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고요한 오후의 퍼레이드 [도서]

도서 [퍼레이드-요시다 슈이치] 리뷰
글 입력 2019.07.13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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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심리에 관한 간결하면서도 감각적인 표현이 주를 이루는 이 소설은 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첫 장편소설이다.


[최후의 아들]이란 소설로 일본 문학계 신인상을 받으며 불쏘시개처럼 등장한 그는 이후, 내놓는 작품마다 일본 최고 권위의 상들을 휩쓰는 기염을 토하며 단시간에 일본에서 주목받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활동하게 된다. 또한, 그는 이 소설을 내놓음과 동시에 대중의 인지도가 높은 신인작가에게만 수여하는 야마모토슈고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반면에 나는 소설 [퍼레이드]가 아닌 2년 정도 후에 출간된 [동경만경]이란 소설을 통해 작가 요시다 슈이치를 알게 되었다. 책 표지가 유달리 예뻤던 [동경만경]을 구매한 뒤 본격적으로 소설을 읽으면서부터는 그 당시에 서늘한 두 남녀의 감정이 무척 궁금했다. 그리고 소설 속에 그려져 있는 도쿄의 오다이바의 풍경이 너무 보고 싶었다.


신기하게 그즈음, 회사 출장이 도쿄로 잡혀 그 어느 때보다도 신이 나서 출장을 준비했던 경험이 있다. 그때 내가 보았던 오다이바는 책에서 읽었던 것처럼 회색빛 도시에 잿빛과도 같은 하늘, 바다 같은 드넓은 강, 멈춰있는 듯한 생기의 우울한 풍경이었다.


출장을 다 마치기도 전에 오다이바가 전해오는 그 큰 우울함에 압도되어 축 처진 기분으로 일정을 망칠까 봐 서둘러 실장님을 모시고 유명한 맛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식당으로 향하면서도 그의 소설 속에 표현된 생기 없는 오다이바의 이 대단한 우울함을 어찌 그리도 적나라하게 잘 표현했는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버 조금 보태서 소스라치게 놀랐다는 표현이 맞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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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 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고, 두 번째로 기억에 남는 소설이 바로 이 [퍼레이드]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땐, 오마이갓. 평범하다 못해 시시껄렁한 청춘들이 녹여내는 이야기속에서 누구나가 될 수 있는 한 사람의 이중 인격성이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퍼레이드는 한집에서 사는 여러 명의 동거생들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엮은 이야기이다. 시골에서 도쿄로 상경한 요스케와 잘나가는 연예인의 숨겨진 애인인 고토미, 매일같이 술에 절어 사는 일러스트 미라이, 밤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토루, 그리고 영화사에 근무하는 가장 평범하고 정상적인 직장인 나오키. 이들의 이야기를 각각 자신의 관점에서 써내려가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옴니버스식 소설이다.


주인공들의 공통점은 현재 상황이 되기까지의 과정들이 아프다는 것이다. 그것을 무미건조하게 써내려 가며 개인의 상처와는 별개로 사람과의 관계는 적당한 가면을 쓴 채, 가식으로 적정선을 그리며 내 세상과 네 세상이 절대로 같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곳에서 잘 살아가려면 여기에 딱 알맞게 적응할 수 있는 모습을 연기할 수 밖에 없다. 이야기하고 싶은게 아니라 이야기해도 괜찮은 것만 이야기하기 때문에 이렇게 순조롭게 살아갈 수 있는지도.

 


글의 초반에는 웃긴 대목이 많아 코믹만화처럼 속도감 있게 즐겁게 읽어내려갔다. 그랬던 코믹함은 일련의 사건전개들로 어느덧 경악함으로 변해서, 그 경악함마저 요시다 슈이치는 너무도 덤덤하게 써내려갔다. 나 역시 덤덤하게 읽어내려가다 사악하고 추악한 인격을 마주하곤 일순간 섬뜩한 긴장감에 혀를 내둘렀다.



나는 그 여자의 입을 막은 채 여자의 등을 녹슨 담까지 무자비하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여자의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뭔가가 문드러지는 듯한 감촉이 손바닥에 느껴졌을 뿐이다. 가슴팍에 떨어진 헤드폰을 얼른 귀에 꽂았다. 꽂자마자 또다시 콘크리트 조각을 휘둘렀다.



친절한 사람의 가혹한 면모를 보게 되었을 때의 경악스러움. 사람의 이중성이란 정말 몸서리칠 만큼 무섭고 너무나도 참혹하다. 선함을 가장한 좋은 미소로 도배를 한 채 호의를 베풀며 뭇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선 최악의 범죄를 아무런 죄의식 없이 저지르고 있었다. 자신만의 잘못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위해 평범한 주인공은 무자비한 살인도 서슴없이 자행해왔다.


거기에다 이 모든 범죄행위를 다 알면서도 침묵하며 감싸주는 동거인들의 모습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역시 이 세상에서 귀신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것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제일 무서운 세상인 듯하다.


요시다 슈이치의 이러한 필력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가면서도 굉장히 인상 깊다. 다분히 코믹한 부분을 배치하면서도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은 절대 가볍지가 않다. 역시 요시다 슈이치는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는 작가이며 탁월한 천재임이 틀림없다.


[동경만경]을 생각하며 펼친 책의 내용은 잘 찍은 스릴러 영화 한 편을 소설에 담아놓은 듯했다.



청춘.


많은 것들을 갈망하는 청춘이지만, 어쩌면 아무런 희망도 미래도 원치 않고 그저 평범하게 내 하루를 살아가는 것에 더 의의를 두는 것은 아닐는지.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말은 우리네 청춘들에 너무나 가혹하다. 다음에는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 중 가장 밝은 책을 읽어야겠다. 좀처럼 여운이 가시질 않는다. 옛날 무한도전이라도 봐야 할 듯하다. 덤덤하고 코믹하게 읽다가 섬뜩한 반전을 맞보고 싶다면 요시다 슈이치의 [퍼레이드]를 강력 추천한다.



[정선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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