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재다예'의 작가 정탁영

글 입력 2015.06.28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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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탁영 전시.jpg


얼마 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기증작가 특별전으로 故정탁영 작가의 전시회가 있었다. 미술 분야에 있어 상식 정도만 갖추고 있는 필자는 현대 한국 작가에 대해서는 이용덕 작가 외에 무지하였기 때문에 역시 정탁영 작가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전시를 관람하게 되었다.

정탁영 작가는 한국을 대표하는 수묵추상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의 작품은 추상화뿐 아니라 드로잉, 작곡과 작사, 철조 공예, 로고디자인 등 장르와 주제를 넘나든다. 전시는 작가의 기증작품들을 중심으로, 한 편의 긴 스펙트럼을 갖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전시는 마치 한 편의 전기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작가의 생애를 낱낱이 드러낸다. 재료와 주제는 다양하지만 전통에 기반을 둔 일련의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그의 담백하고 고고한 정신을 드러낸다.

예술은 삶에 기반한다. 그의 작품도 또한 그러했다. 학창시절 미군부대에서 초상화 그려주는 일을 하며 미술에 두각을 드러냈던 그는, 50년대 인물스케치에서 90년대 인물의 드로잉으로, 2000년대 칼그림의 드로잉 시리즈로 인물에 대한 관심을 일관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1964년 군 제대 이후 방송국에서 일하며 무용수들을 스케치했던 경험이 바탕이 되어 그는 40여 년이 흐른 후에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여성누드의 칼그림을 제작하기도 한다.
 
그의 작품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관심을 가진 주제를 면밀히 살펴볼 수 있는데, 처음 자화상이나 다른 인물의 스케치 등 인물을 자세히 표현하는 것에서, 점차 보다 먼 거리에서 인물을 관찰하고, 세밀한 표현보다 인물의 움직임과 역동성에 주안점을 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인물의 움직임에서 포착한 추상성이 작품의 새로운 주제로 태동한다.


정탁영, [드로잉 2002-4], 2002, MMCA 소장.png
- 정탁영, [드로잉 2002-4], 2002, MMCA 소장


그러한 그의 작품은 1971년의 상파울로 비엔날레 출품작인 [작품71]을 통해 잘 드러난다. 회화적 요소가 배제되고 뜯는 행위가 주체가 된 이 작품 이후 그는 소묘보다 판화형식을 기반한 추상수묵화 작품을 제작하여 주목을 받았다.


정탁영, [작품71]시리즈, 1971, MOA 소장품.png
- 정탁영, [작품71]시리즈, 1971, MOA 소장품


그의 작품세계는 한 사조의 성공에서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시도들을 통해 스펙트럼을 넓히며 발전해 나간다. 흙그림이나, 낙관류, 그가 직접 바느질한 색모시 작품, 마분지에 칼로 그린 인체 드로잉 등은 진화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는 갇혀 있지 않았고 자신에게 한계를 두지 않았으며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기존의 자신의 영역에서 벗어나 시를 쓰고 작곡을 하는 등 표현의 영역을 넓혔다.

심장수술로 인해 건강이 좋지 않던 시기에도 그는 바느질 작업과 칼그림을 통해 작품 활동을 계속하였고 그러한 모습은 필자에게 건강이 악화로 붓을 들 수 없게 되자 가위를 들고 색종이를 잘라 예술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 마티스를 떠올리게 했다.

전시를 보며 감탄한 것은 어떻게 이렇게 한 사람의 여정이 작품을 통해 잘 표현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한 작품에서는 여간 해서 드러나지 않았던 것들을 생애를 통틀어 그가 제작한 작품들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그는 재능 있는 사람이자 성공한 작가였고 헌신적인 교육자이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다양한 수단으로 끝없이 표현하고자 했던 열정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작품들을 통해 정탁영 작가를 들여다 보며 한 사람의 깊이가 이렇게 깊을진대, 우리가 한 사람을 제대로 알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떠올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잘 알지 못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는 나를 표현하고 나를 알아보는 작업을 삶의 마지막까지 계속해야 하는데, 정탁영 작가는 그러한 작업을 그의 작품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정탁영, [영겁속에서 2000-13], 2000, MMCA 소장품.png
- 정탁영, [영겁속에서 2000-13], 2000, MMCA 소장품


[이영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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