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커서보는 아동영화 ① : 찰리와 초콜릿 공장 (2부) [영화]

응원을 동화처럼 그려내다
글 입력 2019.07.1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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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서 살펴보았듯이,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두 가치의 대립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영화이다. 윌리 웡카와 주인공 찰리 등 초콜릿의 가치를 존중하며 소중하게 생각하는 ‘초콜릿 긍정파’와, 애들이나 먹는 식품으로 취급하며 쓸모 없는 것으로 여기는 ‘초콜릿 부정파’ 사이의 갈등이 그것이다.



  

영화는 어느 편에 서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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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양자의 대립을 순전히 ‘가치의 충돌’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초콜릿 긍정파’는 초콜릿을 삼키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을 배격하려는 사람들의 집합이 아니다. 그저 초콜릿의 달콤함을 사랑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광적으로 초콜릿을 신봉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도 않다. 초콜릿을 사랑하는 아이들은 어른들로부터 ‘단 것을 많이 섭취하면 이가 썩을 수 있다’는 충고를 받을 것이고, 초콜릿을 사랑하는 어른들은 그런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며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과한 섭취가 몸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초콜릿을 좋아한다는 명제 사이에는 분명하게 정의내릴 수 있는 관계랄 것이 없다. 둘은 반비례하지도 않고, 충분히 동시에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초콜릿 부정파’는 전자(‘단 것을 많이 섭취하면 이가 썩을 수 있다’)를 근거로 들어 ‘초콜릿 긍정파’의 어리석음을 지적한다. 그들의 의견은 자신의 ‘불호’를 표현하기보다, 초콜릿 선호의 ‘옳지 않음’을 주장하는 데에 주력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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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는 시간 낭비야!”

 


결국 양자의 대립은 ‘긍정파’와 ‘부정파’로 나누기 보다는, 어떤 가치를 좇는 집단과 그것을 존중하지 않는 집단의 대립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이런 대립 양상은 현실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존중 받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 철저히 배제당하는 것, 쓸모 없는 취급을 받는 것들이 이 영화에서는 ‘초콜릿’으로 대표되고 있다. 물론, 성인의 입장에서 “무슨 초콜릿이 현실에서 그렇게나 멸시 받는단 말야?”라고 의문을 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른이 아닌 아이의 입장으로 되돌아가면, 달콤한 간식들은 그들의 보호자에 의해 통제되어야 하는 대상들이다. 달콤한 간식들에 환장했던 아동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부모 몰래 캔디와 초콜릿을 꺼내먹었던, 그런 경험 말이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전적으로 ‘초콜릿 긍정파’의 편에 서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애초에 중심 인물인 윌리 웡카와 찰리가 강력한 지지자이니 말이다. 반대하는 아버지에게 굴하지 않고 무한히 초콜릿에 대해 애정을 쏟았던 윌리 웡카와 어린 아이의 눈으로 캔디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1부, 찰리의 대사,“꼭 쓸모가 있어야 캔디는 아니잖아. 그러니까 캔디지.”) 찰리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가치를 수호하는 사람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아동영화로 느껴지는 이유



1부와 본 글의 위에서 다룬 내용만 보아도,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어른들의 눈으로 보아야 비로소 제대로 이해되는 내용과 장면들로 구성되어 있는 듯 하다. 그렇다면 이런 영화가 ‘아동 영화’로 불릴 수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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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떤 일이 있어도 가족들을 버릴 수 없어요.

그게 세상의 초콜릿 전부를

포기하는 일일 지라도요.”

 


우선,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소재가 ‘아이들’의 입장에서 가장 소중한 것으로 쓰였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다. 그 핵심적인 소재란 두말할 것 없이 ‘초콜릿’이다. 제목, 영화의 인트로, 영화 전반 어디에도 초콜릿이 묻지 않은 곳이 없다.


어른에게 세상에서 뭐가 제일 좋냐고 묻는다고 ‘초콜릿’이라는 답이 돌아오겠는가. 초콜릿은 아이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종류의 즐거움들을 경험하기 전 그들이 최고로 내세우는 것이며, 아이들의 눈으로 비출 때 비로소 최상의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은 찰리의 입을 통해 직접 전달된다. 찰리는 가족의 품을 떠나 자신의 공장장 자리를 맡아 달라는 윌리 웡카의 제안에 단호하게 거절한다. 찰리가 그토록 꿈꿔왔던 공장이고 그는 윌리 웡카의 업적을 존경했으나, 찰리에게는 그보다도 중요한 것이 바로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족의 존재를 가볍게 생각하는 윌리 웡카에게 찰리는 실망한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좀처럼 자신의 선택에 납득하지 못하는 윌리 웡카를 이해시키기 위해 자신의 가족의 소중함을 '세상의 초콜릿 전부'와 견주어 표현한다. 그것은 윌리 웡카를 납득시킬 수 있는 발언임과 동시에, '초콜릿'이 찰리의 머릿속에서 '가족'과 견줄 수 있는 소중한 가치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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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유는 영화의 엔딩에 놓여 있다. 잘못되었던 모든 것이 고쳐지고 주인공은 큰 상을 받게 되는 해피 엔딩!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그러한 동화적인 구성을 충실하게 따라가고 있다.

실직자 신세였던 찰리의 아버지는 새로운 일을 맡아 복직하게 되고, 가족을 위해 공장장의 자리를 포기했던 찰리는 결국 윌리 웡카의 동업자 자리와 착한 아들 자리를 모두 차지하고.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로 '부모'의 '부'자도 못 꺼냈던 윌리 웡카가 아버지와 화해하게 되었으니 이보다 행복한 결말이 있을까.

 

*


달달하고 끈적한 즐거움인 초콜릿이 영화에 녹아들어있고, 주인공과 그 가족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함으로써, 결국 이 영화를 가장 즐겁게 볼 관객들은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가장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만큼 ‘아동 영화’라는 말이 어울리는 영화가 없지 않나 싶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임의로 지은 ‘아동 영화’라는 명칭에 참으로 적합한 영화이고, 어른의 시선으로 볼 때는 마냥 즐겁기 보다는 ‘생각할 거리’가 떠오르는 영화이다. 어떤 시선으로 봐도 느껴지는 바가 있다는 것은 정말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도 어렸을 때 보았던 영화를 성숙한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시간을 가져볼 생각이다. 벌써부터 그러한 시간을 갖게 될 것에 기대감으로 설렌다. 아마 설레는 마음은 단순히 새로운 분석을 내놓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라기 보다도 나의 어린 마음을 즐겁게 했던 그 영화들이 그립기 때문이 아닌지, 나의 동심이 먼저 반응했기 때문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여러분들도 글을 보며 알게된 새로운 사실에 놀라움을 느낌과 동시에, 귀에 익은 제목과 낯익은 배우들의 얼굴들로 동심이 힘차게 박동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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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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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이사야
    • 좋은 글 감사합니다. 초등학생 아이들과 찰리와 초콜릿영화를 보고 생각을 나눌 때
      이 글을 활용하여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좋은 글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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