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적인 폭력] 01. 나는 산타할아버지를 믿어본 적이 없다

4인 가족의 정형성이 내게 남긴 것 (미디어)
글 입력 2019.07.15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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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나는 산타할아버지를 믿어본 적이 없다.



“우찬아, 괜찮아. 울어도 돼. 사실 산타는 없거든.”

 

2년 전,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에서 우원재의 랩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었다. 13살이라는 상대방의 어린 나이를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믿는 동심을 통해 조롱한 그 발상이 많은 이들의 호응을 이끌어낸 가장 큰 이유는 ‘산타할아버지가 실제로 존재하다’고 믿는 것이 대부분의 어린아이들이 가질 법한 생각이라는 것에 모두가 동의했기 때문이다.

 

나는 살면서 크리스마스 날 아침, 머리맡에 놓인 선물이 사실은 산타할아버지가 아니라 부모님이 준비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로부터, 매체로부터 정말 많이 들어봤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대부분 자식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 늦은 밤 몰래 선물을 갖다 놓는 부모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함으로 훈훈하게 끝을 맺었다. 그런 이야기가 대화 주제에 오르면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자신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며 적극적으로 공감을 표현했다. 그러면 나는 그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조용히 멋쩍게 웃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아본 적도, 그래서 산타할아버지를 믿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유치원생이었을 때, 크리스마스를 맞아 한 선생님이 흰 수염을 붙이고 산타할아버지 특유의 빨간 옷을 입고 나타난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자신을 매년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주는 산타할아버지라고 소개했다. 내 눈에는 명확하게 유치원 선생님이 분장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내 옆의 아이들은 신이 나서 산타할아버지를 실제로 보았다며 좋아하고 자신의 소원을 이야기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내 머릿속엔 ‘저 사람은 산타가 아니라 선생님이잖아, 다들 왜 그러는 거지? 일부러 속아주는 건가? 그럼 나도 조용히 있어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때 나는 몇 년 되지 않은 짧은 인생에서 처음으로 남들과 단절된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 기분은 유치원을 졸업한 뒤에도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나를 찾아왔다. 내가 볼 수 있는 다른 가족의 크리스마스 풍경은 부모님이 몰래 갖다 놓은 선물로 시작해 다 같이 트리를 장식하고 양말에 담긴 선물을 확인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 풍경 속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전혀 그러지 못했다. 홀로 다섯 명의 딸을 키우는 엄마에게 크리스마스는 그저 일터에 손님이 많은 날일뿐이었다.


당장 눈앞의 생계가 중요한 엄마에게 다섯 개의 선물과 거대한 트리는 사치였다. 그러나 다른 가족에겐 가장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우리 가족에겐 그저 쉬는 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엔, 그럴 수밖에 없는 맥락을 이해하기엔 그때의 나는 너무나 어렸다. 그래서 어느 날은 참다못해 크리스마스 전날 밤 엄마에게 제발 트리라도 갖다 놓으면 안 되냐고 무의미한 떼를 쓰기도 했다.

 

우리 가족이 평범한 가족의 범주에 벗어난다는 느낌은 어린아이에겐 꽤 치명적이었다. 문제는 그런 느낌이 일 년에 한 번, 크리스마스에만 찾아오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어린이날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볼 수 있는 다른 가족의 어린이날 풍경은 다 같이 놀이공원에 가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 역시 우리 가족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크리스마스와 마찬가지로 그때에도 엄마는 일했고 나는 전화기를 붙잡고 일하는 엄마에게 왜 우리 가족은 놀이공원에 가지 않느냐며 눈물로 떼를 썼다.

 

지금의 나에겐 크리스마스 날 받지 못한 선물이, 어린이날 가지 못한 놀이공원이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때 다 같이 휴일을 챙기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 가족의 사이가 틀어지거나, 내가 잘못된 어른으로 자라는 일도 없었다. 어린 내가 그렇게 열심히 떼를 썼던 이유는 순전히 우리 가족만 다른 게 싫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에겐 다른 것은 곧 틀린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특정 시기마다 엄마를 괴롭혔던 나의 칭얼거림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성장하면서 철이 들어서인 것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우리 가족만 다른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나는 우리 가족의 모습이 다르지도, 틀리지도 않았다는 것을 안다. 세상에는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존재했고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알고 보니 내 주변에도 나처럼 한 부모 가정에서 자라 크리스마스나 어린이날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흘려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도, 나도 모두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 서로 몰랐을 뿐이었다.

 

어린 나에겐 TV와 교과서는 세상의 전부였다. 그 세상에서 묘사되는 모든 것은 곧 정답처럼 느껴졌다. 당시 나를 둘러싼 세상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전형적인 4인 가족의 모습만 보여주었다. 부모님 두 분 다 평안히 잘 있고, 휴일을 함께 보내고, 엄마는 집안일을, 아빠는 회사에 다니는, 천편일률적으로 묘사되던 그 풍경은 의심의 여지 없이 정답이었고 그 풍경에 조금도 부합하지 않은 우리 가족은 오답이었다. 미디어 속 그들이 환하게 웃으며 가족의 행복을 노래할 때마다 나는 우리 가족의 불행을 확인했다. 그렇기에 나는 조급하게 다른 가족을 따라 하고 싶었던 어린 나를 떠올리면 철없다고 꾸짖는 대신 조용히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점차 나는 더욱 더 다양한 것들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와 함께 세상에는 그 어떤 가족의 모습도 정답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 속에서 나는 평온하게 내 현실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 깨달음이 내게 조금이라도 더 일찍 찾아왔다면 내가 받아야 했을 상처도 그만큼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누군가에게 당연한 가족의 화목함이 다른 누구에겐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남들의 그 당연함이 부러웠다. 그리고 당연하지 못한 내 현실에 박탈감을 느꼈다. 이제 나는 내게 박탈감을 안겨준 것의 정체를 선명하게 인식할 수 있을 것 같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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