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 - 연극 '그리워 그리워'

글 입력 2016.05.16 16:3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액자 안의 무대에는 깔끔한 목재 가구들이 있습니다. 현관에는 미처 풀지 못한 짐상자들이 쌓여있습니다. 일흔 쯤 되보이는 남자가 들어옵니다. 그는 아내도, 하나뿐인 딸도 잃었습니다. 유일한 혈육, 손녀의 결혼식이 코앞인데 오지 말아달라는 소식을 듣게됩니다.
괘씸한 마음이 들어 말도 없이 결혼식에 참석합니다. 하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습니다. 되려 찜찜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그에게 '아내가 남긴 유품'이 배달됩니다. 그리고 문득, 이삿짐에 딸려 있던 하늘색 원피스가 기억납니다.





▶ 그리워 그리워 홀로 그리워

이야기는 참석하지 못하는 결혼식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듯합니다. '첼로'로 대변되는 죽은 아내와 '사진'의 딸에게 말을 걸며 어떻게 외할아버지인 자신을 결혼식에 초대하지 않냐며 울분을 토합니다. 그런데 그의 삶에 불쑥 '하늘색 원피스'가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별거 아닌양 취급합니다. 딸의 옷도 아니고, 유품을 남기지 않은 아내의 것도 아닙니다. 불청객으로 손녀의 결혼식에 다녀온 날, 그는 하늘색 원피스가 잠시 바람을 폈던 상대 '도연'의 것임을 깨닫습니다. 딸이 죽어갈 때, 자신은 파리에서 도연에게 하늘색 원피스를 사주고 있었습니다.

"한 순간의 바람이었다"고 치부하는 순간, 아내가 아끼던 첼로가 넘어집니다. 그는 불안한 마음으로 아내의 유품을 꺼내봅니다. 아내의 일기장.
불완전했던 조각들이 맞춰지고, 아내를 아끼고 딸을 사랑하는 좋은 남자였던 그는 한 순간에 '나쁜 놈'이 됩니다.


1.jpg


 그가 딸을 죽인 것이나 다름 없으며, 아내가 죽어가면서까지 그를 밀어냈던 것도 남자의 잘못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워 그리워'는 그가 죽은 아내와 딸을 그리며 하는 말이 아닌, 아내가 멀어진 그에게 던지는 말이었습니다.





연기생활을 50년째 하신다는 임동진 씨의 연기는 정말 좋았습니다. 1인극임에도 불구하고, 무대가 비어보이지 않았고 계속해서 사건이 일어나서 지루할 틈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이크를 쓰고 연기를 하니 목소리가 한 곳(스피커)에서만 계속 흘러나와, 이야기를 하는 방향이 불명확해 답답한 감이 있었습니다.

초반에는 정말 대단하다 싶을 정도로 사건이 많고, 우울하지 않은 싱글남의 모습을 보여준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중반부터 조금씩 의아했던 건 가장 큰 사건이라고 생각했던 '결혼식'이 메인 갈등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결혼식 불참으로 극이 절정에 달할 거라고 예상한 저의 생각과는 다르게 이야기가 부드럽게 흘러갔습니다.


2.jpg


그리고 나타난 반전! 아내의 일기장을 기폭제로 '모든 비밀이 밝혀졌어!(코난)' 정말 엄청난 사실들이 드러납니다. 지금 남자가 외롭게 홀로 지내야하고, 손녀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게 다 인과응보였던 거죠.
반전이 충격이기도 했지만, 정말 갑작스러워서 뜬금없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진실을 마주한 남자의 태도였습니다. 전형적일지라도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아내가 이미 자신을 용서했다고 생각합니다. 용서의 장치를 넣어놓은 것 같긴 했지만, 이해되지 않았고 남자의 태도가 자기합리화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인간이니까, 이기적이고 나약한 선택을 하게 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산 사람은 어떻게든 버텨야합니다. 결국 그리움도 산 사람의 몫이 됩니다.



그리워 그리워... 그리워하다가
당신 곁으로 갈게요...



임동진 모노드라마 <그리워 그리워>
5월 9일 - 6월 25일
KT&G 상상아트홀



[박수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9.20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