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따뜻하고 친절한 SF를 소개합니다, 다섯 번째 감각 [도서]

글 입력 2022.03.05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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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감각_앞표지.jpg


 

 

Prologue.


 

SF 소설은 나에게 조금 불친절한 장르였다. 이과 출신이 아닌 탓도 있겠으나, 배경 지식이 있어야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장르라는 생각이 들어서 지레 겁먹게 되었다. 그렇지만 간간이 생각나면 꼭 다시 꺼내보게 되는 게 묘한 매력이 있어서, 서점 코너에 가면 한번씩 들여다보곤 했다.

 

그건 아마 현실과는 다른 법칙과 논리로 설정된 세계관에서 움직이는 인물들, 그들 간의 갈등을 보고 있자면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는 어떤 모습을 하든 비슷한 양상을 띠게 되는 게 신기해서였던 것 같다.

 

인간의 변하지 않는 본질을 다양한 모습의 사회에서 발견하는 묘미가 꾸준히 SF 장르를 찾아 읽게 했다.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 다소 생소했지만, 김보경 작가의 작품들은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설렘을 안고 또 한 번의 SF 물 도장깨기를 시도해보았다.

 

*

 

한국 SF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전미도서상 후보에 오른

김보영 초기 걸작 10편을 드디어 다시 만난다!


오래도록 한국의 SF에는 김보영이 빛나고 있었다


2010년 김보영의 소설집 《멀리 가는 이야기》와 《진화신화》가 처음 나왔을 때, 소설가 박민규는 다음과 같이 썼다. “여왕의 등극이다. 김보영의 작품들이 언젠가 한국 SF의 ‘종의 기원’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로부터 10년 뒤, 김보영은 한국 SF 작가로서는 최초로 미국 최대 출판사 하퍼 콜린스에서 영문 단편집을 출간했고, 또 다른 영문 단편집으로는 전미 도서상 후보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었다.


《멀리 가는 이야기》와 《진화신화》를 두고 여러 SF 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한국 SF 사에서 전설로 남을 것”이라고 평했고, 그 예언은 모두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지만 두 책은 안타깝게도 절판되어 서점에서 구할 수 없다. 반갑게도 수록작 중 〈미래로 가는 사람들〉을 비롯해 몇 편이 재출간되어 독자들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여전히 실질적인 의미에서 “한국 SF의 기원”으로 일컬어질 작품들을 독자들이 쉽게 만나보기 어렵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불행이 아닐 수 없다.


12년 만에 복간되는 김보영 소설집 《다섯 번째 감각》에는 《멀리 가는 이야기》와 《진화신화》 중 따로 출간된 〈미래로 가는 사람들〉 연작과, 후속편을 집필해 장편으로 준비 중인 〈종의 기원〉 연작, 그래픽 노블로 나오게 될 〈진화신화〉, 그리고 《얼마나 닮았는가》에 수록된 〈0과 1 사이〉를 제외한 모든 작품이 수록되었다. 데뷔작이자 제1회 과학기술 창작문예 대상을 받은 〈촉각의 경험〉에서부터 한국 SF 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 중 하나로 기록될 〈지구의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다〉까지, 오래도록 한국의 SF에서 빛나고 있었던 김보영의 초기 걸작들을 다시 만나보자.




따뜻하고 오묘한 세계관


 

작품의 세계관에는 저마다의 온도와 색이 있다. 이 작가가 창조한 세계들에는 따뜻함과 오묘한 빛깔이 스며 있었다.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 강하고 자극적인 요소를 일부러 강하게 넣지 않아 담백했고 잔잔한 여운이 마음에 배었다.


담백함의 원천은 자신의 운명과 속한 세계에 대항하여 주인공이 맞이하게 되는 내적인 형태의 갈등이었다. 타인을 해치거나 세계의 존속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흡입력이 있는 갈등이었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그들의 고민과 현대사회와 닮아있는 배경 설정이 계속해서 이야기에 집중하게 했다.

 

예를 들면, '다섯 번째 감각'에서는 청각이 없는 세계에사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다룬다. 오직 시각으로 정보가 전달되고 처리되는 체계에서 청각은 이단이나 사이비에서 만들어낸 환상으로 치부된다. 청각이라는 능력은 개개인마다 다르게 나타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능력을 억압하려는 지배 세력과,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다수에 의해 위험한 것으로 여겨진다. 주인공은 이 능력을 부정하고 두려워하지만, 끝내 언니로부터 오랫동안 각인된 '노래'로 인해 사람들과 청각으로써 즐거움을 나누게 된다.

 

잃어버렸던 감각을 깨우며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간다는  내용이 희망적이면서도, 왜곡된 정보로 사람들의 눈과 귀를 종종 흐리는 지금의 사회와 대입해 보았을 때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한 메시지라 더 와닿았다. 무엇보다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면서도 파멸이나 전쟁 없이 자유와 희망을 이야기하는 전개가 드물기에 오묘함과 반가움이 마음에 일었다.


 

 

아는 맛 + 상상력 = 감칠 맛



현실 세계에서 약간의 비틀음을 통해 익숙함과 생소함을 동시에 전달한다는 것도 이 작가의 특징 중 하나이다.

 

우리는 보통 반복적이고 익숙한 것에서 일상성을 느끼는데, 작가는 시공간 혹은 감각 등 세계를 구성하는 것 중 하나를 뒤집어 설정하고선 인물들을 무대로 투입시켜 비일상을 보여준다. 작가의 모든 작품을 만나보지 않아 짧은 식견일 수 있으나 적어도 이 단편집에서는 그러하다고 느꼈다.

 

 

김보영의 월드 빌딩은 익숙한 장르 공식을 답습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 개안의 과정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모든 익숙한 것들은 그 여정을 통해 낯설어지고 성, 음악. 문명, 생물학적 조건은 이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그렇다. 세상은 원래부터 기괴하고 무섭고 아름답고 당황스러웠다. 그동안 우리는 두꺼운 습관의 담요를 뒤집어 쓰고 이를 무시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김보영의 단편들을 읽는 것은 그 담요를 은근슬쩍 떨구는 과정이다. (듀나, 소설가)

 

- 출판사 서평 중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땅 밑에'에서는 인간이 끝없이 오르는 산을 땅 밑으로 뒤집어 지하를 탐사하는 하강자들의 이야기를, '우수한 유전자'에서는 21세기 말의 세상에서 유전자마저 양극화된 사회를, '마지막 늑대'에서는 인간이 다른 종의 지배를 받는 사회를 그린다.

 

첫 시작은 우리가 아는 현실 세계 같다가, 비틀어져 있는 요소를 점차 독자가 발견하며 새롭다고 느끼다가, 어느 순간엔 지금의 우리와 같은 욕망을 지닌 인물을 보며 공감하고 몰입하는 식이다. 크게 어려운 배경 지식 없이도 익숙함에서 출발하도록 설정된 이야기의 흐름 때문에 별다른 장벽 없이 훌훌 글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하나하나의 장면을 묘사함에 있어 상상력을 이야기의 완결까지 잃지 않고 가져간다. 영화 한 편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 정성스럽게 독자의 마음에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담아주기까지 한다. SF물을 읽으며 이렇게 구체적으로 흐름을 이해하고 친절함을 느낀 건 처음이라, 모든 단편을 끝까지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더 이상 작품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이쯤에서 글을 마칠까 한다. 개인적으로 느꼈던 좋은 점에 대해 주절거리고 나니, 이 글을 읽고 작품을 접한 사람들이 나와 다르게 '그게 꼭 좋다고 할 수 있나?' 혹은 '그런 점은 더 별로더라'라고 할까 걱정도 된다.

 

하지만 그런 다양한 감상이야말로 작품을 더 풍부하게 이해하고 곱씹어보게 하는 긍정적인 과정이라 생각하며, 이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들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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