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1985년 남영동에서의 진실 [영화]

글 입력 2020.02.10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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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지 않은데, 정말 머리에서 지우고 싶은데, 그런데도, 자꾸만 떠오르는 그런 기억들이 존재한다. 이별의 상처라든지, 자신의 흑역사 같은 것 말이다. 이 영화가 내게 그렇고, 당신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러닝타임이 106분인 영화다. 98% 정도, 즉 영화 전부가 고문 ‘그 자체’이다. 실화를 기반으로 만든 영화로, 고문 기술자인 이근안이란 사람과 당시의 형사들이 김근태란 사람을 고문해서 허위 자백을 토로하게 하는 뻔한 전개다. But! 영화를 보면 너무도 참혹하고(징그러운 건 아니다), 내가 다 고통스러워서 몸이 움직이질 못한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1985년에 남영동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건은 마치 5·18 민주화운동을 기억해야 하는 것처럼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기억이다. 어떤 블로거가 이런 평을 남겼다. “우리는 왜 이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가.

 

영화 <1987>은 700만이 넘은 흥행한 영화로, 기억하는 이들이 당연히 꽤 되겠지. 그중 절반까진 아니어도 많은 사람이 배우 ‘강동원’ 씨나 배우 ‘김태리’ 씨를 먼저 떠올릴 거라는 짐작도 살짝 해본다. 이 영화만이 아니라 모든 영화가 관객에게 각기 다른 기억으로 남는다. 배우가 생각날 수도, 그때의 감정이 생각날 수도, 같이 봤던 사람이 생각날 수도, 좋았던 사운드가 생각날 수도, 경치 좋은 촬영지가 생각날 수도, 그리고 재미가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생각날 수도 있다. 물론 이것 말고도 기억 저장 버튼은 많다.

 

?! 멈칫. 이 중 ‘누름 금지’라 적힌 버튼이 있다. 이러면 괜히 눌러보고 싶다. 근데 영화 보면 꼭 하지 말란 거 하는 애들은 죽던데…. 아무튼, <남영동 1985>가 누르면 안 되는 버튼이다. 해당 영화는 ‘이명박’ 前 대통령 정권에서 ‘박근혜’ 前 대통령 정권 시절로 넘어갈 즈음 개봉했다. 대통령이 어느 정당이냐, 어느 성향이냐에 따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언론과 예술 쪽에 손을 댄다는 것은 다들 아는 사실이라 여기고 말하건대, 영화 <남영동 1985>는 상영관 자체도 적었다.

 

다들 어느 정도는 알 거다. 우리도 모르게 개봉했다가 반짝 사라지는 이런 식의 영화들이 많다는 것. 독립영화가 아닌, CGV나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같은 대형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인데도. 하기야, 대형 영화관에서도 하루에 1~2 타임 정도밖에 상영을 안 해서 큰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은.

 

그동안 다른 영화에서 고문당하는 장면을 일제 강점기부터 근현대까지 다양하게 봐왔는데 <남영동 1985>는 갖가지 고문 방법에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있다는 점이 다르다. 제일 약한, 구타부터 시작된다. 고문 전이다. 그러다 형사들 사이에서 ‘의사’라고 칭하는 고문자가 등장하면서 고문이 시작된다. 왼쪽 포스터에 나와 있는 이른바 ‘칠성대’인 곳에 김근태 씨를 눕힌다. 물고문, 전기 고문, 목줄을 채워서 다리 사이로 기어 다니게 하기, 발로 밥을 비벼서 먹게 하기, 관절(날개뼈) 꺾기, 고춧가루 물고문, 볼펜 고문 등등 자신이 개발했다던 온갖 고문을 한다. 몇 가지 보충 설명을 하자면, 전기 고문 중엔 남자 고환에 전기를 주는 것도 있다. 해당 역의 배우가 성기 노출도 마다하지 않아서 더 리얼하게 표현됐다. 또한, 고문자는 물고문과 전기 고문을 할 때 사람이 딱 죽지 않을 정도의 시간을 알고 있다고 하면서 그 시간을 꽉 채워 고문했다. 마지막으로 볼펜은 제일 극악무도한 고문인데, 남자의 요도에 볼펜을 끼워 넣기도 했다.

 

이런 걸 왜 봐야 하냐고 물을 수 있다. 답한다면, “사람이니까.” 흑백논리로 ‘안 보면 사람이 아니라는 거야, 뭐야?” 란 생각은 말아주길. 고문하는 중에 나오는 형사와 고문자의 태도나 대사들, 그리고 고문을 받을수록 변해가는 ’김근태‘ 씨의 정신 변화들이 우리에게 호소하는 점이 많다. 무엇을 호소하느냐? 내가 볼 땐, 이 목적어가 <남영동 1985>의 기억 저장 버튼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슬퍼서가 아니라 가슴이 아파서, 저릿해서, 움찔해서 기억하기 싫을 것이다. 한 기억을 떠올리면 내가 봤던 영화 속 모든 게 우르르 다 떠오르게 되는데 이게 감당이 안 될 테니까. 거의 실제로 있었던 일들이기에, 너무 무거워서 아직은 내가 들 (감당 할) 힘이 부족하다.

 

마지막으로, 영화 끝부분에 나온 실제 인물들의 인터뷰 영상들을 모아 놓은 장면은, 아- 지금도 기억하기가 싫을 만큼 아니, 무서울 만큼 너무 리얼했다. 수십 년이 지나고서야 한 인터뷰인데도 그들은 너무나 뚜렷이 이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다. 잊는 게 불가능한 사건이지만, 그래도 마치 어제 일처럼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으니 아직도 고통 속에서 살고 계신 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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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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