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둥지 찾은 통영국제음악제

글 입력 2014.04.11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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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숙원 끝에 건립된 통영국제음악당이 드디어 그 베일을 벗었다. 520억원이라는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 건립된 통영국제음악당은 통영의 명소, 경상남도의 명소를 뛰어넘어 한반도의 명소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팔방미인의 걸작이었다. 도대체 절벽끝에 외로이 서서 망망대해의 수평선을 의연히도 바라보고 있는 콘서트홀을 본 기억이 나는 없다. 통영국제음악당이 바로 그 같은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지상 유일의 건축적 음화(音畫)였다.

 
통영국제음악당 전경1ⓒDAELIM.jpg▲ 통영국제음악당 전경1ⓒDAELIM(사진출처-통영국제음악재단)

통영국제음악당 전경2ⓒDAELIM.jpg▲ 통영국제음악당 전경2ⓒDAELIM(사진출처-통영국제음악재단)

통영국제음악당 야경1ⓒDAELIM.jpg▲ 통영국제음악당 야경1ⓒDAELIM(사진출처-통영국제음악재단)


그러나 콘서트홀 본연의 임무는 아름다운 외관 이상으로 내부의 음악당이 품고 있는 어쿠스틱의 진가에 있을 것이다. 그걸 확인하러 지난 3월 29일 나는 통영으로 향했다. 전날 손열음이 협연한 라벨 피아노 협주곡의 개막연주회를 제쳐두고, 다음날 통영의 무대를 찾은 까닭은 두 가지였다. 우선 손열음의 비르투오시티는 같은 달 11일 원주 치악예술관에서 있은 생상스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무대에서 확인하는 등 볼 기회가 근래 들어 잦았기 때문이다. 그보다 나에게는 첫 내한공연을 서울 아닌 통영에서 갖는 불가리아의 명메조소프라노 베셀리나 카사로바의 29일 무대가 더욱 끌렸다. 올해 49세의 이 동유럽이 낳은 희대의 메조소프라노를 나는 이미 2007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파리의 팔레 갸르니에에서 목격한 적이 있다. 당시의 카사로바는 헨델의 ‘알치나’와 모차르트의 ‘이도메네오’에서 루지에로와 이다만테로 분해 명연기, 명보컬을 선사했다. 그랬던 기억이 있기에 그녀의 첫 내한무대를 만나러 나는 통영으로 향했던 것이다.


-카사로바의 명무대가 증명한 통영국제음악당의 탁월한 어쿠스틱

베셀리나 카사로바, 알렉산더 리브라이히 지휘 통영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협연 중.jpg▲ 베셀리나 카사로바, 알렉산더 리브라이히 지휘 통영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협연 중(사진출처-통영국제음악재단)


카사로바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티토의 자비’와 ‘미트리다테’ 중 갈등으로 점철된 세스토와 시파레의 아리아 두 곡을 섬뜩한 귀기로 요리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는데 카사로바는 앙코르로 비제의 ‘카르멘’ 중 ‘하바네라’를 농밀한 요염함으로 물들이는 진풍경을 연출하기까지 했다. 관객들 모두가 열광했음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 모두가 명징한 발성과 세공된 딕션, 그윽한 연기력이 하나로 녹아든 메조소프라노의 여제다운 카사로바의 명무대였다. 알렉산더 리브라이히가 이끈 통영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훌륭한 조력도 카사로바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럼에도 국내에는 카사로바의 진가를 아는 사람이 드물었던 모양이다. 과거 한국무대를 찾은 유명 메조소프라노들, 이를 테면 체칠리아 바르톨리와 안네 소피 폰 오터보다 국내에서의 지명도는 떨어질지 몰라도 오히려 그들을 능가하는 무대를 선사한 카사로바였기에 언론의 홀대는 유감스러운 것이었다. 이 날로부터 사흘 후에 그녀가 노부스 콰르텟의 협연으로 펼쳐보인 베를리오즈 ‘여름밤’도 그윽한 프랑스 가곡의 아취가 살아있는 수연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의 ‘여름밤’ 무대가 어떠했는지에 관한 리뷰기사를 나는 단 한 줄도 읽지 못했다. 유감스럽다 못해 애석하기 짝이 없는 그녀의 첫 내한무대 풍경이라 할 것이다.
비록 카사로바를 보기 위함이 최우선이었지만, 나는 그에 못지 않게 베일에 가려진 통영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정체도 몹시 궁금했다. 이 날 알렉산더 리브라이히의 지휘 아래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낸 통영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한마디로 다국적 오케스트라였다. 유럽과 아시아의 실력있는 연주자들을 규합해 결성한 통영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국내의 좁은 퍼스펙티브에 안주하지 않고, 세계무대로 뻗어나가려는 통영국제음악제의 야심을 보여주는 것 같아 흡족했다. 이들이 펼쳐보인 헨델의 ‘수상음악’과 브리튼의 오페라 ‘피터 그라임즈’ 중 ‘네 개의 바다간주곡’, 드뷔시의 교향적 소묘 ‘바다’는 다국적 악단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일사불란함과 세공된 짜임새로 점철된 쾌연이었다.


베셀리나 카사로바, 알렉산더 리브라이히 지휘 통영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난 후.jpg▲ 베셀리나 카사로바, 알렉산더 리브라이히 지휘 통영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난 후(사진출처-통영국제음악재단)
 

-유라시아대륙을 겨냥한 음악의 전초기지, 통영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01_ⓒDAELIM.jpg▲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01_ⓒDAELIM(사진출처-통영국제음악재단)


통영국제음악제를 품고 있는 바다를 모티브로 작곡된 매스터피스 위주로 개관연주회의 프로그램을 편성한 시도는 명민한 것이었다. 바다는 경계를 허무는 코스모폴리탄을 상징하는 메타포이기도 하므로 통영국제음악제가 지향하는 무경계의 글로벌한 스케일을 함축하는 것으로도 보였다. 여기에 통영국제음악제 재단대표로 독일의 저명한 음악행정가 플로리안 리임을 선임하고, 예술감독으로 독일의 실력파 지휘자 알렉산더 리브라이히를 낙점한 김승근 이사 이하 통영국제음악제 이사진들의 혜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통영을 한반도의 작은 땅끝 내륙에서 거대한 유라시아대륙으로 뻗어나가게 하기 위한 음악의 전초기지로 활용할 구상을 이미 끝마친 듯 보였다. 분명 그들은 선각자들임에 틀림없다.
1300석의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이 품고 있는 어쿠스틱은 카사로바와 통영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빛나는 연주를 더욱 윤기있게 감싸고 도는 이상적인 것이었다. 유럽의 저명한 연주회장들이 앞다퉈 선호하는 슈박스 형태의 내부구조를 완비한 통영의 이 숨은 보석은 본격적으로 전세계에 그 이름을 알릴 일만이 남아있다. 여기에 살바토레 샤리노의 음악극 ‘죽음의 꽃’이 오른 300석 규모의 블랙박스도 응집력있는 무대와 객석을 갖춘 명물이었다.
 
   
통영국제음악당 블랙박스ⓒDAELIM.jpg▲ 통영국제음악당 블랙박스ⓒDAELIM(사진출처-통영국제음악재단)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02_ⓒDAELIM.jpg▲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02_ⓒDAELIM(사진출처-통영국제음악재단)


앞으로 통영국제음악제는 통영국제음악당을 전천후기지 삼아 국제적인 인지도와 명성을 높이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외부로부터의 아낌없는 지원과 내부로부터의 다채로운 프로그래밍이라는 쌍권총을 차지 않으면 안 된다. 프랑스의 액상프로방스 음악제와 브장송 음악제,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음악제, 독일 바덴바덴 음악제, 스위스 루체른 음악제 같은 유명 브랜드들이 구가하고 있는 명성과 관록의 원천을 따져보는 일도 도외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의 통영은 10년, 20년, 100년이 흐른 훗날, 전설의 음악제로 기록되어야 마땅할 출발선상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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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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