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보통의 농구, 레몬 사이다 썸머 클린샷 [공연]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었을 법한 순간들
글 입력 2019.10.2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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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_레몬사이다썸머클린샷01.jpg

 

 

<시놉시스>


"같이 농구 할래요?"


작업 중인 게임 시나리오의 클라이막스를 앞두고 한 문장도 쓸 수 없게 된 연정. 공원 자판기에서 제일 인기 없는 음료 레몬 사이다를 한 캔 뽑아 마시는데, 농구공을 든 재영이 나타난다.


농구 시민리그 참가라는 말도 안 되는 제안으로 연미, 환희, 혜준을 만나는 연정은 잠시 모든 걸 잊고 농구에 푹 빠진다. 살아온 환경도, 대회 참가 이유도 제각각인 다섯 명은 과연 팀이 될 수 있을까? 연정은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 있을까?

 

 
보통의 농구 연극은 작가의 말처럼,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이 최선을 다하며 농구를 하는 연극이다. 고등학생 2명과 대학생 한 명, 30대 직장인, 그리고 프리랜서까지. 공통점을 찾기 어려운 이들이 한팀이 되어 농구를 한다. 단 하나, 팀이 되어 '이긴다'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부담감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이 두 가지 감정을 가지고도 끝까지 농구를 한다.

요즘 그 어떤 때보다 순간의 작은 선택들을 많이 하는 중이고, 그 선택을 나는 힘들어한다. 중대한 하나의 선택보다도 크게 느껴지는 건, 이 작은 선택마저도 잘못하게 된다면 어떡하나 싶은 마음 때문이다. 또, 실패하면 기회가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도 있고, 그 실패 뒤에 남은 건 후회와 자괴감뿐이다.

그래서 가장 공감되었고, 바라보기 힘들었던 캐릭터가 바로 연정이었다. 게임 시나리오를 쓰다가 막힌 그는 레몬 사이다를 마시다가 농구팀에 합류하게 된다. 내 의지와는 반대로 오는 실패에 익숙해지면서, 순간의 고비만 넘기며 살아가는 캐릭터. 또, 실패에 익숙해서인지 부담을 크게 느끼며, 잘하지 못하면 안 하는 게 낫다는 식의 태도를 보인 그녀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레몬사이다썸머클린샷_c김희지_연습사진9.jpg

 
 
이 연극이 참으로 보통의 이야기라고 느껴졌던 것은, 결국 이들이 보여주는 것들이 우리의 삶과 별반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무언가를 해보려고 마음을 크게 먹지만, 또 막상 하다 보면 잘 안돼서 막막하고, 막막하니 결말이 나쁠 것 같아서 포기해버리는. 그리고 나면 남는 것은 자괴감뿐인 보통의 일상을, 어쩌면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었을 법한 순간들을 그려냈다.

다만 서로 다른 배경과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여성들이 한팀이 되어 승리라는 목표를 가지고 농구를 한다. 그리고 그 승리는 각자마다 다른 정의를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어찌 됐건, 서로를 믿었고,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고, 뒤로했던 농구를 다시 좋아하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의 영향으로 그만하고 싶은 순간을 이겨낸다. 스포츠 물에서 볼 수 있는 열정 가득한 모습과 동시에 여성의 연대, 작가의 말처럼 근사한 마법이었다.
 
 

레몬 사이다 썸머 클린샷_공연사진_1_c김희지.jpg


 
그리고 연극은 마지막에 이들이 승리했을지 아닐지, 골을 넣었을지 아닐지 그 여부는 모른 채 끝이 난다. 시원하게 클린샷을 던졌지만, 판단은 각자의 몫이고, 그들이 승리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하자는 뻔한 말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부담감이 가득한 순간을 대면하게 했고, 그 순간을 이겨내는 모습을 본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작품을 통해 내 삶을 돌이켜보게 한다는 것이 예술의 존재 가치라면, 이 연극은 보는 순간들 속 나를 대입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정말 일상적이라고 느꼈고, 그래서 좋았다고 말해본다. 매 순간 사실 극적인 순간보다는, 소소하고 정말 보잘것없고, 비슷하게 흘러가는 일상으로 이루어진 게 인생일 테니까. 그리고 그 와중에도, 이렇게 내가 만든 내 벽을 넘고, 이겨내는 소소하지 않은 순간들도 존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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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어들이 선사하는 감동

농구는 1쿼터에 십 분이다. 기상 시간에 맞춰둔 알람 소리에 깼다가 잠깐 정신을 차리기 위해 눈을 감았다 뜨는 시간이 십 분 정도다. 그런데 그 십 분은, 모든 드라마가 다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직접 경기를 뛰어보며 깨달았다. 나는 이 드라마를 언젠가 무대 위에 옮겨놓으면 좋겠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어들이 선사하는 감동은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마법과 닮은 점이 많다. 나는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이 나와서 코트를 누비며, 그러니까 무대를 누비며 농구 하는 공연을 만들 수 있다면, 정말 근사한 마법을 부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 작가 심정민


 
[고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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