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맑은 감성의 한국 애니메이션, '생각보다 맑은'

글 입력 2015.01.28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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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0일 화요일, 광화문 인디스페이스에서 진행되는 애니메이션 <생각보다 맑은>의 GV에 다녀왔다. Guest Visit의 약칭이라고 하는 GV는, 영화 상영 이후 감독과의 대화 시간을 통해 영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볼 수 있는 시간이다. 한국 애니메이션인데다가, 단편 모음은 더더욱 스크린에서 접하기 힘든 탓에 설레는 마음으로 GV를 다녀와 소개해보고자 한다.

<생각보다 맑은> 예고편


<생각보다 맑은>안에는 다섯 개의 단편이 들어있다. 상영순으로 럭키미(2014), 사랑한다 말해(2014), 코피루왁(2010), 학교가는길(2013)이 그것이다. 제작순서는 <코피루왁>, <학교 가는 길>, <럭키 미>, <사랑한다 말해> 순이다. 각 단편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럭키 미〉
대학 졸업반 두식. 뒤늦게 짝사랑의 열병을 앓는 그에게 가족과 친구들은 취직이나 하라고 압박한다. 그저 두식은 사랑도, 미래도 진짜 좋아하는 걸 하고 싶을 뿐인데…
〈사랑한다 말해〉
사내 비밀 커플 은솔과 김부장. 은솔은 결혼을 앞두고도 사랑한다는 말은커녕, 속내를 알 수 없는 김부장이 불안하다. 그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려고 한다.
〈코피루왁〉
메탈신의 계시를 받은 예미는 함께 음악을 시작했던 친구 강보가 대학입시에 전념하겠다며 갑자기 밴드 탈퇴를 통보하자 기가 막힌다. 예미는 죽어도 음악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데…
〈학교 가는 길〉
호기심 많은 9살 푸들 마로. 견생 9년 만에 처음 홀로 집을 뛰쳐나와 주인을 따라 나서지만 이내 옆길로 새버리고, 낯선 숲에 발을 들이며 처음 본 놀라운 세상과 마주한다.

생각보다맑은한지원감독.jpg

 한지원감독은 한국의 신카이마코토라고 소개되고 한국 애니메이션계의 샛별로 불리우는 감독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을 졸업했고, 수학하던 시절 만든 4편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묶어 개봉한 것이 이번 작품, <생각보다 맑은>이다. 일부는 왜 한지원 감독을 한국의 신카이마코토라고 부르는가에 대해 약간의 의문이 들 지도 모른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초속 5cm>, <언어의 정원>, <별을 쫓는 아이>외 다수의 작품을 선보인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배경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배경작화와 빛의 효과를 잘 써 '빛의 작가'로 유명하고, 섬세하고 감성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을 다수 내놓았다.
 한지원 감독의 <생각보다 맑은>에서는 <럭키미>에서 독백체로 섬세한 감정선을 이어 이야기를 진행해나가는 부분이나, <학교 가는 길>에서 보이는 묘한 <언어의 정원>스러운 색감 등이 아마 신카이마코토를 떠올릴 만하다. 물론 마케팅을 위한 수식어일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그러한 수식어에 대한 정보 없이 작품을 접했더라도 신카이 마코토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가장 큰 이유는 색감도 연출방식도 아닌, 작품의 가장 밑바닥에 깔린 어떤 우울하면서도 반짝거리는 감성이다. 현실이라는 소재를 마치 찌질한 남자가 아주 아름다운 여인을 바라보듯이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속칭 (Radiohead의) 'Creep감성'이다. 

마로.jpg

사랑한다말해.jpg

 작품 속 단편들은 모두 러프한 느낌의 작화를 보여준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익숙해져 있는 관객들에게는 다소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느낌을 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을 완성도의 문제라고 말할 것인지 스타일과 개성의 영역이라고 말할 것인지는 한지원 감독의 차기작을 포함한 앞으로의 행보를 지켜보아야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다.

 분명 꽤 많은 부분에서 다른 작품의 장면이나 설정, 분위기 등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혹자는 이를 보고 일본 애니메이션을 따라했다는 비평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미야자키 하야오같은 거장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이 어머니에게서 태어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실제로 한지원감독은 미야자키하야오가 자신의 롤 모델이라고 하기도 했고, GV에서는 <학교 가는 길>의 한 장면이 오마주이거나 따로 레퍼런스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Q) <학교가는길>에서 마로가 까마귀와 하늘을 나는 장면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붉은 돼지>에 나왔던 장면이랑 굉장히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그 장면이 롤모델이라고 하신 미야자키하야오에 대한 오마주인가요? 그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싶습니다. 
붉은돼지.jpg
  ▲<붉은 돼지>의 비행기의 무덤 신
생각보다맑은 나는장면.jpg
  ▲<학교 가는 길>

A) <붉은 돼지>는 정말 좋아하는 작업인데, 그 장면을 그릴 때 붉은돼지를 참고하지는 않았어요. 하늘을 나는 장면이라고 했을 때 어떻게 보면 미야자키하야오 감독의 특허처럼 생각하는 부분도 없지않아 있는 것 같아요. 하울이라던가, 센과 치히로도 하늘을 날고, 거의 매 작품에서 하늘을 나는데(웃음)... 사실 하늘을 나는 장면은 많은 애니메이션에서 나왔고, 그렇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적인 상상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붉은돼지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면... 장면이 훨씬 더 잘나왔겠죠? (웃음) 

 또 한가지 눈에 띄는 점은 전문 성우보다는 일반인의 목소리를 썼다는 점이다. <럭키미>와 <사랑한다 말해>에서는 특히 과장된 목소리가 두드러진다. 아무래도 대사라는 가장 표면적이고 직접적인 표현전달수단이 익숙치 않은, 또는 과장된 방식으로 들려오다보니 성우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GV나 시사회에서도 꽤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간 듯 하다. 다음의 문화뉴스의 인터뷰 일부에서도 그러한 질문이 등장했다.

Q) '럭키미'에서 엄상현, 양정화 성우를 제외하고 모든 작품은 성우가 아닌 이들이 목소리 출연했다. 제작비 문제 때문인가?
A) 제작비 문제 때문에 전문 성우를 쓴 건 반은 맞는 것 같다. 그 당시 작품을 만들었을 때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애니메이션 전문 성우의 더빙에 익숙한 분들이라면 작품 몰입에 많은 신경을 썼을 것 같다. 작품성은 있지만, 연기력 면에서 다소 정제되지 못했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다. '럭키미'의 경우엔 가장 마지막으로 작업한 작품이었다. 정식 개봉이 결정된 상황에 제작비 지원금도 받게 됐다. 원래 전문 성우가 아닌 상황에서 제작됐는데, 개봉을 결정하며 다시 녹음했다. 개봉을 앞둔 상황에 그 부분만 녹음했고, 엄상현, 양정화 성우를 캐스팅하게 됐다.

 GV에서도 성우에 대한 질문은 빠지지 않았다. 
Q) 시사회 전에 코피루왁을 DVD로 먼저 접했는데, 그 중 성우분들이 직접 녹음을 하시거나 전문 성우를 사용하지 않으신 점이 제게는 친근하고 재밌게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에 예고편이 올라오면서 댓글등에  '전문 성우를 사용하지 않아서 성우들이 설 자리가 없다', '작품의 질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있는게 아쉬웠는데요, 다음 작품에는 전문성우를 사용하실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A) (한지원감독) 성우에 대한 부분은 아마 이 상영관안에도 좋아해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신경쓰인다는 분들도 계실거에요. 하지만 그게 너무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했고, 많은 한국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언급되는게 성우 부분이고 많은 감독님들이 스트레스를 받으시는 부분일거라고 생각해요. 나도 (성우에 대한 것을) 고민해야 할 시기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래도 '자연스러우니까 됐지, 어울리니까 OK야'라고만 생각하기에는 아무래도 좀더 정제될 필요가 있겠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도 처음에는 화가 안난건 아니지만 (웃음).. 그래도 화가 날 문제는 아니었고, 제가 들어도 아쉬운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그냥 받아들이는 쪽으로 생각을 했어요. 사실 성우를 쓰냐 안쓰냐의 문제는 작품과 어울리면 쓰고, 안어울리면 안쓰는쪽이 가장 명확한것 같아요. 
 그런 덧글을 봤을 때 조금 답답했던 부분은, 성우냐 비성우냐 배우냐의 기준이 아니라 작품에 어울리느냐의 기준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식으로 판단을 한 것은 앞으로도 앞으로도 작품에 어울리면 배우든 성우든 충분히 함께 작업을 하고 싶고, 작품이 잘 나오는 현실적인 방향으로 선택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성우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함께 GV를 진행했던 엄상현 성우님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엄상현 씨) 저도 그런 얘기를 많이 듣는데 -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들은 실사 영화를 꿈꾸는가 - 그러니까, 성우를 안쓰고 배우를 쓴다는거죠. 근데, 애니메이션에 왜 꼭 성우를 써야하지? 그런건 누가 정했지?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결국은 그 댓글을 다는 애니메이션 팬덤, 팬들이 일본 애니메이션 팬덤이고, 일본 애니메이션 팬덤은 성우가 연예인 급이니까 - 결국 그런 것들이 한국 애니메이션에 그대로 적용되어서 나타나는구나 생각해요. 근데 저는 개인적으로는 왜 성우가 출발했을까 생각해보면, TV애니메이션같은 경우는 그림이 한정되어있으니까, 목소리연기로 그림이나 다른 부족한 부분을 메워야 할 게 너무 많고, 그래서 리얼하기보다는 빈 부분을 메꿔주는 부분으로 발전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극장용 애니메이션같은 다른 경우에는 그러다보니까 오히려 리얼리티, 즉 현실에서 만나는 목소리와 동떨어지게 되는거죠. 그래서 어떤 일본 애니메이션 평론가가 일본 애니메이션 성우들이 현실의 일본 목소리를 빼앗아갔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런 부분에서 애니메이션이면 무조건 성우라는 식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성우가 목소리연기가 프로페셔널한것은 맞지만, 그것이 무조건적으로 애니메이션 감독들이 성우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격을 받아야 하나? 하는 억울함이 조금 있는 것 같아요.  

 이외에도 GV에서는 많은 이야기가 오갔고, 창작자의 입장을 직접 들어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질문을 통해서 작품이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 신카이 마코토니, 작화니 성우니, 여기저기 말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하나의 기정사실이 있다. 정말, '생각보다 맑다'. 반짝반짝거리는 애니메이션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행복하고 환상적인 세계는 아니다. 앞에서 서술했듯이 귀엽고 유머러스하고 위트있는 표현 뒤에는 우울하고 ~인 세계가 깔려있다. 마치 시퍼런 파란색의 종이 위에 색색의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낸 느낌이다. 그림 자체가 우울하거나 절망적인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왠지 모르게 그런 기운이 감돈다. 그래도, '생각보다 맑다'. 마냥 시퍼런 그림은 아니니까. 애니메이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한 번 관심있게 찾아보고 관람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 생각보다 좋은 작품일지도! 

[조아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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