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착한 아이 증후군 [사람]

글 입력 2020.06.28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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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지인들은 나를 착한 사람이라고 한다. 예전엔 그 말이 칭찬으로 다가왔지만 지금은 아니다. 착하다는 건 대체 무엇일까 싶기도 하고 ‘내가 언제까지 착해야 하나’같은 조금 아니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과연 난 언제부터 착한 사람이었나.

 

‘착한 아이 증후군’. 또는 ‘착한 사람 증후군’으로 불리는 단어가 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착한 사람으로 남기 위해 욕구나 소망을 억압하면서 지나치게 노력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 주위 사람들, 즉 인간관계에서 난 무조건 착한 사람을 자처하곤 한다. 누구에게도 버림받고 싶지 않은 욕망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남과의 관계에서 눈치를 보게 되었던 첫 시작이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초등학교 때까진 별명이 ‘고집불통’이었는데, 아마도 자라나면서 자연스럽게 안 것 같다. 내 의견만 주장하면 사람들이 날 싫어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들어주어야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난 착한 사람을 자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쭉 큰 다툼 없이 원만한 인간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다 중학교 때는 착하다는 말이 칭찬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지금 그 일이 일어났다면 별 것도 아닌 일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땐 그렇게 태연하게 넘기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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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 일명 빼빼로 데이 때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서로 친한 사이라면 뺴뺴로를 주고 받곤 했었다. 나도 친구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뺴뺴로를 한 다발 들고 학교에 갔다.

 

평소 짝꿍도 여러 번 하고, 친구들 무리와도 자주 어울려 유독 친했던 남자애 한 명이 있었다. 다른 친구들과 빼빼로를 교환하고 있을 때, 그 애가 내 가방에서 보란 듯이 빼빼로를 하나 빼갔다. 난 웃으며 너도 하나 달라고 했고, 그 아이는 싫다며 무작정 우겼다. 기분이 나빠진 나는 빼뺴로 상자를 잡았고, 가벼운 몸싸움으로 이어졌다.

 

그 때 내가 말했다. “왜 나한테만 이래?” 사실 별로 의미 있는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을 아니었다. 그냥 서운함의 표현이나 투정에 가까웠다. 그 때 그 애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제일 만만하니까.”.

 

그 말을 듣고는 손에 힘이 빠졌다.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축 늘어진 내 손과 내 얼굴을 보고 그 남자애는 당황해서 미안하다며 연신 사과를 했던 것도 같다. 그 날 집에 가서 엉엉 울었다. ‘제일 착하고 좋은 친구다’라는 말은 다 거짓말이었던 건가. 그냥 모두에게 잘 보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사실 만만해서 그랬다니 화가 났다. 그 애한테 화가 난 건지, 스스로에게 화가 난 건지도 알 수 없었다.

 

이후 여러 번 사과를 받았지만, 그 남자애와는 더 이상 친구로 지내기가 어려웠다. 그 아이의 얼굴을 볼 때마다 그 아이가 했던 말이 잊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도 그 기억은 여전히 날 괴롭힌다. 잊은 듯이 살다가도 어느 날 나에게 이유 없는 미움과 화를 내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그 말이 떠오른다. 혹시 착한 사람으로만 보여서, 만만해서 그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나를 갉아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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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라는 게 그렇다. 믿었거나 애정을 줬던 사람이라면 상처 받았을 때 아무 것도 아닌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난 무언가를 바라지 않고 열심히 베풀었는데, 정작 상대방은 그 호의를 즐기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비참하기까지 하다. 조금 무심해지려고 끊임없이 노력해보았으나, 태생이 그런 성향이라 바뀌는 데는 실패했다. 어디 사람이 한 순간에 바뀌는 게 쉬운 일인가.

 

사람의 인간관계는 ‘나’를 중심으로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 나를 싫어하는 사람, 나를 좋아하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나를 모르는 사람을 제외했을 때 내 주변인들이라면 전부 이 분류 안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내가 내 주변 사람들 중 모든 사람을 품을 수 없듯이, 내 주변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치다. 나도 내 주변의 사람들을 내 기준대로 구분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미움 받지 않기를 원하는 건 이기적인 마음일지도 모른다.

 

이제부턴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를 곁에 두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내 부드러운 말투와, 센스 있는 배려, 모나지 않은 성격 때문일 것이라고. 나의 ‘착함’이 긍정적인 매력으로 작용해 날 좋아하게 된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도 나를 만만하고, 쉽게 보는 사람들은 현명하게 피해가기로 했다. 피할 수 없이 공생해야 한다면, 곤란학 부탁 정도는 당당하게 거절도 해 볼 생각이다.

 

나를 상처 주는 사람들은 내 사람들로 두지 않는 게 내가 생각한 스스로 나를 지키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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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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