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분절된 시각. SI Dance 2015 < 그라인드 >

글 입력 2015.10.19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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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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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그라인드 공연을 관람하러 서강대 메리홀로 향했습니다.
소극장 규모의 작은 공연장인 메리홀에서의 공연은 첫 관람이었는데요. 일반적인 프로시니엄 형태이지만 무대의 단이 없어서 관객과 공연자 사이에 좀 더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할 것 같더군요. 하지만 저는 2층 객석이라 관람하는데 조금 불편함이 있었습니다ㅜㅜ (단이 없는 만큼 사람이 플랫하게 보였어요.)

공연이 시작되는 동시에 암전이 됐는데 강한 비트의 음악이 함께 나왔습니다. 시야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 상태에서 진동이 느껴질 만큼 큰 비트의 음악이 있는 상태인거죠. 이때 가장 큰 느낌은 '공포‘ 였어요. 사람이면 느낄 수 있는 원초적 공포랄까요. 어둠과 음악이 나를 집어 삼키는 듯한, 그리고 묘한 부유감. 상당히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암전상태가 꽤 오래 지속되고 무대에 불이 들어왔는데 곧 갈아야할 전등이 깜빡 거리는 것처럼 미약한 빛이 명멸하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빛이 아주 약한 상태에서 안무가가 행위를 시작 하는데 앞에 언급했다시피 굉장히 플랫하게 보였기 때문에 자세히 어떤 식의 행위인지 설명은 못하겠습니다. 저는 검은 형태가 꿈틀거리는 모습처럼 보였기 때문에 거머리나 애벌레가 떠올랐어요. (ㅋㅋ) 지금이야 웃으면서 말하는데 실제로는 공간 전체가 어두웠기 때문에 원근감이 없는 상태였어요. 코앞에서 이런 기괴한 장면을 보는 느낌에 덜덜 떨면서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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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장면에서는 긴 끈을 감으며 벽에 등을 부딪히는 반복적인 행위를 보였는데요. 벽에 쿵쿵 등을 들이박는 행위에서 어떤 경쾌함이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반복이 계속되면 지루함을 느끼는데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해서 재미있었어요. 또 조명디자이너가 이런 점을 염두하고 작업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행위를 하는 중에 조명의 위치가 계속 바뀌는데, 그래서인지 안무가의 행동과 그림자가 묘하게 엇갈리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림자가 마치 다른 제2의 사람처럼 보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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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빛 드로잉
 

이 다음 유연한 흰 봉을 휘두르는 장면이 있었어요. 이때도 빛의 명멸을 볼 수 있었는데 불이 깜빡이는 순간에 캡쳐되는 장면 하나하나에 눈 안에서 사진을 찍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음 장면도 비슷했는데 이번에는 공간에서 조명을 주는 게 아니라 안무가가 돌리는 긴 전선 끝의 조명 빛을 조절해서 잔상이 느껴지게 했어요. 이 장면에서는 피카소의 빛 드로잉이 떠올랐는데 장 노출사진 같은 느낌이 너무 좋았습니다. 이때 사운드도 빠른 바람소리가 나서 속도감이 붙는 느낌을 더 잘 받았습니다.

느낌 그대로 쓰려고 노력하다보니 본 그대로 죽 나열한 리뷰가 되고 말았네요ㅜㅜ 글로 보는 것 보다 이 공연은 직접 봐야 진가를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분절된 장면 장면의 느낌들이나, 반복되는 행위, 눈의 잔상 등 ‘무용 공연에서도 이런 기술을 결합할 수 있구나’ 를 처음 느꼈던 공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공연에서 큰 역할을 했던 게 조명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빛을 이용해서 익숙한 감각들을 분리해내는 이런 과정들이 저에게 많은 영감을 줘서 도움이 되었어요. 빛에 익숙한 우리에게 어둠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달까요.

스토리는 없지만 일련의 행위들로 인해 굉장히 감각적이었어요. 이번해 가장 인상 깊었던 공연이었습니다. 


 

영상에서 일부가 나와있으니 궁금하면 영상을 보시는걸 추천합니다.



[나유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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