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의 황금시대는 언제인가요? - 미드나잇 인 파리 [영화]

글 입력 2019.07.1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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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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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동경했다. 분홍빛 하늘에 놓인 관람차와 장난감 같은 컵케이크, 피카소와 고흐의 그림, 빨간 2층 버스와 아름다운 에펠탑은 아침부터 밤까지 빽빽한 교실에 앉아 공부하는 여고생의 마음에 낭만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유럽에 다녀와 여행집을 낸 사람들의 책을 도서관에서 읽곤 했다. 막연히 유럽의 도시들을 꿈꾸던 그 무렵, 포스터 사진에 끌려 우연히 보았던 이 영화는 유럽을 향한 동경심에 불을 지펴준 영화다. 시작부터 울려 퍼지는 웅장한 재즈와 쉴 새 없이 펼쳐지는 파리의 풍경을 보니 가고 싶은 도시 1위로 손색이 없었다. 영화를 보고 다짐했다. ‘언젠가 파리에 가고 말 거야. 에펠탑의 풍경을 눈으로 직접 봐야지.’

 

20대가 되어 돈을 모아 갔던 유럽은 역시나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시장이 있고, 집이 있고, 카페가 있고, 쇼핑가가 있고.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넘치는 부로 명품을 휘감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인종과 거리의 풍경만 조금씩 다를 뿐 결국엔 사람이 사는 곳이란 느낌은 한국에서와 변함이 없었다.


그런 여행의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유럽은 꿈꿔온 만큼 아름다웠다는 것.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온 유럽의 낭만을 빈틈없이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가장 동경했던 도시이자 에펠탑의 도시, 파리 역시 말이다.


여고생 시절 유럽으로 향하는 꿈을 꾸게 해준 이 영화의 이름은 <미드나잇 인 파리>다. 풍경을 아름답게 담기로 유명한 우디 앨런의 영화이자 현재까지 영상미가 좋은 작품으로 회자되는 영화다. 우디 앨런은 뉴욕, 바르셀로나, 로마 등 작품 안에서 한 도시의 아름다움을 깊이 들여다보고 온전히 전해주는 감독이다.


이 영화에서 그가 선택한 곳은 세계인이 꼽는 낭만의 도시 Paris. 파리를 동경하는 사람들의 간지러운 부분을 긁어주듯 영화의 첫 등장부터 그 아름다움에 압도된다.


 


그의 황금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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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잔잔히 펼쳐지는 이야기. 그 이야기는 한 남자의 고민으로부터 시작된다.


할리우드의 시나리오 작가인 길(오웬 윌슨)은 약혼자와 함께 파리에 여행을 왔다.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이지만 낭만적인 소설가가 되고 싶은 그는 자본주의의 산물인 미국에서 벗어나 도착한 파리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하지만 향수병에 걸린듯 과거만을 추구하며 환상에 빠진 그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약혼자 이네즈(레이철 맥아담스)는 길과 다르게 친구들과 만나 파티를 즐기기 바쁘다.


약혼자와 떨어져 혼자 파리의 뒷골목을 걷던 길은 한 마차를 만난다. 얼떨결에 타게 된 마차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곳으로 데려다주는데, 그곳은 바로 피카소와 헤밍웨이가 살던 1920년대의 파리다. 마차를 타고 자신이 가장 동경하던 시절의 파리로 오게 된 길.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피카소와 이야기를 나누며 매일 밤을 보낸다.


동경하고 그려오던 1920년대의 파리 속 인물들과 소설 작가로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흥분을 금치 못하며 매일 밤 파리의 뒷골목에 정차하는 마차를 타고 그들을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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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에게만 가능한 마차로의 과거 여행은 약혼자 이네즈와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기 충분했다. 파리에서 머무는 동안 그들과 점점 멀어지지만 그는 여전히 매일 밤 과거로 빠져든다. 헤밍웨이에게 소설을 보여주고 피카소, 피츠 제럴드와 대화하는 생활이라니. 그에게 평생을 그려오던 꿈같은 생활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그곳에서 너무나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게 되니 말이다.


그곳에서 만난 아드리아나(마리옹 꼬띠아르)는 모든 이에게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한눈에 반해버린 길은 그녀와 함께 파리의 길거리를 걸으며 낭만을 즐긴다. 피카소의 연인이자 만인의 연인이 된 그녀. 그런 그녀에게 길도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녀와의 만남은 단순히 낭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결정적인 영화의 메시지를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지구 온난화도 없고, TV도 없는 1920년대의 파리를 끊임없이 동경해오던 길은 자신의 황금시대에 도착했다. 그러나 정작 그 시대의 파리에 살고 있는 아드리아나는 ‘현재’(길에게는 황금시대)에 사는 것을 끊임없이 불만족스러워하고 더욱 과거로 가길 원한다. 마치 마차를 타기 전 길처럼 말이다. 그녀는 1890년대의 파리를 동경한다. 길과 아드리아나가 함께한 1890년대로의 마차 여행은 우리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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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 하지만 20년대는요?


아드리아나 : 그건 ‘현재’잖아요. 지루해요.


길 : 그건 내 ‘현재’가 아니에요. 난 2010년에서 왔어요.


아드리아나 : 무슨 뜻이에요?


길 : 난 당신에게 들린 거예요. 우리가 지금 1890년대에 왔듯이. 난 내 현재에서 도망치려 했죠. 당신이 당신 시대에서 ‘황금시대’로 도망치려 하듯.


아드리아나 : 정말 20년대를 황금시대로 보진 않죠?


길 : 나에겐 그렇죠.


(중략)


길 : 여기 머물면 여기가 현재가 돼요. 그럼 또 다른 시대를 동경하겠죠. 상상속의 황금시대. 현재란 그런 거예요. 늘 불만스럽죠. 삶이 원래 그러니까.





저마다의 황금시대



2020년을 바라보는 지금, 현시대를 만족하며 살아가는가? 당신이 그리던 황금시대는 언제인가? 이 영화를 보기 전 나의 황금시대는 1990년대였다. 친구들과 집 전화로 약속을 잡고, SNS가 없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주변 사람에게 그리고 내 인생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을 거라며 막연한 그리움과 동경을 하곤 했었다.


시끄럽고 그럼에도 고독한 이 시대의 젊은이로 태어나 고통스럽다 말했다. 하지만 미드나잇 인 파리를 만나고 난 뒤 그런 아쉬움을 거두었다. 내가 동경하는 그 시대의 사람들 역시 ‘옛날이 좋았지’라고 말하며 과거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길의 황금시대에 살고 있는 아드리아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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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현재’에 대한 막연한 불평과 불만족은 어쩌면 지금의 고통을 견디지 못한 자들의 푸념이 아닐까 생각했다. 미래에서 온 누군가는 우리가 사는 2019년에 타임머신을 타고 떨어져 "역시 2019년이 최고야!"라며 외치고 있진 않을까? 그 시대만의 풍경이 존재한다. 현재가 괴롭다는 이유로 막연한 과거를 황금시대로 여기고, 지금을 끊임없이 부정하고 도망치는 것은 결국 딱 한 번 주어진 인생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한 자의 슬픔이다.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던 당시 여고생이었던 난 후회를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시간을 흘려 보낸 뒤 돌아보면 그 시절이 가장 좋았던 것이다. 그런 나에게 이 영화는 당신이 살아가는 지금이 바로 황금시대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 글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그리고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본 모든 이들이 현재를 사랑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지금의 자신을 온전히 바라보길 바란다.




나의 미드나인 인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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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포스터와 파리라는 단 하나의 단어로 보게 된 한 편의 영화는 나를 10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닿는 유럽으로 이끌었고, 현재를 사랑하지 못해 후회로 얼룩진 여고생의 마음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영화를 다시 보며 나의 황금시대는 바로 '지금'이라 다짐한다.


당신의 황금시대는 언제인가?


반드시 지금이길, 그리고 매일 아침 일어나 황금시대 속 하루를 만들어가길 바란다. 지금 이 순간 역시 누군가에게 낭만이기에.



[장경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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