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학벌주의 사회에 던진 돌직구, 연극 '모범생들'

글 입력 2015.07.18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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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길



지난 11일 오후 세 시,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연극 [모범생들]이 있었다. 빨래가 절대로 마르지 않을 것 같은 습기와 더위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지하 소극장으로 모여들었다. 입구 쪽, 표를 파는 곳에서는 오늘의 캐스트를 보여주고 있었다. 해당 공연의 캐스트는 명준 역에 박성훈, 수환 역에 김슬기, 종태 역에 최대훈, 민영 역에 문성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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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생들티켓.jpg
 

 지하로 내려가는 길에는 10명의 주연 배우들의 사진과 이름, 배역이 나온 포스터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처음 보는 연극인만큼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자리를 잡았다. 꽤 뒤쪽 가운데 자리를 앉을 수 있었다. 

 나는 소극장 연극이 마이크조차 사용하지 않는 줄은 몰랐다. 온전히 배우의 육성으로만 전달되는 울림은 어떤 뮤지컬, 영화와도 비견되지 않았다. [모범생들]은 배우들의 연기와 연출팀의 섬세한 사운드, 4개의 책상과 주위를 둘러싼 가벽만으로 100분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었다. 특히 처음, 성인이 되고 성공한 후에 화장실에서 만나는 명준과 수환, 그리고 잠시의 암전 이후 교복을 입은 명준과 수환은 외적 차이로는 교복과 안경을 더했을 뿐이지만 완전히 다른 사람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배우들이 걸음걸이, 대사톤, 빠르기, 표정, 분위기를 모두 다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후기



 배우들의 연기는 솔직히 흠 잡을 데 없었다. 육성으로만은 채우기 힘든 공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뒷좌석까지 대부분의 대사가 잘 전달되었다. 클라이막스인 민영과 명준, 수환, 종태의 대립 장면에서 명준 역 박성훈 배우의 오열 연기는 보는 사람도 굴복시키는 느낌이었다. 순식간에 감정을 끌어올려서 폭발시켰다. ‘저렇게 감정을 폭발시키는데 하루 두 번 공연은 불가능하겠다’라는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그 날 있었던 저녁 공연의 명준 역 또한 박성훈 배우가 맡았다.) 조명이나 사운드도 완벽했다. 길을 건널 때 차가 오고 가는 장면들을 연출한 것도 그렇고, 사황에 대한 설정과 배경 만드는 작업 또한 완벽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조금 아쉬운 부분은 연출이다. 상황 설정에서, 배경은 ‘대림외고 3학년 독일어반’이다. (독일어반으로 설정한 이유는 아마 중간중간 있는 명준의 독일어 대사가 주는 차갑고 단호한 느낌 때문일 것이다. 이를 스페인어나 중국어로 했다면 냉정한 성적주의 세계에 대한 전달이 더 약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필자는 특목고 졸업생이다. 그리고 타 특목고에서 온 친구들도 여럿 알고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특목고에서 저렇게 시험지를 훔치려고 작당하거나 단체 컨닝을 모의하는 일은 거의 없다. 물론 극적인 상황을 만들려다 보니 나온 설정이겠지만 성적에 대한 열망이나 그로 인한 다툼이 특목고에서만 비롯되리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요즈음은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극소수의 몇몇 아이들만 집중 관리 대상으로 지정, 고등학교의 대입 실적을 내려 한다. 그러다보니 그 소수에 들기 위해서 더욱 경쟁이 치열해지고,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특목고에 성적 다툼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성적 다툼을 그리는 내용의 배경이 특목고에만 국한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한 친구가 [모범생들]을 보러 간다고 하자, ‘기분이 유쾌해지는 연극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럴 수 밖에 없다. 현실 비판적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충분히 재미있었다. 과격한 행동 뒤에 숨겨져 있던 순수함, 그리고 연출자와 작가의 이상향이 담겨있는 종태 캐릭터, 대사량이 정말 많았을텐데 아웃사이더 못지 않는 빠른 대사를 보여준 수환, 그리고 눈치없는 수환을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처리하는 명준까지. 각각의 캐릭터는 모두 선명한 색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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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분이 네 명의 배우로 충분하리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사실상 2시간의 연극이었는데, 별다른 무대 장치도, 엑스트라도 없이, 무대에서 육성으로 네 배우가 보여준 합은 대단했다. 물론 학벌주의 사회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다소 식상할 수 있는 메시지보다는 배우들의 합, 연기, 몰입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김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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