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특별하지만 평범한 그들의 이야기, 연극 "킬미나우" [공연]

글 입력 2019.07.20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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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미나우.jpg
 


중증 지체장애를 앓고 있어

자신의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조이


그를 돌보기 위해 자신의 직업도

버린 채 살아가는 아빠 제이크


조이의 유일한 친구라고도 할 수 있지만

태아알코올증후군으로 감정 조절이 힘든 라우디


제이크의 여동생이며 조카 조이를 아들처럼 예뻐하고

그들을 위해 계속해서 헌신하는 트와일라


제이크의 유일한 휴식처이자

그를 항상 응원해주는 로빈

자연스러운 성, 죽음을 선택할 권리, 장애인, 안락사

춤추는 강, 노란 고무 오리 인형, 킬미나우, 힐미나우


*


안녕, 이제부터 우리는

긴 여정을 시작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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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첫 장면



극은 제이크가 조이를 씻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한눈에 보기에도 제 몸 가누기 힘들어 보이는 욕조 속 조이와 땀 흘리면서 아들을 웃으면서 씻기고 있는 제이크. 17살 사춘기인 조이는 입만 열면 욕을 하고 투정 부린다. 이는 여느 사춘기 소년과 다름없다. 그리고 성(性)적으로도 조이는 17살 소년이었다. 이 모습을 보고 제이크는 처음엔 놀라지만 자연스러운 것이라면서 넘긴다. 목욕을 마치고 나온 제이크와 조이는 기다리고 있는 고모 트와일라를 만나고 조이 선물인 태블릿 PC를 받고 좋아하는 조이의 모습과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그들은 어느 행복한 가정과 다름없었다.


극을 보기 전에는 어떻게 장애인을 아들로 가진 아빠가 직업을 포기하며 아들을 보살피는 데 매진했는지 그 과정에 대해서 다루면서 선천적인 병이 심각해진 아빠의 모습을 그릴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극을 보면서 보통 사람의 기준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조이가 성적으로 발달해가는 것은 흔한 청소년들이 겪는 과정이며 남들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지만 다르게 보면 조이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 하나 추가된 것이기도 했다. 이에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제이크가 충분히 이해가 갔다. 보통 사람이 무엇일까? 대개 보통에 속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장애인 가정을 보면서 극 중반까지 정말 보통 사람들처럼 행복할 수 있는데, 그냥 조금 느리고 뎌딘 것 뿐인데.. 항상 뉘우치게 된다. 보통 사람이 되고 싶다고 외치는 조이가 계속 생각난다.



태어나는 모든 아이는 완벽한 존재다.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 그 존재 자체만으로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든다. 그리고 또 하나의 존재를 탄생시킨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엄마와 아빠도 태어난다.


- 제이크 라우디의 춤추는 강



이 구절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제이크는 조이를 만나기 전에 이 글을 썼다. 제이크는 조이가 태어났을 때 당연히 장애가 있을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겠지? 솔직히 처음에 염색체 이상으로 조이는 중증 장애를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실망도 했을 것이고 왜 우리 아이가 그럴까 하늘에 원망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 그 존재 자체만으로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들기에, 그리고 그 존재 자체가 완벽하기에 조이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을 것이다.


꽤 잘 나가던 소설 작가였지만 모든 것을 포기한다. 작가에게 글 쓰는 것을 포기하라는 말은 너무나 가혹하지만 아내와 어머니도 교통사고로 떠나보내고 결국 할 수 있는 선택은 헌신뿐이었을 것이다. 덤덤하게 글은 안 쓴다고 말하는 제이크가, ‘나한테 나는 없어.’라고 말하는 그가 너무 슬펐다.

제이크는 척추관 속 뼈가 자라나는 질병을 갖고 있어 이는 점점 육체를 마비시키며 뇌까지 전이되어 결국 죽을 것이라는 예고를 받아들인다. 너무나 고통이 심해 약이 늘어나고 그 약은 제이크의 정신도 지배해 깨어있는 시간이 약에 취해 누워있는 시간보다 훨씬 적어지게 된다. 점점 말도 어눌해지고 결국 그렇게 건강하던 아버지였던 제이크는 조이보다 몸도 못 가누고 대변 조절할 능력도 없어져 버린 상태가 된다. 모든 가족들이 이 모습을 상상하지 못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미 뇌까지 마비시킬 거라는, 돌이킬 방법이 없다는 의사 말도 들었고 천천히 죽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봤으니까. 하지만 실제로 마주하니 나도 눈물만 나왔다.

정정하던 사람이 늙으며 점점 병을 얻고, 장애를 얻고 죽어가는 것은 자연의 섭리처럼 당연하다. 하지만 나도 아직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다. 제이크는 그 모습이 더 빨리 찾아왔기에 더 마음 아팠다. 약이 없으면 살아갈 수도 없는 상태가 된 제이크의 꿈이 보인다. 조이의 졸업식 날. 가족 모두가 졸업식에 가기 위해 준비하고 조이와 제이크 모두 씩씩하게 두 발로 걸으며 서로 장난을 친다. 베개 싸움도 하며 해맑게 웃는 조이와 제이크의 모습이 너무나 선명한데, 진짜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 꿈에서 깨어보니 결국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진짜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



존엄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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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크는 죽음을 원한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약에 의존하며 살며 그마저 약에 취해 살고 있다. 다음에 쓰러지게 되면 절대 병원에 데려가지 말라고 부탁한다. 조이는 그런 아버지를 보고 안락사를 외친다. 사실 조이가 그런 말을 할 것이라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평생 아버지를 곁에서 자기가 보살피겠다고, 같이 살겠다고 말했는데 아버지를 향해 안락사에 대해 이야기해보자고 한다.


안락사라니, 제이크는 조이가 이 단어를 외친 순간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자신이 그토록 죽고 싶다고 했지만 우리의 원초적인 살고 싶은 그 본성과도 부딪혔을 것이다. 그리고 어리게만 생각했던, 자신이 보살펴야 할 숙제이자 아이였던 조이가 먼저 이 말을 꺼냈을 때의 그 감정은 누가 감히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

이 말을 꺼낸 조이를 보고 트와일라는 화들짝 놀라면서 우리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려 하지 말자고 조이를 말린다. 나비가 될 애벌레가 자신의 힘을 키워 날개를 만들어야만 혼자서 날 수 있는 것처럼 시간을 보내며 고통을 견뎌야만 하는 것이지 그렇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려는 선택을 갑작스럽게 하지 말자고. 조이에게 울면서 말하는 트와일라가 더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오랫동안 조카인 조이를 아들처럼 보살펴주었고 하나뿐인 오빠의 병간호도 계속해서 했으니 정말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트와일라다. 그런 힘듦을 겪다 보면 모든 것을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을 것이다. 솔직히 지나가는 생각으로 안락사도 생각해봤겠지. 우리 가족도 그랬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고민하니까. 그런데 조이가 직접 제이크 앞에서 이런 말을 꺼내니 정말 식겁하고 후회하고, 마음이 많이 흔들리며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자고 호소하는 트와일라가 너무 공감되면서 울 수 밖에 없었다. 결국은 모두 제이크를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내린 결정이었고, 어느 선택에 있어서도 쉽게 내린 것이 없으며 신중한 마음이기에 더 아프게 다가왔다. 인간의 삶과 죽음이 항상 그렇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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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ll me now.

Heal me now.



킬미나우, 조이가 하는 태블릿PC의 게임에 나오는 용어로 좀비가 되기 전 자신을 죽여달라고 하는 말이다. 조이가 이 단어를 말하면 제이크는 항상 ‘힐미나우’로 들린다. 참 역설적이다. Kill과 heal 정말 다른 단어인데 같기도 하다. 그들의 마지막 선택도 힐미나우였다.

극의 첫 장면과 반대로 이번엔 욕조에 제이크가 들어가 있고 조이가 앉아있다. 그들이 내린 선택을 모두가 알기에 더 숨막혔고 그 마지막을 함께 하기 싫었다. 아마 나의 마음은 라우디의 마음과 비슷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힐미나우를 외친다. 아빠가 자기 때문에 너무 고생해서 이렇게 된 거라고 우는 조이를 끝까지 달래는 제이크는 너무나 먹먹했다. 미안함과 죄책감, 슬픔, 고통, 모든 것을 함께 느꼈을 그들의 마지막.

나는 그들의 다음을 생각해본다. 아마도 제이크의 꿈을 이어서 꾸는 것이다. 조이는 졸업을 하고, 대학을 가고 여자친구, 남자친구들을 사귀며 여느 평범한 청년처럼 행복하게 웃으며 산다. 그리고 제이크는 로빈과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며 생활한다. 조이는 결혼해 완벽한 존재인 아이를 낳고 제이크는 손주에게 동화책을 읽어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제이크는 소중한 사람들 곁에서 눈을 감는다. 아주 행복한 그림이자 꿈이다. 누군가에겐 그토록 이루고 싶은 꿈, 이루지 못한 꿈.

특별하지만 평범한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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