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유의 풍경 - 존재와 사유 [도서]

우리는 사유를 통해 존재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확인한다.
글 입력 2021.04.16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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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사유.

 

얼핏 철학적이고 어려워 보이는 제목의 이 책을 읽기로 결심한 이유는, 지금 나는 ‘사유’가 절실히 필요해서다. 물론 생각을 아예 하지 않고 산다는 말은 아니다. 문제는 요즘 내가 하는 생각들이 질은 얕고 양은 많은 식이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면 의자에 몸을 뉘고 깊은 생각에 젖기보다는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수백 개의 정보를 처리한다. “오늘은 무엇을 하고 그다음엔 이것을 해야지.”, “이것은 이러하고 그래서 이렇게 흘러가는군.”.. 머릿속에선 수십 개의 계획과 정보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행동은 부산하다. 분명 무언가를 많이 하는 듯 바쁘고 부지런해 보이지만, 이상하게 남는 것이 없고 마음은 공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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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내가 이렇게 바쁜 원인, 내가 살아가는 궁극적인 목표, 즉 존재의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지. 나는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목적과 방향성 없이 사는 인생은 태평양 한가운데서 열심히 노를 젓지만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딱 그 꼴임을 부인할 수가 없었다. 잠시 멈춰 깊은 사유를 해보자.


이러한 고민은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지 않을까? 다들 무척 바쁘고 화려하며 만족스러운 인생을 사는 것 같은 ‘이미지’다. 하지만 뉴스와 온라인상에선 비상식적인 행위와 가치관이 난무하고, 사람들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정신적으로는 후퇴하고 있다. 상식과 비상식에 대한 기준이 사라졌고 분별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혼돈의 시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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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균 저자의 <존재와 사유>는 이 의문에 철학적이고 학문적인 지식을 전수할 것 같은 제목을 하고 있지만 실은 아주아주 의외의 방식을 취한다. 이 책은 철학서나 정보 지식서가 아니다. 이 책은 에세이, 그것도 문학에 가까울 만큼 인류애와 감성으로 가득 찬 에세이다. 하지만 감성과 객관성의 균형을 잘 맞추어 독자에게 ‘명확한 메시지’가 ‘스며들게’ 한다.

 

 
“사유가 나이며 존재의 힘이다. 사유하는 일상을 찬찬히 보면 새벽 별 같은 반짝임이 있고 삶을 긍정하는 손길이 머문다. 화려하지 않아도 삶의 힘을 길러내야 할 마르지 않는 우물은 일상의 사유가 아닐까?”
 

 

프롤로그의 문을 여는 이 첫 문장은 책의 성격과 핵심 메시지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존재로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유의 중요성을 설명하는데, 아름다운 비유를 들어 잔잔하지만 묵직한 설득을 던진다.


작가는 우리의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을 깊이 사유하고 개인적인 감상을 풀어낸다. 그의 개인적인 시선과 에피소드지만 문학적인 문체를 통해 공감과 감동이 마음속에 녹아든다. 그의 깊은 사유를 통해 읽는 독자 역시 사유의 힘과 기쁨을 깨닫는다. 잔잔하지만 힘이 있는 설명법이다.


이 책은 총 5개의 핵심 주제에 얽힌 여러 가지 ‘사유’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배려, 시선, 인식, 연결, 시간. 각각의 주제마다 글의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가령, ‘배려’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1부인 ‘배려’에서는 주로 사람과의 관계와 사랑의 시선을 담는다. 2부인 ‘시선’은 작가가 주로 바라보는 자연의 풍광과 사물의 움직임을 묘사와 비유를 이용해 풀어낸다. 3부인 ‘인식’은 우리가 사는 사회에 대한 고찰과 모색 방안을 객관적으로 말하는 식이다.


저자의 뛰어난 공감과 깊은 사유의 능력으로, 남다른 그의 시선을 따라간다. 그의 사유는 내면의 파동을 일으키고 그의 깨달음은 내면과의 속 깊은 대화를 통해 삶의 원동력이 된다. 저자 스스로 자신의 삶이 풍요롭다고 밝힌 비법이다.


인상적인 것은 그 내면의 힘이 자신에게만 쏠리고 나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떠나, 우리가 사는 이 사회와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연결’되고 그 연결은 선한 ‘확장’이 된다는 말이었다. 나만의 행복, 나만의 지식, 나만의 풍요와 물질을 추구하는 요즘의 가치관을 역행하는 삶의 흐름이다. 그의 에피소드를 다 소개할 수는 없으니, 특별히 내 마음에 들었던 문장과 이야기 몇 편을 꼽아보려고 한다.

 

 


1. 경계를 경계할 일이다.


 

 

“인간다움은 무엇일까? 탐욕에 지배당하지 않겠다는 나만의 의지다. 모든 것을 가지고 있어 보이지만 공허하고 화려해 보이지만 불행한 사람이 늘어가는 이유는 마음의 균형이 깨어진 것이리라. 집착과 생각의 편협함을 벗고 주위와 어울려 지내는 것의 가치를 회복할 일이다. 혼자서만 살 수 없고 수많은 연결 속에 삶이 있다.”

 

 

작년에 단기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에서 알게 된 사람이 있었다.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매가 매서웠고 말투와 목소리가 어딘지 사납게 느껴져 첫인상을 좋게 느끼지 못했다. 나 역시 단기로 몇 달만 일하는 곳인데 굳이 그 사람과 좋게 지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마음속 편견은 점점 더 견고한 성이 되었고 나의 개인적인 추측은 어느새 그 사람의 이미지로 굳어졌다. 그렇게 두 달간의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약 일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그 사람은 의외로 알면 알수록 괜찮은 사람이었다. 우리는 관심사와 취향이 비슷했고, 무의식적인 행동에는 매너가 베어 있었으며 배울 점들을 계속 발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좋은 사람을 모르고 지나칠 뻔하다니! 나의 교만함이 경계선을 만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경계를 경계해야 한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우리는 수많은 연결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지만 어느 순간부터 개인의 고독과 이익이 미덕이 되는 시대를 살게 되었다. 가까움 속의 온기를 경계하고 침입자로 여긴다. 경계를 경계하라. 수많은 연결 속에 삶이 있다. 경계를 무너뜨리고 연결을 통해 새로운 인연을 맞이했다. 삶의 소중한 일부를 창조했고, 일상의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이 일어남을 경험했다.

 

 

 

2. 시공을 초월한 공감 풍경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일어난 일도 공감을 통하면 바로 내 일이 되고 같이 아파하고 슬퍼할 수 있다. 시공에 구애받지 않는 공감, 그것은 신비롭고 대단한 능력이다. 우리의 공감은 건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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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유명 앵커가 진행하는 라디오 뉴스를 종종 찾아 듣곤 한다. 앵커의 허를 찌르는 질문이나 듣기 좋은 목소리 톤, 논점을 정확히 파악해 청취자들에게 요약하는 지적임까지.. 과연 대한민국 대표 앵커 중 하나로 손꼽힐 만한 진행 실력이었다.


하지만 유난히 그 앵커를 찾게 되는 이유는, 그의 공감 어린 목소리 때문이었다. 안타깝고 황당한 뉴스가 난무하는 가운데에, 사건사고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 깊이 우러나오는 탄식과 아파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 아픈 사연과 소식에 몰입하게 했다. 대본대로 하는 형식적인 리액션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슬픔을 겪는 사람들에 공감하고 그 진심이 목소리를 통해 전달받는다. 강한 공감 능력을 갖고 있는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은 다 함께 귀 기울이게 된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 앵커를 신뢰하고 이끌리는 이유에서 일 것이다.

  

그 앵커가 내는 공감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나의 공감은 건강히 잘 지내고 있는가?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무시하고 배척하는 일은 없는가? 인간다움에 필수적인 이 공감 능력이 희미해지는 순간부터 이 세상은 불행한 사람들로만 가득 찰 것이다. 인간다움은 곧 타인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한 뛰어난 공감능력으로 가능해진다. 

 

*

 

철학서를 기대했지만 예상치 못한 에세이를 만났고 계획에 없던 일상의 사유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떠나면서 알았지만 가치를 몰라봤던 것들, 이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것들을 하나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사유를 통해 길가에 핀 아름다운 들꽃으로 시선을 오래 붙잡아 둔다. 그리고 천천히 질문한다. 나의 인생은, 삶의 방향은 똑바르게 잘 가고 있는가? 주변 이들에게 사랑을 토대로 배려하며 지내고 있는가? 노을처럼 아름답고 잔잔한 사유를 천천히 곱씹는다.


책은 각 장마다의 성격별로 잘 분류가 되어 있고 저마다의 매력이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비유와 묘사가 많은 글은 읽기 힘들어하는 편인데, 그런 나에게 2부인 ‘시선’ 장보다는 메시지가 명확하고 공감을 많이 느꼈던 ‘인식’장이 더 반복적으로 읽혔다. 하지만 모든 에피소드와 주제가 풍성하게 꽉 찬 이야기로 담겨있다고 말하고 싶다. 개인의 선호도에 따라 선택적 읽기에도 좋고, 혹은 취향이 아닌 주제는 일부러 더 찾아 읽어보는 것도 추천한다. 때론 가본 적 없는 생소한 길에서 발견하는 여행의 묘미가 있지 않은가.

 

 

[백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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