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저 많은 달빛은 누가 와서 치우나요? - 라 루나 (La Luna, 2011) [시각예술]

글 입력 2015.02.08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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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루나 (La Luna, 2011)

감독- 에린코 카사로사

7분/ 애니메이션




별 볼일 없는 일상을 마치고 늦은 저녁 친구와 커피를 한잔 하는데 문득 친구가 “요즘 참 별 볼일 없다.”는 말을 꺼냈다. 그래, 요즘 참 별 볼일 없다. 그리고 각자의 집에 돌아가려 선 버스정류장에서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서울 하늘에 별 보일 일은 없어도 달은 참 유난히 밝던 일이다.


픽사의 단편 애니메이션 라 루나(La Luna)의 제목 La Luna는 스페인어로 달님이라는 뜻을 지닌다. 7분 남짓한 짧은 러닝타임이 아쉬워 몇 번이고 다시금 재생 버튼을 누르면서, 화면 가득 휘영청 떠오른 달을 보면서 내 유년시절의 한 모퉁이를 더듬었다. 사촌 오빠와 시골길을 걷다 멈춰서 달이 자꾸만 나를 쫓아온다고 칭얼댔던. 과학영재 소리를 들으며 막 중학교에 올라간 사촌오빠는 그런 나를 두고 몇 번이고 “그건 달이 엄청나게 크고 멀리 있기 때문에 어디서든 달이 보여서 쫓아오는 것처럼 보이는 거야.”라 답변해 주었는데, 나는 어쩐지 그 답변이 영 마음에 들어오지 않아서 달이 자꾸만 나를 쫓아와, 말했던 일이 여전히 선명하다. 그런데 그때는 왜 달이 점점 줄어드는 것에 대해서는 궁금해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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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서두에는 자그만 나룻배가 고요한 바다를 떠가는 풍경이 하나 있다. 할아버지와 아이 그리고 아버지는 배를 멈춰 세우고 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린다. 달이 떠오르자 아버지는 그 작은 나룻배에서 긴 긴 사다리를 꺼내어 아이를 올려 보낸다. 몸보다 큰 닻을 두르고 아이는 씩씩하게 달을 향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다. 달에 내려선 아이가 마주하는 빛나는 별 조각들. 아이의 손끝이 닿으면 반짝 빛을 내는 별의 조각들이 모여 저 커다란 달을 밝히고 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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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삼부자에게는 할 일이 있다. 별 조각들을 치우는 일이다. 이때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아이를 사이에 두고 각자의 방식으로 별 조각을 청소해야한다고 다툰다. 그 사이에서 아이는 어쩔 줄 몰라 한다. 물론 모든 방법이 맞는 방법일 게다. 마치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는 정답이 없어서 모든 방식이 어쩌면 정답인 것처럼, 거기에 그저 각자의 방식이 있을 뿐. 여기에는 우리 서로 눈코입이 다르듯 모두 다르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간소한 진리만이 손에 떨어진다. 수만 명의 사람이 있다면 수만 명의 사람들은 각자 수만 개의 답을 안고 살아간다. 별 조각을 치워본 경험이 없어 확답할 길은 없으나, 별 조각을 치우는 방식에도 그러한 삶의 방식이 적용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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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서면 책 선반을 잔뜩 잠식한 채 각자의 방식을 설파하다 못해 강요해대는 수천 권의 자기계발서들이 떠들어대는 소리에 치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혹시나 나의 삶이 ‘정답’이 아니면 어떡하나 조급해지곤 하던 시절의 일이다. 나와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이가 있다면, 7분짜리 아주 짧은 단편 애니메이션 속 아이가 어쩌면 깃털보다 가벼운 한 가지 말을 선물해 줄지도 모르겠다. 각자의 삶을 인 채 길고 어두운 밤을 걸어오느라 지쳤을 모두에게, 저 작은 달빛이 길을 밝혀주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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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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