성에 대한 서사보다는 빌라넬의 살인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브는 계속해서 빌라넬의 주변을 맴돌며 빌라넬에게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기만 하는 존재로 격하되는 느낌까지 들 정도다. 시즌 1에서 팽팽하게 긴장감을 두고 줄다리기를 하던 둘 사이의 관계와 그 관계를 진행시켜나가는 둘의 심리가 섬세하게 표현되는 게 시청자들을 끌어들인 큰 포인트였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아쉽기 그지없는 부분일 수밖에 없다.


전체적인 완성도 역시 시즌 1보다 떨어진 느낌이 든다. 어느 정도의 사회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알 수 있는 ‘이브’라는 이름과 ‘사과’라는 메타포의 상관관계를 이브가 굳이 구글 검색창에 ‘이브, 사과’라는 검색어를 써서 검색하게 하는 장면이나, 시즌 1에서 꽤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던 커비가 시즌 2에서 ‘죽음이 무섭다’는 이유로 팀에서 하차했다는 다소 엉성한 이유로 하차하게 된 장면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보다 빌라넬 중심의 서사가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빌라넬에 대한 캐릭터 이해와 전개도 아쉬움이 남는다.


빌라넬은 사이코패스라는 특성상 사회성이 다소 떨어지고 제멋대로지만 자신이 맡은 일, 즉 살인에 대해서는 애정을 가지고 치밀하고 완벽하게 해내는 캐릭터다. 자신이 깎은 정교하고 아름다운 살인도구로 살인을 감행하는 것은 물론 사람의 심리와 특성을 이용해 대담하지만 깔끔한 살인을 한다. 그러나 시즌 2에서의 빌라넬은 넥타이로 질식시키거나, 죽인 후 랩에 감싸는 단순하고 무자비한 살인을 한다. 기존에 나왔던 잔인함만을 추구하는 살인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사가 진행되면서 변화하는 캐릭터임을 감안하더라도 의뭉스러운 지점이다.

 

사실 시즌제로 운영되고, 팀 작업으로 제작되는 콘텐츠의 특성상 시즌에 따라 완성도가 달라지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특히 새로운 시도를 한 콘텐츠라면 더욱 그렇다. 시즌 2에서의 실망감에도 불구하고 내년에 나올 킬링이브 시즌 3을 기대하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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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종종 이렇게 새로운 시도, 특히 최근에는 여성주의를 바탕으로 다양성을 포용하고자 하는 내용이 담긴 콘텐츠들이 혹평을 받았거나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을 때 ‘다음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넷플릭스에서는 다양한 성소수자와 인종을 포용한 드라마 ‘센스 8’, 라틴계 이주민 가족의 모습을 진솔하게 드러낸 시트콤 ‘원 데이 앳 어 타임’, 드루 베리 모어가 좀비로 나오는 코믹 드라마 ‘산타클라리타 다이어트’등이 좋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초반 시즌에 캔슬이 결정돼 많은 시청자들이 실망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을 두고 넷플릭스에서는 여자, 장애인, 성소수자는 인생이 시즌 3에 캔슬된다.라는 말까지 SNS에 농담처럼 떠돌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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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고서 완벽한 작품이 나오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현재 연일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시리즈들 역시 이전의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여성이 중심이 되는 콘텐츠들은 지금까지 ‘당연한 것’이라고 여겨왔던 다양한 콘텐츠의 법칙들을 뒤집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이므로 당연히 실패가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이 ‘여성 중심 서사는 완결성이 떨어진다’, ‘여성 중심 서사는 흥행이 어렵다’는 생각으로 대중들에게 고착되지 않기를 바란다.


조금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분명 더 좋은 결과물들이 나타날 것이므로. 최근 한국에서도 미씽, 허스토리, 미쓰백, 눈이 부시게, 거리의 만찬 등 다양한 여성들이 주가 되는 콘텐츠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눈에 띄는 흥행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러나 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존의 질서를 깨뜨리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이들에게 관심을 주고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한다면, 곧 보다 뛰어나고 훌륭한 콘텐츠들이 그에 맞는 관심을 받으며 쏟아져 나오리라 믿는다.

 

 

[권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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