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프라하(Praha) 블타바 강변에 퍼지는 스메타나의 선율

글 입력 2014.03.03 11:3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체코/ 프라하(Praha)
블타바 강변에 퍼지는 스메타나의 선율

정태남 메인1.jpg



체코항공 편으로 프라하 공항에 도착했다. 기내에서는 스메타나의 <블타바 강>(Vltava)이 흘러나오는데, 다른 때보다 그의 음악이 더욱 더 의미 있게 들린다.  체코 근대음악의 아버지인 베드르지흐 스메타나(Bedřich Smetana 1824-1884)가 태어난 날이 3월 2일 인데다가 올해가 그의 탄생 190주년이 되는 해이자 서거 13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일까? 그러고 보니 체코에서 올해는 ‘체코 음악의 해’(Year of Czech Music 2014)이다. 사실 올해는 수도 프라하를 비롯하여 체코 전역과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의 몇몇 나라와 미국에서 수준 높은 음악회가 풍성하게 열린다. ‘체코 음악의 해’는 10년마다 개최하는 행사로 올해는 스메타나 뿐 아니라 드보르작(1841~1904) 서거 110주년, 야나첵(1854~1928) 탄생 160주년과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20주년도 기념한다.

 공항에서 시내에 들어온 다음 먼저 블타바 강의 양안을 연결하는 카렐 다리로 향한다. 세워진지 650년이 넘은 이 다리는 천년 고도 프라하의 유서 깊은 명소이다. 이 다리 위에 서서 유유히 흘러가는 블타바 강을 지켜본다. 이 강은 남부 보헤미아 숲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강줄기에 서부 보헤미아 숲에서 흘러나오는 또 하나의 지류가 이에 합류하여 프라하 시가지를 관통하면서 독일의 엘베 강으로 흘러들어 가는데 독일식 이름 몰다우(Moldau)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이 다리에서 나의 눈길은 다리 동쪽 입구의 강변에 세워진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로 향한다. 이 아담한 건물은 1936년 스메타나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 앞에는 스메타나의 동상이 세워져있다. 스메타나의 얼굴은 애수에 젖어 있는 듯한데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

체코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던 1918년까지 자그마치 300년 동안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아왔다.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던 1848년, 프라하에서는 학생과 노동자들이 구심점이 되어 오스트리아 정부군과 맞서 항전을 벌였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이 투쟁에 참가했던 24세의 젊은 스메타나는 외세의 무자비한 탄압을 몸소 겪고 나서, 자신이 체코 사람임을 더욱 절실히 느끼고 음악에 체코의 혼을 불어넣으면서 체코음악을 좀 더 근대적으로 정착시키는데 앞장섰다. 그런데 독일어로 교육을 받아왔던 그가 체코어를 제대로 배우기 시작한 것은 나이가 이미 30이 넘었을 때였으니 그의 체코어 이해력이나 구사력은 한계가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는 그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체코의 역사, 영웅담, 전설, 민속 등과 같은 요소를 자신의 음악에 첨가시키거나 체코의 풍경을 표제로 하는 등 체코 음악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그의 대표작은 오페라 <팔려간 신부>, 연작 교향시<나의 조국>과  현악 4중주 <나의 삶으로부터> 등을 먼저 꼽는다. 그 중에서 <나의 삶으로부터>는 ‘음악으로 쓴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스메타나는 한때 스웨덴의 제2도시 외테보리에서 몇 년 동안 객원지휘자로 있으면서 약간의 행복감을 느껴보긴 하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끝없는 고난과 고통 속에서 살다갔다. 젊었을 때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처절하게 겪었고, 어느 정도 사회적 기반을 갖춘 다음에는 네 명의 딸 중에서 셋이 죽는가하면, 첫 번째 아내도 병으로 잃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인간적인 슬픔을 겪었다. 그것도 부족한지 또 하나의 큰 시련이 엄습해왔다. 음악가에는 치명적인 재앙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청력이상 이었다. 신은 베토벤에게 주었던 그런 시련을 스메타나에게도 주었던 것일까. 베토벤은 그래도 말년까지 왼쪽에 청력이 조금은 있었지만 스메타나는 그것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 시련에 맞서서 창작에 자신의 혼을 불태웠다.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작곡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6개의 곡으로 이루어진 연작 교향시<나의 조국>(Ma Vlast)이다.  이 교향시의 첫 번째 곡 <비셰흐라트>와  두 번째 곡 <블타바 강>은 1874년에 작곡되었고 나머지는 그가 이미 귀머거리가 된 다음인 1879년에 완성되었다. <나의 조국>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곡은 단연 두 번째 곡  <블타바 강>이다. 두 곳의 다른 원천에서 흘러나와 합류하여 프라하를 지나는 블타바 강처럼, 이 곡에서도 그의 마음속에 흐르는 애수와 이를 극복하고 승화된 우아함이 함께 어우러져 흘러가고  있다.

청력장애에다가 나중에는 정신착란증까지 앓게 된 스메타나는 1884년 5월 12일 6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시신은 모든 체코국민들의 애도 속에 블타바 강변 비셰흐라트 묘지에 안장되었다. 이때는 겨울이 완전히 지나가고, 마치 신의 은총이 내린 듯한 봄 향기가 블타바 강변에 퍼질 무렵이었다. 매년 5월이 되면 프라하에는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진다. 스메타나의 서거일 5월 12일부터 ‘프라하의 봄’이라는 명칭의 국제음악제가 약 3주일 동안 열리기 때문이다. 이 음악제는 1946년부터 매년 개최되는데 전통적으로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으로 시작하여 베토벤의 교향곡 9번으로 끝맺는다.

카렐 다리 아래로 블타바 강은 유유히 흐른다. 애수어린 환희의 선율을 머금은 채로..



글, 사진  정태남

이탈리아 공인 건축가, BAUM architects 파트너

- 저서 -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외 다수

KBS TV 특강, EBS 세계테마 기행 출연



출처-음악저널
음악저널 로고.jpg




[최서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