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지루하고 지루하며 지루하다 [사람]

더는 모든 게 새롭지 않다는 생각이 든 적 있나요?
글 입력 2019.07.13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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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이 지루한 모든 어른을 위해



놀이공원을 갈 때마다 어릴 적 기억이 난다. 부모님께서 놀이공원 가시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으셨지만, 같이 간 적이 있다. 달콤한 츄러스를 다 먹고 바이킹에 줄을 섰을 때, 겁나는 걸 티 내고 싶지 않아서 일행을 따라 바이킹의 가장자리, 제일 높게 올라가는 의자에 몸을 실었다. 이전에도 바이킹을 탄 적이 몇 번 있어 별거 아니라는 건 알았다.


하지만 무서웠다. 내리고 싶지 않았지만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았다. 바이킹이 시소처럼 흔들거리며 가장 높은 곳에 도착할 때까지 아프도록 손잡이를 쥐어 잡았다. 그때 아버지가 손을 겹쳐 잡아주었다. 안심해 바이킹이 멈추기 직전에는 한 번 정도 손도 위로 번쩍 들었다. 붕 뜨는 느낌에 장기가 덜컥거리고 발끝이 오그라들었지만, 바이킹에 대한 기억이 참 좋게 남아있다.


최근에 놀이공원을 다녀오면서 추억의 바이킹을 다시 타게 되었다. 이번에는 친구와 같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가장자리에 탑승했다. 시작 전 안전을 점검하는 시간이 참 길고 따분하게 느껴졌다. 바이킹이 출발하고, 우리는 우리가 탄 끝 부분이 위로 치솟을 때마다 손을 번쩍 들었다. 기계장치가 움직이면서 느껴지는 스릴보다 저 멀리에서 밤하늘에 수 놓일 폭죽을 볼 재미로 탑승했는데, 안타깝게 우리가 탄 바이킹의 끝 부분에서는 폭죽이 완전히 가려졌다.


실망한 일행은 바이킹 자체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런데 재미가 없다. 위아래로 움직임만 반복하는 바이킹은 다른 빠르고 자극적인 놀이기구에 익숙해진 우리의 속만 울렁거리게 하였다. 빨리 내리고 싶었다. 어릴 때처럼 무서워서가 아니라, 지루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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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모든 게 그랬다. 유럽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땐, 모든 게 신기하고 낯설고 새로워서 지나가는 비둘기만 봐도 탄성을 뱉었다. 하지만 중반쯤 되자 어느 나라에서 무엇을 봤는지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비슷비슷하게 느껴졌다. 관망대가 있으면 무조건 올라가서 도시를 구경했는데 여행의 후반부에는 굳이 올라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지나치곤 했다.


권태는 시칠리아 섬에서 이슬람과 비잔틴 문화 양식이 섞인 성당이나 집을 보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건물에 대해 잘 알지도 흥미도 없으므로 붉은 지붕만 보면 다 똑같아 보인 탓이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건물에 대해 잘 안다고 해도 같거나 비슷한 건물을 계속 보게 된다면 언젠가 질린다.


바이킹이나 여행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책, 영화, 드라마, 사람과의 관계, 좋아하는 취미, 인생의 모든 것이 아무리 많이 좋아한다 해도, 언젠가 재미없어지는 날이 오고 만다. 새로운 게 없는 한은.




지루하고 지루하며 지루하다



몇 년 정도 나는 권태 지옥에 빠졌다. 모든 게 시시하고 재미없었다.


무언가 하고 싶지만 할 만한 것은 다 이미 익숙하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여행을 가자니 준비과정과 여행 동안 움직이면서 느낄 피로함을 가기도 전에 알았다. 막상 간다고 해도 이미 익숙한 건물이나 어디선가 먹어본 맛의 음식이 나를 반겨줄 것이다. 책이나 영화, 공연에는 클리셰가 나오지 않는 게 없었고 중반부가 되면 결말이 자연스레 예측되었다. 그렇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오만하게 세상 모든 것을 이미 다 안다는 착각에 빠져 지루함의 늪을 헤엄쳤다.


그러니 지금 내가 쓰는 글을, 권태의 지옥에서 빠져나가는 방법을 새로운 무언가를 하자는 것으로 끝내고 싶지 않다. 인생에 활기를 불러줄 새롭고 신선한 것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지루해진다. 그렇다고 또 새로운 것, 다시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맬 수도 없는 일이다. 애당초 나란 사람은 지루하다고 새로운 것에 끈기있게 도전하는 유형이 아니다. 아마 사람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지루한 게 참 싫은데, 새로운 것도 참 싫은, 그렇고 그런 회색 인간.


그렇다면 어쩌라는 거냐, 이 글의 요점이 무엇이냐. 사실 할 말이 없다. 지루함에 대해 써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 시작했는데, 계획을 짤 때부터 이 구간에서 한참 막혔다. 이러다 다른 주제로 글을 써야 하는 건 아닐까. 지금껏 글을 읽은 사람에게 무슨 변명을 하지? 이 글은 버리고 모르는 척 아래부터 슬그머니 추리에 관한 이야기를 써볼까? 당당하게 나가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텐데. 아니면 병원에 갔던 이야기는 어떨까. 그것도 아니면 웹툰에 관한 이야기? 아, 좀 괜찮은 거 같은데…….




네이버 웹툰,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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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웹툰 <금요일> 중



네이버 웹툰 중에 ‘금요일’이라는 작품이 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연재했던 작품을 2018년 12월부터 재연재하고 있다.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단편 만화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로 이야기에 반전을 넣어 공포감, 스릴감을 조성하는 만화이다. 웹툰 ‘금요일’의 단편 중에 ‘퍼펙트 월드’라는 제목의 작품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더는 놀라울 것도 경이로울 것도 없었다. 아니, 물론 아직도 이 세상에는, 보고 듣고 경험하지 못한 경이로운 것들이 무수히 많지만 이젠 무엇을 해도 처음만큼의 감흥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내가 느낄 수 있는 감동의 최대치를 몇 번이나 갱신하며 느껴봤으니, 감동이나 행복에 도달하기까지의 역치가 너무 높아져 있었다. (……) 무엇이든 할 수 있음에도 무엇도 하기가 싫은 깊은 무기력감. 도대체 무엇일까, 이 공허함의 정체는,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불현듯 내가 빠져 있는 딜레마의 정체를 깨달았다. 행복이나 만족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불행과 불만이 해소될 때 주어지는 반대급부적 보상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말이다. 배가 고프지 않다는 것은 먹는 행복이 없다는 것, 돈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버는 만족이 없다는 것, 사람이 아쉽지 않다는 것은 사귀는 기쁨이 없다는 것.


결핍이 존재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충족의 끝은 결핍도 만족도 똑같이 무의미해지는 감정의 뇌사상태뿐.



‘퍼펙트 월드’는 이 세상의 절대자가 주인공에게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면서 시작한다. 주인공은 무슨 소원이든, 몇 개가 되든 이루어달라고 말한다. 주인공은 하늘을 날기도 하고 구름 위에서 식사도 하며 사후 세계에 가기도 한다. 그러나 이내 모든 게 즐거움의 역치가 높아지자 배고프게 해달라, 즉 불행하게 해달라는 주문을 빌려고 한다. 위 구절은 주인공이 절대자에게 배고프게 해달라는 소원을 비는 게 왜 찜찜한지 고찰하다 생각하며 나오는 말이다.


행복이란 불행하지 않은 상태를 말하고 기쁨이란 슬프지 않은 상태를 말하며 새로움이란 익숙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반대로 말하면 행복하기 위해선 반드시 불행이, 기쁘기 위해선 반드시 슬픔이, 새롭기 위해선 반드시 익숙함이 존재해야 한다. 어둠이 존재해야 빛이 생기는 것처럼, 겨울이 없으면 따뜻한 봄바람은 느낄 수 없는 것처럼 이 세상 모든 앞면은 뒷면의 존재로 인해 생긴다. 지루함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없다면, 새로움이란 감정도 느낄 수 없다.


너무 당연한 말인데, 그 전까지는 전혀 생각을 못 했다. 달달한 사탕을 먹으면서 녹지 않길 바라는 건 큰 욕심 아닌가. 지금껏 새로운 걸 접하면서 지루해지지 않길 바라는 욕심을 부렸던 거였다.




무한한 우주, 그 너머가 아닌 그 안쪽으로



나는 일기를 열심히 쓰는 편이 아니다. 어릴 때도 일기는 밀린 골칫덩이 숙제에 불과했다. 어른이 된 후 종종 일기를 쓰려고 일기장을 펼쳤으나 며칠 안 가 그만 쓰곤 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데 굳이 일기를 쓸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러다 토끼 똥처럼 뚝뚝 끊어진 일기를 모두 모아 펼쳐보니 거기서 거기 같던 일상이 아주 미세하게 달랐다. 밥을 먹더라도 좋아하는 걸 먹어서 기분이 좋았는지, 안 좋아하는 걸 먹어서 기분이 나빴는지, 정말 엄청 좋아하는 거라 기대하고 먹었는데 맛이 별로라서 실망을 했는지에 따라 모든 하루가 조금씩 변화했다. 늘 똑같다고 생각한 인간관계는 싸우고 화해하고, 크게 웃고 행복해하는 모든 순간순간이 달랐다. 같은 여행지를 가도 하는 일, 그때 만난 사람, 같이 있던 사람, 간 공간, 나의 감정에 따라 보고 느끼고 즐기는 게 바뀌듯이.


미국에 교환학생을 갔을 때, 지내던 지역 근처라 여러 번 뉴욕에 갔었다. 그런 익숙하고 지루한 뉴욕에 새벽에 도착해, 브루클린 브릿지 위에서 아침 해가 뜨는 광경을 보기 위해 기다린 적이 있다. 새벽에 도착해 시간을 때운 적도, 다리 위를 걸어 다닌 적도, 일출을 기다린 적도 참 많았지만 추운 겨울에 친구와 밖에서 스트레칭이며 새천년 체조를 하며 기다린 건 처음이었다. 춥고 졸려 다리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바람을 피하고자 다리에 설치된 벽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도 했다. 추운 것도, 졸린 것도, 존 것도, 바람을 피하려고 움직인 것도 흔해 빠진 일상이었지만 새벽이라는 시간과 함께 있던 사람이 모든 상황을 새롭게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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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브루클린 브릿지에서 직접 찍은 풍경



바이킹을 탔을 때도 그렇다. 어릴 때 가족과 같이 간 날에는 츄러스를 먹었지만 이번에는 커다란 닭꼬치를 먹었다. 어릴 때는 줄이 길어 밖에서 줄을 서며 츄러스를 먹었는데 최근에 갔을 때는 밤이라 줄이 없어서, 밖에서 허겁지겁 닭꼬치를 먹고 들어갔다. 바이킹을 타며 반대쪽에서 터진 폭죽을 볼 거라고 목을 내민 것도 어릴 적과 다른 점이고 바이킹을 탔는데 이상하게 멀미가 나서 고생한 것도 이번에만 있는 일이었다.


친구와 내가 같이 멀미를 하며 이상한 소리를 내자 다른 친구가 빨리 내려서 쉬자며 걱정해준 것도 색다른 점이다. 이렇게 다양한 부분이 이전의 경험과 이후의 경험을 다르게 만드는데 나는 모든 것을 지루하다, 권태롭다, 똑같다는 단어로 압축해 빛을 잃게 하였다.


똑같은 것은 없다. 똑같아 보일 뿐. 멀리서 보면 우주는 검은색에 빛나는 점들이 박혀있고, 그 빛나는 점은 모두 비슷하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안쪽을 살펴보면 어떤 점은 초록색에 파란색을 띄우며, 시시각각 변하는 흰 구름을 가진 별이고, 또 어떤 점은 검은 줄무늬와 밝은 줄무늬로 마블링 되어 비싼 대리석처럼 보이는 별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우주의 밝은 점 하나하나가 모두 다르고, 모두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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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쩌라는 거냐, 이 글의 요점이 무엇이냐. 일상이 지루하고 재미없다면, 인생에 돋보기를 붙여보자. 작은 부분을 살펴본다면 분명 뻔한 상황 사이에 새로운 무엇이 튀어나올 것이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너무 당연한 말이라며 답답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 개인은 거시적인 시점을 미시적인 시점으로 바꾸며 많은 장점을 얻었다. 우선, 소박하고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달은 대가로 식은땀을 닦아내며 어찌어찌 글을 마무리 지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게 그렇다. 그러니, 앞으로도 권태 지옥, 지루함의 늪에서 자신을 스스로 끌어 올려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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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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