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예쁘지 않은 사람들만 실종된다 - 메이크업 투 웨이크업 2 [공연]

하이드 비하인드 : 뒤에 숨어서 보이지 않는 괴물
글 입력 2019.07.2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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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아름다움, 코르셋, 꽃 따위의 단어들이 연상된다. 누군가는 여자, 라는 단어를 떠올리자마자 몸 일부가 극도로 흥분되는 경험을 할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는 몸서리치며 싫어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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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명문대라고 자부하는 대학의 건축학과에서 도시 수업을 가르치는 교수 중 한 사람이 도시를 설계하는 것을 여성과 사귀는 과정에 비유했을 때 나는 충격을 받기보다는 짜증을 느꼈다. 그리스 신전의 기둥을 설명할 때도 도릭 오더는 남성을 상징하며, 이오니아식 오더는 여성을 상징한다는 시대착오적인 교육을 아직 받는다. 그런 설명을 듣고 나면, 어쩐지 도릭 오더는 딱딱해 보이며, 이오니아식은 곡선이 있으니 부드럽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여자답지 않은 여자였다. 발표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수업에서 교수님에게 기회를 다시 한 번 주셔서 감사하다고 뻔뻔하게 말하는 나에게 교수님은 “보통 여자애들이 저러지는 않는데.”하며 매수업시간마다 나를 ‘괴롭혔다’. 그 교수님은 첫 수업 때 초고층건물에 관해 설명하며, 꼭대기 층에서 남녀가 섹스하면 건물이 흔들린다는 농담을 하며 묘한 표정으로 웃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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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1학년이었던 나는 그런 말을 수업에서까지 듣고 싶지 않아 드랍(수강 포기를 했다는 뜻)을 했지만, 전공 필수였던 탓에 다음 학년에 다시 들을 수밖에 없었다. 유독 나의 발표에만 준비가 부족하다는 등 심한 지적을 해서 터지려는 분노를 참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분해서 울음을 터뜨리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온몸이 바들바들 분노로 떨려왔고, 만나는 사람마다 나에게 ‘교수님께 무슨 실수라도 한 건 아니냐’고 물어봤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전혀 모르겠다. 나는 성실하게 과제를 했고, 리포트를 제출하기 위해 청계산 등산도 했고, 수업을 잘 들었고, 시험도 잘 쳐서 두 개의 과목을 모두 A+를 받았다. 그런데 왜 유독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을까? 난 그 교수님이 금지하는, 슬리퍼 신지 않기, 모자 쓰지 않기, 여학생들은 치마 입지 않기 따위의 규칙을 잘 지켰는데도 말이다.


아, 점수를 잘 받기 위해 교수님의 사무실에 개인적으로 찾아가 애교를 부리지 않아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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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군가의 눈치를 살피지 않았고, 그래서 잘난 것 없어도 당당했다. 과체중에 해당하는 몸무게를 가진 지금도, 과거에도, 허벅지 하나의 크기가 허리랑 비슷하고 얼굴보다 큰 엄청난 하체 비만이어도, 짙은 쌍꺼풀, 오뚝한 코, 뚜렷한 이목구비 등 전혀 해당하지 않는 객관적으로 예쁘다고 할 수 없는 얼굴을 가졌어도, 교정하기 전에는 앞니가 벌어져서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였어도, 집이 부유하지 않고 내 방 하나 없었어도,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우울해 하다가도 나는 주눅이 들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 떠드는 일진의 이름을 적어서 미움을 사기도 했고, 중학교 때는 일진의 교정기를 부쉈다는 모함을 받아 책상을 뒤집어엎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는 반에서 따돌림을 당하던 친구와 친해져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향에 내려가면 만나곤 한다. 반에 도둑이 있어 큰돈을 여러 차례 훔친 일이 있었는데, 많은 사람이 당연히 그 친구가 했다고 여론을 조장했을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처럼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당해도 당하지 않은 척, 상처받아도 상처받지 않은 척하고 그냥 부드럽게 넘어갔다면 나를 싫어했던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반장이나 회장 따위의 눈에 띄는 직책은 싫어했는데도 그들보다 더 유명해진 건 어쩌면 아무것도 참지 못하는 내 성격 때문이었을지도. 그런데 이상하게 우울함 때문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때는 있었어도 뭔가를 느끼고서는 가만있지를 못했다.


근데 신기한 건 이렇게 참지 않는 건 집안 내력인 것 같다. 동생도 고등학교를 다닐 때 그랬다고. 엄마와 비슷한 연세의 선생님이 수업을 할 때, 반에서 떠드는 애들보고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줬다고 한다. 그 뒤 조용해지고나서 다시 속닥속닥 떠드는 게 너무 싫었댔다. 우리는 같은 이유로 통영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 지긋지긋하고 변함없는, 웅덩이에 고인 물과 같았던 그 곳과 그 곳의 사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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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렇게 당당한 나였는데도, 평생 잊지 못할 사건이 있었다. 언젠가는 그 사건을 내가 말할 수 있는 날이 올지에 대한 확신도 없는 그 사건 후로 나의 가치를 몸에서만 발견하려고 했다. 많은 이들이 섭식장애에 걸리는 이유 중의 하나가 뚱뚱한 몸에 대한 즉각적인 피드백에서 오는 경우인데, 나의 경우는 156cm에 46kg에 다이어트를 시작하게 한 다른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나는 젊어 보여야 했고, 어려 보여야 했다. 뱃살이 없어야 했고, 다리가 날씬해야 했다. 내가 내 나이보다 많아 보이는 몸이 되는 것이 극도로 두려워졌다. 나는 그냥 평범한 이십 대 초반의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평범해지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충분히 날씬했던 그때 너무 큰 강박을 가진 나머지, 길거리에서 음식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4시간의 식사 간격을 정해두고, 시간이 되면 수업 시간 중간에도 닭가슴살 한 봉을 들고나와서 화장실에서 단백질을 보충했다. 늘 도시락을 싸서 다녔고, 수업 시간마다 필기하다가도 어느새 24개의 눈금을 그려 하루의 운동과 식사, 수면 계획을 했다. 왜냐하면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운동과 영양, 휴식 삼박자가 고르게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강박과 일반적인 음식에 대한 거식은 음식에 대한 집착을 만들었고, 1년간 폭식증에 시달려 깨어있는 동안은 음식만을 집어삼키게 했다. 한참이나 벗어나지 못해 많은 시간과 돈을 편의점과 빵집, 카페에서 낭비했다. 그리고 몇 개월 만에 15킬로가량 살이 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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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미의 기준을 따르지 않는 여성들이 실종하는 이야기를 다룬 연극 <메이크업 투 웨이크업 2>가 있다. 납치범은 없는데, 사람들만 사라진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하이드비하인드 사건’이라고 말하며, 납치당하지 않기 위해 아름다워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하이드비하인드는 미네소타 주에 사는 나무꾼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온 전설의 괴물로, ‘뒤에 숨어서 보이지 않는’ 괴물이다. 이는 우리의 아름다움과 사회가 규격 해놓은 미의 기준에 맞는 사람이 되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강요하는 사회적 산업적 구조를 의미한다. 아마 ‘아름답지 않은’ 여성들이 납치되는 사건은 표준 체중, 과체중, 비만인 여성들에 대한 손가락질, 왕따 등을 의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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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는 누구나 추구해야 하는 가치일까? 아름다움의 기준은 변화하고, 노력하든 노력을 하지 않든 ‘아름다운’ 몸매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칭찬과 찬양을 받지만 기준을 벗어난 사람들은 자기관리라는 핑계 하에 한없이 규탄받는다.


연예, 스포츠 뉴스 기사만 봐도 남성에게 주어지는 피드백은 연기에 대한 평가, 인성과 범죄에 대한 평가가 주를 이루며, 특이한 사항은 그 남성 아내의 몸매와 외모에 대한 평가도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여성은 운동선수라고 할지라도 몸매와 외모, 옷차림에 대한 평가가 너무 당연하도록 기사가 나온다. 자극적인 기사를 선동하는 기자에게 ‘기레기’라는 욕을 하는 사람도 종종 보이지만, 너무나 많은 이들이 당연하게 성희롱을 한다.


피해자는 다시 가해자가 되어, 미의 규격을 보편화한다. 그저 운동이 좋아서 하는 사람들, 트레이너들, 운동 선수들에게도 운동을 하지 말라는 말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여성 파워리프팅 운동 선수도 늘 그런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있었다. 화장을 하지 않는 사람과 화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개인의 자유며 각자의 선택이고 정상 범주지만, 화장을 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화장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운동을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과 그냥 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그리고 그건 각자의 선택인데, 무조건 운동을 하지 말라고 하면 운동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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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비난일지 코르셋일지 모를 과격한 기준은 조금씩 조금씩 범위를 넓혀 일반인에게로 확장된다. 원래부터 잘 먹지 않고, 사회의 기준으로는 마른 몸매를 가진 친구에게 인스타 DM, 블로그 댓글 등으로 "원래부터 그렇게 말랐냐"느니, "건강이 걱정되니 많이 먹어라"라는 쓸데없는 충고라던가 "아무 이유없이 마른 사람을 보면 죽여버리고 싶다"는 말을 서슴치 않고 한 것을 봤을 때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사회의 미적 기준에 충족되지 못한 사람들이 1차적으로 피해를 받으면, 결국 사회의 미적 기준에 충족된 사람들마저 2차적으로 피해를 받는다. 어찌됐든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는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난의 대상이 된다. 아는 사람들에게 외적으로 피드백을 받는 것도 정당하지 못한 마당에,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가하는 폭력이란 얼마나 거대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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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동생과 대학로에서 ‘달랑 한 줄’을 보고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 워마드나 페미니스트가 남자를 혐오하는 과격한 말을 거침없이 해서 우리가 평범해 보인다고, 어느 정도 허용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고 말이다.(참고로 우리는 SNS를 하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 여성이다) 나는 그동안 그들의 과격함에 감사해왔다. 내가 앞장서서 나서지 않아도 나를 평범하게 만드는 그들의 과격함이 세상을 좀 더 빠르게 변화시킬 거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동생이 던지는 한 마디, “그러면 이때까지 남자들은 얼마나 착한 취급을 받고 살아왔을까”라는 말에 아주 큰 충격을 받았다. 일베를 비롯한 각종 커뮤니티 극단적인 남자들의 여험 취급 아래 일반 남성들의 성적인 희롱은 얼마나 평범하게 다뤄졌는가. 일베가 있어 평상시 남자들이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이 당연하다고 암묵적으로 여기고 넘어갔다. 그래도 병신 집단은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물론 나도 남자인 친구가 있어, 개중에는 남성들이 집단으로 여성을 희롱하는 것을 싫어해 아예 어울리지 않는 사람도 꽤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성을 성욕 해소의 도구로 여기지 않으며, 주변 남성들에게 소위 '마법사'라고 불리는 놀림을 감수하면서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까지 기다리는 사람이 많음을 알고 있다.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하는 성희롱을 참지 못해 나처럼 드랍을 하는 남자인 친구도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몇몇 사람들은 '동성과 어울리지도 못하는데 이성과 어울리는 사람은 뭔가 문제가 있다', '그 나이가 되도록 못 해본 건 어딘가 하자가 있다.'는 자기만의, 아니 사회 통용적인 잣대를 들이밀어 오히려 그 사람들을 이상하게 만들지만, 정말 정상적이라면 그런 집단에서 눈감고 못 들은 척 하는 것보다 그 집단을 나가버리는 것이 맞는 행동 아닌가. 하지만 그 집단을 나간다고 해서 정상인 집단이 있을 거라는 확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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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우유에 코코볼을 말아 먹기까지, 밥과 스팸을 먹게 되기까지, 동생과 라면과 팬케이크를 먹어도 ‘제거’라는 생각으로 하나도 들지 않을 때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건강이 걱정돼서 그만 먹는 것이 아니라 진짜 맛이 없고 배불러서 그만 먹을 수 있게 되기까지, 그 쉬운 것을 너무 많이 노력해야 했다.


나는 그래도 빠르게 벗어난 편이다. 아직도 섭식장애와 다이어트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한때 블로그에 식단 일기를 공유하면서 서로의 처지와 상처를 이해했던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은 아직도 식단을 검열하고, 다이어트를 하고 폭식을 하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몇몇 사람은 극복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검열을 그만두고 블로그를 떠나갔다.


그 당시에는 아무도 극복하지 않고, 영원히 나와 같은 상태로 머물러주길 바랐다. 우린 모두 사회의 일방적인 피해자라고 생각하면서. 모두 나처럼 십킬로 단위로 살이 찌는 폭식증이 일어나기를 바랐던 것 같기도 하다. 나의 문제, 나의 게으름이 아니라 나의 상황과 사회가 그렇게 만든 거라고 모두가 믿어주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모두가 하나의 목표점을 향해 달리고 있는 레이스에서 나 혼자 벗어나서 좌절하는 모습은 꼴보기 싫으니까.


그보다 더욱 중요한 인생을 건 내기가 있는데도 벗어나지를 못하는 그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사회가 부여한 이미지에 맞춰서 천편일률적인 자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모든 이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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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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