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비올라 박사1호 이수정과 새로운 연주회 프로젝트

글 입력 2014.04.04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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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비올라 박사1호 이수정과 새로운 연주회 프로젝트
-이종구박사와 함께 청중 & 연주자간의 ‘쌍방향 소통 콘서트’운동을 펼칠 것-


메인사진(크게)-비올리스트 이수정.jpg



다시 연주 현장으로 돌아온 비올리스트

지난 2월 비올리스트 이수정은 쇼스타코비치의 유작 <비올라 소나타 Op.147에 대한 연구>로 단국대학교에서 음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내1호 비올라박사가 되는 날이었다.“그동안 바뀐 세상에서 사느라 옛날에 내가 연주자였다는 사실까지 잊었던 것 같다”는 말이 그와의 첫 대화다. 그는 6년 동안 음악학박사가 되기 위해 공부했는데, 그 공부는 연주자로 살던 옛날 방식하고는 180도 다른 그런 공부였다는 것이다. 그게 힘들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음악학박사이니 그래도 연주자의 삶과 엇비슷한 뭐가 있을 줄 알았는데 딱 시작하고 보니 전혀 아니었다. 악보를 읽어내서 해석을 악기로 표현해내면 되는 그런 공부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음악을 보는 자기만의 눈, 생각 등을 가지고 오라는 것이었다. 이 음악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작품인지로 시작해 하나의 작품 속에서 수백 가지의 느낌과 모습을 찾아내는 작업이었다. 정말 음악은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고, 그래서 음악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 이수정은 연주활동을 많이 해온 비올리스트다. 그런데도 6년이라는 다른 터널을 지나온 지금, 과거 자신의 연주색깔과는 전혀 다른 연주를 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다고 전제를 내렸다. 

“사실 작품은 연주를 해나가고 있는 중에도 매순간 다른 느낌과 표정을 갖고 얼마든지 자체 발전을 할 수 있어요, 이걸 터득한 것이 예전의 이수정과 다른 그것이지요”
이수정은 그동안 학위 논문을 쓰면서 작품을 여러 각도로 생각하고 해석하는 방법을 터득 하는라 세상의 모든 책을 뒤적이며 공부를 했는데, 그러다 한 작품을 열 개의 주제, 스무 개의 시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눈을 얻었다고 말했다. 맘을 먹는다면 멋지게 수십 편의 변주곡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만큼 작품을 요리하는 머리가 열린 것이다. 
그래, 그렇지만 ‘음악학박사’라는 예상치 못한 얼굴로 우리에게 온 이수정은 전혀 의외다. 큰 수수께끼 속에서 불쑥 등장한 주인공처럼 보여 음악계는 이수정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고 싶은 생각을 갖게 됐다. 

먼저 이수정이 누구냐 하면 1979년 5월 서울에서 출생한 비올리스트다. 이수정은 서울예고를 나왔고,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리고 다음 목표가 유학이었으나, 아버지가 ‘결혼하지 않은 여자를 혼자 유학은 절대 못 보낸다’는 주의여서 유학을 못가고 국내에 머무르며 외국 음악캠프에 가서 공부하거나 마스터클래스에 참가하는 정도로 공부를 지속했다. 그리고 한때 상당히 많은 학생들을 가르친 선생으로도 이름을 날렸다. 더불어 ‘올라비올라’와, 여러 오케스트라에 단원이 되어 연주활동도 했다. 그러다 결혼을 했는데‘우리나라 여성 연주자들에게 있어 결혼은 무덤’이라고 알려진 통상적인 개념을 뛰어넘어 이수정은 결혼하고 더 큰 모습으로 음악계에 돌아오고 있다. 어떻게 이런 특별한 일이 그에게서 일어났을까?  


리사이틀 연주.JPG▲ 둘째 아이 출산 후 2개월 만에 했던 리사이틀 연주


운명처럼 ‘음악학박사’문제가 그를 찾아왔다

우리가 이 궁금증을 갖고 질문하자 이수정은“시집의 환경은 더 큰 음악가가 되도록 자극하고 도전을 주는 특별한 집안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시집은 사돈에 8촌까지 통틀어 예·체능계열에 종사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지만, 시부모님을 비롯한 집안 어른들 대부분이 미국이나 유럽에서 오랜 유학생활을 하신 이유때문인지 모두 굉장한 클래식 애호가여서 평소에 전공자들보다도 더 많이 연주회를 찾았고, 그런 집안 분위기로 인해 이수정은 오히려 결혼한 후 좋은 음악회를 접할 기회가 더욱 많았다고 했다. 그리고 심장병 최고권위자인 이종구 박사가 이수정의 시아버님 바로아래동생 즉,‘시작은아버님’이라는 점이 그를 예전보다 더 클래식에 빠져들게 하였다. 이종구 박사는 심장내과 최고권위자이지만 오랫동안 예술의전당 후원회장이고, 그동안 「클래식과 와인」이라는 책과 「내 인생의 클래식」을 쓴 클래식에 관한한 최고의 멘토였다. 이종구 박사는 이수정과 음악얘기를 많이 했다. 그때마다 “수정아, 손가락만 잘 돌아가는 건 기술자지, 예술가가 아니다. 너는 공부를 더 많이 해서 진짜 음악가, 예술가가 되면 좋겠다”는 주문을 하며 어떡하든 세상의 연주자와 다른 연주자가 되라고 권면했다. 그러면서 시간을 만들어 이수정과 함께 공연을 보러 다녔고 그때마다 음악에 대한 다양한 얘기, 그리고 서양의 유명 연주자들의 개성적인 특별한 특성에 대해 얘기를 해주었다.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여러 예술에 대한 심오하고 다양한 얘기를 듣다보니 새로운 생각을 하는 물리가 트인 것은 당연하다. 새로운 일에 대한 욕구가 생겼다. 뭔가를 새로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생기며 부담으로 쌓였다. 그리고 이 시기는 참 미묘한 때였다. 이수정은 막 첫아이를 출산한 직후였는데, 아이를 보러온 단국대 신은령 교수가 우리 학교에 박사학위 코스가 있다며 공부를 좀 더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말을 한 것이다. 그래서 별 생각을 다하며 국내에서 ‘비올라박사’를 할 수 있는 학교와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알아보며 고민을 했다. 공부를 어떻게든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 그의 처지가 결혼을 하고, 첫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여서 시댁과 남편의 동의는 필수였는데, 남편과 시부모님은 공부를 더하는 것에 대해 절대 찬성이라며 앞장서서 결정을 내려주어 박사학위의 길을 걸어 갈 수 있었다.  



특별했던 ‘음악학박사’라는 공부 

- 박사학위 연구논문주제로 쇼스타코비치의 유작 < 비올라 소나타 Op.147 >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연주자로서는 처음으로 학술지에 논문을 기고하며 다양하게 활동한다던데? 


발표한 논문을 주제로한 저서들2.jpg        발표한 논문을 주제로 한 저서들1.jpg
▲ 발표한 논문을 주제로 한 저서들


누구에게나 박사학위는 특별한 일입니다. 그래서 이왕에 하는 것 남들이 안한 것을 해보겠다는 생각이 처음부터 있었어요. 연구주제를 선택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던 중 ‘음악예술과 상상력’이라는 주제의 논문들을 찾게 되었는데, 지인의 도움으로 인문학 관련 학술대회를 가게 되었고, 그 분께서 다음과 같이 조언해 주셨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정작 음악 전공자들은 창의성과 관련하여 논문을 한 편도 쓰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악기를 전공한, 즉 음악에 전문적인 사람이 그와 관련된 논문을 쓰면 오히려 교육적 적용의 측면에서 매우 효과적일 것 같은데, 이수정 선생이 한번 써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하셨어요. 사실 이 시기에 저는 음악 이론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때여서 그 자리에서 해보겠다고 답변하였고, 그날 이후로 또 다른 인생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의 도움으로 국내에서 비교적 큰 학회인 한국교양교육학회의 등재지인‘교양교육연구’에 몇 편의 논문을 기고하였고, 관련 학술대회에서도 세 편의 글을 발표했습니다. 학술대회 발표 때 많은 교수님들께서 악기전공자가 논문을 쓰는 경우는 처음이라며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도움도 많이 주셨습니다. 앞으로는 악기전공자들도 연주만 할 것이 아니라 이런 논문이 많이 발표됐으면 좋겠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으셨고 제 논문을 주제로 그 동안 2권의 저서가 출간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저의 일련의 노력들이 제가 학위논문 주제를 정하고 연구하는데 토대가 되었습니다. 사실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는 제가 비올라 전공자이기 때문에 아무래도‘비올라’라는 악기와 연관된 이론으로 정하는 것이 저의 악기 인생을 이론화하는데 실질적으로 기여할 것 같다는 생각에 쇼스타코비치 소나타로 정했지만, 욕심은 좀 더 포괄적인 주제로 논문을 썼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 비올리스트의 음악학박사 공부, 어떤 공부를 하는지 상상이 안 되는데, 어떻게 하는 공부였나요?

악기로만 표현하면 해결이 됐던 연주자에게 박사학위는 한마디로 어렵고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는 공부입니다. 이 공부는 나만의 새로운 눈을 갖는 것에서 시작이 돼요. 누구도 못 보는 것을 보고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한 세계를 찾아내 새롭게 음악을 정리하고 완성하는 창조적 작업이 음악학박사 공부의 출발점이었어요. 그 시점을 만들기까지가 너무 어려웠어요.  사실 그동안 실기위주로 연습해오던 연주에서 이론적인 바탕을 찾고 먼저 만들어야 하는 공부이니 전혀 감이 오지 않았었죠. 분석이 되나요, 이해가 되나요, 그만둘까 몇 번을 망설였습니다. 특히 종합시험에서 대위법 시험에 2번이나 떨어져 대위법 과외를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과외비만 해도 큰돈이 들어갔지요. 60분짜리 리사이틀을 6번했는데 연주곡은 소나타까지 모두 외우고 분석해서 설명을 해야 하는 연주였고요, 이렇게 공부했지요. 2년 정도가 고비였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혹독하게 훈련받은 만큼 예전과는 다른 내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작품에서 그동안 안 보이고 느껴지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고 느껴지며 개인적인 의견도 생겼습니다. 대위법을 배우고 나니 악보를 볼 때도 예전과는 전혀 다른 관점이 생겨났고요, 지금 연주하고 있는 작품의 작곡가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그 작곡가가 왜 이 곡을 이렇게 썼는지 감도 오더군요. 예전에는 그저 악보를 보고 표현하면 다 된다고 생각했는데 언젠가부터 악보에 적혀있는 셈여림표시나 나뉘어 있는 프레이즈는 물론, 피아노반주 등에서 어떤 맛이 느껴지더라고요.‘음악은 아는 만큼 보이고, 느끼는 만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터득한 거지요. 이 경지에 이르니 학위논문 그 이상의 일을 할 수 있겠는 능력을 자신 속에서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연주자로서 말하려는 것들 

- 박사학위 도전을 하기 전 서울예고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링컨센터, 카네기홀 등 미국 순회연주를 했었죠? 모스크바에서 열린 한국예술종합학교 & 러시아 모스크바 음악원 합동연주회나 프랑스 니스페스티발에서도 연주했었고, 서울아트오케스트라와의 협연, 예술의 전당 송년 콘서트 협연 등등. 연주자로서 관객을 만날 때, 품는 마음가짐이 있을까요? 

저는 연주를 시작한 처음부터‘내가 가진 것 중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작은 것이라도 주변과 나누는 연주자가 되겠다’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대학 1학년 때‘빛소리앙상블(몸이 불편하다거나 여유롭지 못하다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음악회장을 찾을 수없는 사람들을 위해 찾아가는 연주활동을 하는 단체)’에 우연히 참여해서 대학시절부터 대학원 졸업 때까지 앙상블의 리더로 전국 각지의 지체장애우 시설과 고아원, 교도소 등을 찾아가 연주했는데, 2000년도엔 특별한 경험도 했습니다.‘장애우의 날’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개관이래 처음으로 장애우들을 위한 무대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 무대에 제가 섰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콘서트에서 비올라가 아닌 수화를 했습니다. 약 보름동안 하루에 4~5시간씩 수화를 배워 장애우들이 부르는 베토벤의‘합창’가사에 수화로 통역(?)했던 거죠. 그날의 감동이 특별합니다. 그때 앞으로 어떤 연주자가 되어야겠다는 목표와 방향이 생겼어요. 지금도 연주 무대에 돌아가면 제가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기회가 될 때마다 직접 찾아가 도움을 주는 연주자가 되겠다는 생각입니다.


학위수여식때.JPG
▲ 박사학위수여식때 남편과 함께


앞으로 보여주려는 것과 앞으로 완성하려는 것

- 예전과 다른 새로운 계획이 이제부터 있을 것이라는 앞으로의 기대가 클 것 같은데···

솔직히 그동안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숙제에 집중해 있었어요. 이제는 예전에 못했던 것들을 꿈꾸면서 그게 왜 안됐지? 라고 질문을 던지고 답을 만들려고 합니다. 박사학위 공부를 하면서 발견한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은 질문하는 것에 대한 답변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동안 나는 제대로 질문하지 않는 연주자였던 거지요. 연주자들의 차이는 결국 지속적으로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의 차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무엇보다 박사학위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시작은아버님(이종구 박사)이 계속해서 도전을 제게 준 것이 있습니다. 그때는 도전이 숙제였지만 지금부터는 내가 시작할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될 것입니다. 시작은아버님이 클래식 하는 사람들은 너무 음악에만 신경 쓴다면서 연주자는 자신의 소비자에게 상품을 이해시키는 일을 해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연주의 질 못지않게 음악을 이해하고 사주는 자신의 마니아의 크기와 수준에 따라 연주자의 성공과 실패가 있다는 것이 어른의 지론이지요. 아마 청중과 연주자의 연합을 이루는 연주를 하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저는 그 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되지 않을까요?(웃음)

- 개인적으로도 준비하고 있는 일이 있을 법 한데요?

그동안 학위 논문을 쓰면서 개인적으로 얻은 것이 많아요. 깨달은 것, 새로 발견한 것, 감각적인 것과 그것의 의미 등 이론과 실전 등 아주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이치를 공부하는 단계 단계에서 얻고 깨달았어요. 그걸 학위논문에 다 넣지는 못하고 공부해온 노트를 만들어 기록해 두었는데 이제 그걸 참고하면서 책을 몇 권 쓰고 싶어요. 지속적으로 연구를 더 하고 싶고, 지난 6년 동안은 심사를 받기위한 연주였던 것 같은데, 이젠 심사위원이 아닌 관중을 모셔놓고 연주도 하고 싶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그동안 큰 도움을 받은 주위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오순화교수님, 강대식학장님, 신은령교수님, 사랑하는 부모님, 시부모님, 저의 영원한 음악적 멘토이신 시작은아버님 이종구박사님 등. 저는 이분들께 평생 은혜를 갚으며 살아야할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힘들어하거나 지칠 때마다 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저를 위해 기도해주고, 항상“우리수정이가 최고야!”라고 말해주는 저의 든든한 버팀목인 사랑하는 남편과, 그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저를 웃게 해주는 7살 딸 재인이, 4살 아들 지형이의 존재가 저를 모든 것에 그저 감사할 수밖에 없는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요. 이런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음반을 내려고 계획 중인데요, 어떤 음반인지는 아직 비밀입니다.(웃음) 글· 이 제




출처 - 음악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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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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