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하루의 최대치를 살아가는 사람 [사람]

글 입력 2021.03.28 15:30
댓글 1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41.jpg

 

 

최근 정독한 이슬아 작가의 <부지런한 사랑>에선 글의 화자를 이동시키는 경험을 중요하게 다루는 부분이 있다. '내'가 주인공인 글에서 타인의 시선으로 확장하는 과정을 성장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쓴 글의 중심은 모두 나였다. 개인적인 감상에 관한 글이었고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한 글이었다. 자기 이야기를 직접 가공하고 포장한 글은 언제나 조금의 징그러움을 지니고 있다고 작가는 말했다. 징그러운 글은 글쓴이에게 혹독한 평가지만 적절한 단어인 듯했다.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글을 완성한 후에 무표정으로 다시 읽기 힘든 경험은 매번 있었다. 부끄럽고 징그러웠다.


이슬아 작가는 스스로 너무 가엽거나 자랑스러울 때 글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럴 때면 언제나 징그러운 글이 쓰이기 때문이다. 용납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런 글은 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어떤 문장을 읽고 뜨끔해졌다. 조금은 확장해 보기로 한다. 나에게서 벗어나 타인에 대한 글을 써보기로 한다. 징그러운 글은 금방 휘발되거나 날아가 버릴 것만 같다. 오래오래 곱씹어도 무언가가 남아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이동시킬 시선의 주인공으로 단번에 떠오른 대상은 엄마였다. 살면서 가장 오래 같이 시간을 보낸 사람이 엄마이기 때문이다. 말이 통할 정도로 나이를 먹은 딸은 엄마와 진솔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고, 이따금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정면보다 무언갈 하느라 바쁜 옆모습이 먼저 떠오르는 엄마지만 우리는 일정한 시간대를 함께 지냈다. 그 순간을 글로 표현하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느끼지 못한 감정이 느껴질 것만 같았다. 슬아 작가가 어머니를 이름으로 부른 것처럼 여러 역할이 혼재된 인간의 특성 상 나의 엄마는 순이로 부르기로 한다. 순이는 엄마의 이름을 한 글자 바꾼 것이다.

 

 

[크기변환]엄마.jpg

 

 

순이는 늘 바쁘다. 그의 일터에서도, 쉼터에서도. 앉아 있지 않고 자주 할 일을 해낸다. 특히 집 안 다른 구성원보다 하는 일이 많다. 그런 모습은 이제는 익숙하다고 순이는 느꼈다.


그는 아침엔 아내였다가 낮엔 직장인이었고 밤엔 엄마였다. 순이의 하루는 새벽같이 일어나는 남편의 아침밥을 준비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순이는 사실 아침밥을 먹든 안 먹든 상관이 없었다. 잠이 보약인 그는 아침에는 특히 입맛이 없었다. 그의 남편은 달랐다. 밥심으로 사는 남편은 아침에도 고봉밥을 먹을 수 있었다. 순이가 계란 후라이를 하고 국을 데우고 밑반찬을 꺼내 상을 차리면 남편은 자리에 앉아 아침을 먹었다. 창밖은 여전히 캄캄했다.


밥을 다 차리고 나면 잠깐 눈을 붙일 시간이 있었다.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아침 뉴스 소리를 배경 삼아 소파에 누워 눈을 감았다. 담요는 늘 머리끝까지 올려 덮었다. 잠귀가 밝아 깊은 잠에 들진 않지만 눈이라도 붙이지 않으면 오후쯤엔 지칠 게 뻔했다. 간간이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와 앵커의 목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면 집 안은 전보다 조용하고 서늘해진다. 티비 속 익숙한 목소리는 어제와는 다른 날씨를 말해주고 있다. 베란다 바깥에서 차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려온다. 남편은 해가 다 지고 나서야 집에 돌아올 것이다.


순이는 보통 주방 창문에 노란 햇살이 들 때쯤 일어나지만 그보다 늦게 선잠에서 깨기도 했다. 그럴 때면 우선순위에서 먼 행동부터 하나씩 포기해야 했다. 일단은 아침밥을 걸렀고 머리카락을 고데하지 않고 하나로 묶어 스프레이로 고정했다. 준비 시간이 짧아질수록 발걸음 소리는 단단해지고 간격은 좁아졌다. 그렇다 해도 흐트러진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외면이 보여주는 것이 말보다 앞설 때가 있다고 순이는 믿는 사람이었다.


도보 십 분 거리 직장에 도착하면 분주히 고객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순이는 건강 기능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로 돈을 번다.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전에는 많게는 몇십여 명의 사람이 오고 갔다. 그로 인해 몇백 마디 말을 해야 했고 그보다 많은 언어를 들어야 했다. 주 고객인 어르신들은 하고픈 말과 듣고픈 말이 많았다. 들은 말도 잘 잊어버리는 손님들을 위해 순이는 같은 말을 반복해서 크게 하는 법을 익혔다.


사람은 보살핌을 받고 자라 어른이 되고 다시 보살핌을 받는 순서로 나이 들곤 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몸을 치료하고 마음을 치유하는 데 힘을 쓴다. 순이는 고객의 건강을 보살피는 일을 하지만 왠지 마음을 치유하는 일에 더 신경을 써야 했다. 몸은 영양제와 기기가 책임졌지만 고객의 가족사, 개인사, 정치 성향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순이가 다뤄야 할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순이는 맞장구치고 조언하며 고객의 소리에 집중했다. 가끔 손님들의 이야기는 퇴근한 뒤에도 이어졌다. 전화 벨소리를 듣기 위해 순이는 항상 몸 가까이 휴대폰을 둔 채 잠에 들었다.

 

 

엄빠.jpg


 

고된 일이어도 사실 순이는 이 일이 천직이라고 생각했다. 순이는 사람 앞에서 이야기하고 공감을 얻어내는 재주가 있었다. 그는 이전에 미용사로 일했다. 올케언니의 미용실에서 보조업무를 맡으며 매달 월급을 받아 가족들을 먹이고 집세를 냈다.


미용실에 손님이 늘면서 순이는 보조 업무가 아닌 핵심 업무를 맡아야 했다. 제대로 된 일을 하기 위해 그는 미용 학원에 들어가 국가자격증을 취득했다. 미용 일을 관둔다고 할 때 아쉬워하지 않은 사람은 순이 한 명뿐이었다. 자격증을 따기 위해 컴퓨터 책상에 헤어 모형을 건 채 머리를 볶고 자르던 시절을 기억했지만 순이는 손가락 마디가 갈라지는 고통과 다리가 퉁퉁 붓는 매일 밤도 알았다. 그때쯤 남편의 밥벌이도 안정되어 가고 있었다. 잠깐의 안식년을 가진 순이는 본격적으로 말을 하고 손님을 돌보는 일에 뛰어들었다. 그는 고객들이 건네는 신뢰의 눈빛으로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끝이 없을 듯한 말이 잦아들고 해가 저물 쯤이면 순이는 퇴근했다. 서류를 정리하고 불을 끄고 가게 셔터를 내리면 십 분을 걸어 귀가했다.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정리하면서 순이는 집 안을 확인했다. 주방 불이 켜져 있으면 순이는 세탁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했다. 불이 전부 꺼져 있으면 소파 아래에 누워 티비를 튼 채로 선잠을 잤다. 그날은 아무도 순이에게 잘 다녀왔냐고 묻지 않는 날이었다. 한두 시간 깜빡 잠에 들면 현관문 너머 발소리가 들리고 도어락 소리가 들려왔다. 도어락 버튼을 누르는 속도로 순이는 누가 먼저 집에 도착했는지 알 수 있었다. 방정맞게 빠른 소리가 들리면 아들이었고 안정감 있는 속도의 버튼 소리가 들리면 남편이었다. 그러나 대부분 도어락 소리를 듣지 못하고 현관문이 열려서 나는 중문의 울림소리로 잠에서 깼다. 피곤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순이는 저녁과 밤참을 준비했다. 주로 아들에게 차려준 저녁밥이 남으면 남편에게 줄 밤참이 되곤 했다. 그래도 넉넉히 준비하는 성의는 잊지 않았다. 그의 남편은 금요일 말곤 모두 회사에서 저녁을 챙겨 먹지만, 집에 돌아와 안줏거리와 소주 한 병을 먹는 즐거움을 잊지 않는 사람이었다. 실은 순이도 그런 즐거움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컨디션이 따라주지 않는 날도 있었다. 위가 붓거나 속이 답답할 때면 순이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스트레스와 피로가 몸에 티가 나는 체질이었다. 그럴 때면 그의 남편은 홀로 식탁에 앉아 밤참에 어울리는 술을 고른 뒤 잠시 서운해하다가 맛나게 밤참을 먹었다.


간혹 그는 식탁에 앉아 팔짱을 낀 채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순이는 그 모습이 정말 꼴 보기 싫었다. 오자마자 씻고 먹으라고 일렀지만, 그의 남편은 생글생글 웃으며 손발만 씻고는 홀랑 식탁 위에 앉아 술부터 까는 날이 허다했다. 순이는 고개를 저은 후 그 꼴이 안 보이는 쪽으로 돌아누울 뿐이었다.


어둠이 짙어지면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매번 "어디냐"고 묻는 딸에게 당연히 집이지 그걸 매일 묻냐며 웃고는 어디냐고 되물었다. 그때쯤 딸은 집에 가는 길이거나 집이라고 답했다. 몇 차례 대화가 오가지 않아도 순이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오늘 딸이 힘들었는지, 버틸 만 했는지. 딸이 긴 문장으로 말하지 않을 때 그가 울컥하는 마음을 참고 있다는 걸 순이는 알았다.


그럴 때면 순이는 아무도 묻지 않은 이야기보따리를 늘어 놓았다. 오늘은 이런 업무가 있었어. 핸드폰이 맛이 갔어. 알고 보니 이 기종이 오늘 모두 이상했대. 니네 아빠가 또 이상한 걸 주문한 거 있지. 딸의 탄식 같은 웃음소리가 들리면 한숨을 내뱉고는 밥 잘 챙겨 먹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울음이란 단어를 머릿속에서 지우게 만들려는 사람처럼 순이는 애써 밝은 목소리로 정신없이 이야기를 내뱉곤 했다. 여전히 많은 일이 어렵지만, 딸을 다정한 언어로 위로하는 일은 특히 어렵고 가슴 아픈 일이라고 순이는 생각했다.


오늘 하루도 끝자락에 놓인다. 늘 샤워를 마치고 깨끗이 침대에 눕는 순이도 그대로 거실에서 잠에 드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엔 출근하는 모습에서 표정만 바뀐 사람이 되곤 한다. 눈썹 사이 주름이 깊게 패여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얼굴이다. 머릿속 걱정과 고민들이 고요하게 작고 커다래진다. 내일도 별반 다르지 않은 하루가 흘러갈 것이다.

 

순이는 사소한 내일의 순간이 매번 걱정거리지만 어려움을 견디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안다. 모든 일이 내 맘대로 완성되진 않아도 내 선에서 최선을 다하면 시간은 바삐 흘러갈 거란 것을 안다. 남편의 핸드폰 알람이 울리면 부지런한 오늘을 다시 시작한다. 그렇게 순이는 매번 하루의 최대치를 살아가는 사람이다.



[김소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댓글1
  •  
    • 저도 이슬아 작가님의 글을 읽은 뒤로 주어를 타인으로 확장하는 글을 쓰고 싶다고 다짐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에디터님은 멋지게 시도하셨네요. 왠지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지는 글이었습니다. 잘 읽고 가요!
    • 1 0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6.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