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미스 홍, 그림으로 자기를 찾아가다

이것은 어떤 시작
글 입력 2019.07.19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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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는 순간 나의 어떤 시작이 떠올랐다. 2019년 지금의 나는 프리랜서로 글을 쓰고, 일러스트레이션과 만화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내가 진지하게 '그림을 그리겠다.'라고 결심한 시작점에는 바로 미술치료가 있다.

3년 전, 나는 서울예술치유허브의 지원으로 진행한 미술치료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3~4개월 정도 매주 목요일 저녁에 모여 미술심리치료사의 진행하에 그림을 그려보는 방식이었다. 이전까지 미술학원을 잠깐 다닌 경험은 있었지만 정해진 답을 두고 습득하게 하는 학원의 교수 방식은 불만족스러웠고, 낙서 이상으로 나는 그림을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미술치료 프로그램에서 색연필, 수채화, 아크릴, 목탄, 콩테, 책 만들기, 마지막으로 설치 미술까지 접하며 말 그대로 내 안의 새로운 자아가 눈을 뜨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나의 어떤 시작에는 미술치료가 있었고, 이 책을 접하는 순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1. 시작은 선

나는 그림의 시작은 선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작가마다 표현 방식에는 차이가 있고,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도 다르다. 나 또한 그림 그릴 때 선 이외에도 특히 색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역시 시작은 선이다. 이 책 역시 가로선, 세로선, 나선 등 선 그리기로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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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안내하는 대로 선의 시작과 끝을
의식하며 가로선을 그려보았다.


수많은 선을 그렸지만 시작과 끝을 의식하고 그린 적은 그다지 없었다. 그러나 시작하는 지점과 끝나는 지점을 생각하고 그려보니, 특히 선이 끝내는 시점이 좋았다. 무언가 묵직한 느낌도 들었고, 답답함보다는 끝이 있다는 사실에 편안함을 느꼈다.

두 번째로는 세로선을 그었다. 아래에서 위로. 책에서는 끝을 하늘을 향해 날리는 느낌으로 그리라고 했지만, 가로선을 그릴 때 선의 끝이 주는 느낌이 좋아 나는 끝맺음을 확실히 하며 그렸다. 사람에 따라 가로선과 세로선 중 편한 것이 서로 다르다고 한다. 나는 편하기는 가로선이 더 편했지만, 세로선을 그을 때 더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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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세로선


확실히 나의 세로선은 가로선보다 시각적으로 불안정하다. 그러나 그 불안정함이 싫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자극이 되었다. 예를 들어 나는 세로선을 그으며 선과 선 사이의 공간을 채우고 싶어졌다. 가로선을 그을 때에는 떠오르지 않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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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선과 세로선 사이를 채우기


자작나무를 떠올리며 다시 그린 세로선과 세로선 사이를 채워보았다. 처음에는 마디를 나누고, 그다음에는 선과 선 사이를 가로선으로 채웠다. 그러나 어느 순간 가로선보다는 세로선으로 채우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어 이후에는 세로선으로 공간들을 메웠다. 연필로 그리고 보니, 이번에는 색을 써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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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연필을 이용해 선과 선 사이를 채우기


책상 위에 항상 있던 세 가지 색연필을 이용해 세 번째 세로선 그림을 그려보았다. 연필로만 그린 바로 위 그림과는 비슷하면서도 확연히 다르다. 두 그림 다 어떤 감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연필로 그린 그림은 날카로움과 쓸쓸함이, 색연필로 그린 그림에서는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그저 선만 그렸는데도 이렇다.



2. 다음은 그림

선만으로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수많은 그리는 방법이 존재하며, 이를 시도해보지 않는다는 것은 스스로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일이다. 책에서는 선 다음으로 색, 대상을 보고 그리기, 자화상 그리기, 친구의 얼굴 그리기, 명화 보고 그리기, 오일 파스텔로 그리기, 공간 그리기 등 그리는 방법을 단계적으로 확장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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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홍, 그림으로 자기를 찾아가다> 목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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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홍, 그림으로 자기를 찾아가다> 목차2

 
책에 나온 다양한 그림 그리기 중 인상 깊었던 부분은 자화상 그리기였다. 자화상은 자신을 마주 보는 그림이다. 매일 거울 앞에서 수없이 보는 얼굴이지만, 이 얼굴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린다는 것은 그저 얼굴을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다.

자화상을 그릴 때면 항상 망설이게 된다. 왜냐하면 내 얼굴에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을 그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어떻게 그릴까. 있는 그대로? 아니면 내가 원했던 모습으로 고쳐서? 자신의 얼굴에 백 퍼센트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누구나 이런 갈등에 직면한다. 이 과정에서 내 얼굴의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을 받아들이거나, 회피하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을 하게 된다.

많은 화가들도 자화상을 그렸다. 내가 인상 깊게 본 자화상은 오스트리아의 화가 리하르트 게르슈틀(Richard Gerstl)의 자화상이다. 그는 몇 점의 자화상을 그렸다. 얼굴만 그린 자화상도 있고, 전신을 그린 자화상, 나체를 그린 자화상도 있다. 모두 인상적이고 그린 시점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도 기억에 남았지만 가장 충격적이었던 그림은 웃는 얼굴을 그린 자화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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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르트 게르슈틀, <웃고 있는 자화상(1907)>


이 자화상에서는 온갖 감정이 느껴진다. 그 감정은 너무나도 생생하여 고통스러우기까지 하다. 이른 나이에 비극적으로 끝난 화가의 삶과도 연관 지어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나는 자화상을 그리는 것 자체가 하나의 큰 용기라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마주 보는 것은 항상 두렵기 때문이다. 역시 자화상은 어떤 형태로든 화가에게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자화상을 그린 지 오래되었다. 조만간 한 번 그려보아야겠다.



3. 그다음은

책의 시작과 마지막에서는 현대미술을 다루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미술을 어려워한다. 나 역시 그렇다. 대상을 재현한 그림은 무엇을 그렸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많은 현대미술은 대상의 재현에서 훨씬 벗어나있다. 도대체 작가는 무엇을 표현하고자 한 것일까? 어떻게 하면 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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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홍, 그림으로 나를 찾아가다> 10쪽


책에서 미스 홍을 안내하는 김은 현대미술을 보는 관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무엇을 중심에 두는 가가 다른 거야. 만약에 세상을 중심에 두면 '나는 어떻게 세상이 원하는 데로 살아야 하는가.'가 문제가 되지. 그런데 내가 중심이 되면 '내가 나의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가 문제 되는 거야."


- <미스 홍, 그림으로 자기를 찾아가다>, 11-12쪽 중



결국 현대미술은 작가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가장 유명한 현대 미술 작품 중 하나인 마르셀 뒤샹의 <샘>은 "'작가의 삶에 대한 이해'가 반영된다면 작가가 직접 손으로 만들지 않아도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은가? "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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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뒤샹, <샘(1917)>


작품이 담고 있는 문제의식은 작가마다 다르다. 어쩌면 작품에 문제의식을 담아야 한다는 생각 자체에 문제의식을 가지며 어떠한 문제의식도 담지 않은 작품이 있을 수도 있다. 핵심은 세상이 보는 나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세상에 중심을 두고 시작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중요한 것, 내가 관심을 갖고 문제라고 느끼는 것을 토대로 작품을 바라본다면 현대미술 역시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

나는 미술치료가 하나의 현대미술 영역이라고 본다. 프랑스의 화가 장 뒤뷔페(Jean Dubuffet)가 어린이, 정신질환 환자, 전문적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전문 화가보다 더 솔직하고 창조적인 그림을 그린다고 주장하며 도입한 '아르 브뤼(Art Brut)'라는 개념은 미술치료 프로그램과 관련지어 생각해볼 만하다.

현대 미술은 더 이상 특정 전업 작가들만이 활동하는 장이 아니다. 헨리 다거, 비비안 마이어와 같이 전문적인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작가들이 끊임없이 발굴되고 있으며, 많은 현대미술 사조는 전통적인 미술사조와 표현방식에 반기를 들고 나타났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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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넘게 병원 잡역부로 일하며
방대한 양의 일러스트를 남긴 헨리 다거


그런 점에서 미술치료를 대화와 독자가 직접 해볼 수 있는 워크북 형식으로 다루고 있는 <미스 홍, 그림으로 자기를 찾아가다>는 하나의 좋은 출발점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미술치료에 관한 서적과 무엇보다도 다양한 미술치료 프로그램이 폭넓게 개방되고 홍보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어떤 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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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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