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선택과 함께하는 ‘광장’ [문학]

글 입력 2015.04.22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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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과 함께하는 ‘광장’

- 최인훈의 '광장'-


  • 서론

 삶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다. 우리는 주어진 상황에서 원하던 원하지 않던 반드시 하나의 선택을 내려야한다. 그리고 선택에 대한 결과는 오롯이 자신의 책임이다. 스무 두살의 인생을 뒤돌아보면, 나 또한 선택의 나날을 지내고 있었다. 나는 대학이라는 낯선 환경과 더불어, 그 속에서 어떠한 선택을 내려야하는가 하면서 머리를 지긋이 움켜잡은 적이 있었다. 이러한 고민을 겪고 있을 때, 당시 교수님의 추천으로 최인훈의 소설 ‘광장’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연찮게 접하여 읽게 된 소설 ‘광장’은 나에게 주어진 상황과 선택의 의미를 다시 되새길 수 있도록 도와준 계기가 되었다.



  • 본론 '선택과 함께하는 광장' -이명준의 선택과 소설‘광장’을 통해 바라보는 현대사회

"이런 나라는 얼마나 살기 좋을까?"


 이명준이 읽는 신문 해외토픽을 들여다보면서 간호부가 했던 말이다. 이처럼 광장은 남과 북, 즉 분단 된 나라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나라와 삶의 방향을 찾으려하고 그리고 고뇌하는 지식인 이명준의 이야기이다. 해방 뒤 평범한 대학생이던 이명준은 북으로 넘어간 아버지로 인하여 연행되고 연행 후 고문을 당하며 풀려나게 된다. 이명준은 부정부패하고 타락한 남한의 사회에 대해 환멸과 반감을 느낀다. 그래서 그는 자유를 찾기 위해서 월북을 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과 왜곡 된 삶을 지내며 살아가는 북한 사회의 모습을 보고, 이명준은 또다시 좌절하고 실망하게 된다. 좌절과 실망의 상황 속에서 이명준은 은혜를 만나게 되고, 그녀와의 사랑을 통해서 삶의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 그러나 6․25 전쟁으로 인해 은혜와 은혜의 뱃속에 있던 이명준의 아이는 비극적으로 죽게 되고 이명준은 국군에 잡혀가 포로가 된다. 전쟁이 끝난 후 이명준은 남한과 북한, 두 나라를 모두 거부하고 중립국을 선택한다. 그러나 중립국으로 향하던 타고르호에서 이명준은 바다에 몸을 던지며 자살을 선택한다. 이렇게 이명준의 죽음으로 소설 ‘광장’은 끝맺게 된다.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두 가지 선택을 내린다. 하나는 남과북이 아닌, ‘중립국’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자살을 통해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이러한 이명준의 선택은 그의 삶과 그 당시 시대상황을 이야기한다. 이명준은 남한과 북한 두 사회를 오가지만 자신의 자유를 담아낼 수 있으며 자신을 충족시킬 수 있는 ‘광장’이 존재한 사회를 찾지 못했다. 오히려 그가 남북을 오가며 만났던 사회는 광장을 비스 무리하게 따라하려는 ‘밀실’에 가까운 사회이며 세계였다. 부패한 자본주의 사회인 남한과 환상에 불과했던 사회인 북한의 모습은 이명준의 숨통을 조여 오는, 말 그대로 사방이 아무것도 없는 '밀실'이었다. 밀실의 사회에 갇혀 고뇌하는 이명준의 모습에서 나는 분단의 이데올로기를 겪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상기할 수 있었다. 해방직후부터 6․25 전쟁 종전까지, 당시 한국 사회는 수많은 이데올로기에 휩싸여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분단의 이데올로기는 한국 사회가 직면하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였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은 월남 혹은 월북을 하였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암담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므로 소설 ‘광장’은 이명준의 상황과 이명준의 선택을 통해서, 인간을 억압하는 그 당시 사회상황의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또한 소설 ‘광장’은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나아짐이 없다는 모순을 이야기 하였다. 하지만 이명준은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에서 남과 북이 아닌, ‘중립국’을 선택하여 삶의 돌파구를 찾으려하였다. 그러나 이명준은 자신이 원하며 최선의 공간이었던 ‘광장’이 아닌 차선의 공간인 ‘중립국’을 선택하였다. 이는 차선책을 선택한 이명준을 통해서, 당시 우리 민족이 소극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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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준은 중립국으로 향하던 타고르호에서 자살을 선택한다. 즉, 그의 마지막 선택은 남한도 북한도 중립국도 아닌, ‘죽음’이었다. 죽음을 선택한 이명준은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못하며 체념하는 인물이라 말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지식인으로서 부정적인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과 개혁, 그리고 저항하는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명준의 마지막 선택은 시대상황에 굴복하고 명백한 한계를 드러낸다. 그러나 나는 죽음을 선택한 이명준이 한계가 아닌, 새로운 ‘광장’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남과 북,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과 자신의 아이가 없는 현실에서 이명준의 광장은 존재 할 수가 없다. 물론 이명준은 차선책으로 중립국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명준에게 있어서 중립국은 완벽한 광장이 될 수 없었다. 오히려 중립국은 광장의 탈을 쓴 겉치레한 밀실에 가깝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삶과 사랑의 좌절감을 달랠 수 있는 이명준의 유일한 피난처는 죽음뿐이었다. 그리고 이명준의 죽음은 사후세계에서 자신이 원하는 사상을 실현할 수 있으며, 아내와 아이와 함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상적인 광장’이라 이야기할 수 있다. 또한 죽음만이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의 내밀한 삶의 공간이며 사회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죽음을 선택한 이명준의 삶을 보편적인 인간의 삶과 연관시키기는 어렵다. 그러나 타락하고 추락한 사회와 현실에서 자신의 마지막 뜻을 펼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이명준은 지식인으로서 저항적이며 적극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 이야기할 수 있다.


 이명준의 죽음은 새로운 광장을 제시함과 동시에, 당시 우리 민족이 현실에 굴복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명준은 남북한을 양자택일 식만으로 인식하였고 스스로 광장을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이는 이명준을 통해, 우리 민족은 삶을 변화시키려는 적극적인 창조의지가 결여되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명준은 진정으로 진실 된 광장을 추구하기보다는 자신의 관념과 연관 되어있는 폐쇄 된 밀실 쪽에 이미 기울어진 상태였었다. 그러므로 그가 선택한 죽음은 이상적인 광장이면서 동시에, 현실 도피와 삶의 포기로 해석할 수 있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나는 이명준이 고뇌하면서 살았던 분단의 시대와 지금 내가 살아가는 현대사회가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생각한다. 현대사회의 사람들은 남북사상에 대해 고뇌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지속적으로 경쟁을 펼치면서 성취의 결과를 중요시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쟁은 이기주의를 낳을 뿐만 아니라, 개인을 능력 이상으로 발전시키기 어려운 장애물을 만든다. 그러므로 경쟁과 이기주의로 둘러싸인 현대사회는 이명준이 살아가던 사회와 같다. 즉, 현대사회는 경쟁으로 인해 생긴 독단과 이기적인 현실 때문에 우리 민족에게 좌절감과 실망감을 주는 사회에 불과하다. 나도 이러한 현대사회의 모습 때문에 좌절을 느끼고 절망한 적이 있었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학점과 스펙으로 인해 독단적으로 변해가는 지인들의 모습을 보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가 진정으로 더 불어 살아가는 사회가 맞는가?’ 하며 사회의 대한 의문과 불만감을 보이곤 했었다. 그리고 경쟁사회에서 혼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살아가는 내 모습에 초라함을 느꼈다.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고, 남들 몰래 눈물을 삼키곤 했었다. 하지만 나는 소설 ‘광장’을 읽은 후 경쟁사회인 현대사회에서 내가 스스로 나아갈 수 있는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독단적이며 이기적으로 변해버린 주변인들의 모습을 보고 한탄하기 바빴었다. 그리고 내 자신을 그들에게 속박하곤 했었다. 그러나 나는 소설 ‘광장’을 읽은 후 이 속박으로부터 벗어 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명준이 광장을 찾기 위해서 수많은 상황을 스스로 선택한 것처럼, 나도 내 자신의 광장을 찾기 위해 내 스스로 후회 없는 선택을 내리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사회가 내가 원하는 광장이 되어줄 수 없다면, 내가 사회가 원하는 광장이 되어주자.’라고 다짐하였다. 


  • 결론

 삶이 존재하는 한 선택도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을 통해 우리의 삶은 '광장' 혹은 '밀실'이 될 것이다. 자신의 자유를 완벽히 충족시켜줄 수 있는 선택을 내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남이 아닌 자신이 한 선택이 자신의 광장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소설 ‘광장’을 읽었으면 한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이 소설 ‘광장’을 읽은 후 스스로 광장을 찾으려 쉬지 않고 발걸음을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는 것도,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다.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은 자신 주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그 것 하나뿐이다. 만일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명준처럼 죽음을 통해서 광장을 만들려는 경우도 드물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현대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밀실과 한계적인 광장을 맞이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던 사회와 자유 공간인 진정하고 진실 된 광장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가 꿈꾸는 광장에서 자신의 삶을 충족시키고 자신이 원했던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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