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는 그림이 생긴다는 것 - 365일 모든 순간의 미술 [도서]

꽃을 보고자 하는 사람에겐 어디에나 꽃이 피어있다.
글 입력 2022.03.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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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간 프랑스 파리에서 살았었다. 미술에 조예가 깊거나 그림에 큰 흥미가 있던 것은 아니지만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부지런히 여러 미술관에 방문했다. 그렇게 나는 ‘미술 감상’이라는 것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여행에 비해 시간적 여유가 많았기 때문에 미술관에서 하루를 다 보낸 적도 있고, 같은 미술관을 여러 번 방문하기도 했다. 다양한 미술관에서 많은 작품들을 봤지만 가장 커다란 울림을 주었던 것은 ‘아는 그림을 마주쳤을 때’였다. 고흐의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이나 모네의 <수련> 등 한 번이라도 본 적 있는 그림을 실제로 마주하는 순간 참을 수 없이 심장이 쿵쿵거렸다.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고, 그림에 더 관심이 갔다. 그때 깨달았다. 아는 그림이 있다는 것은 내 생각보다 훨씬 근사하고 기쁜 일이라는 것을, 좋아하는 연예인을 실제로 봤을 때의 떨림이 그림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말이다.


깊은 역사를 가진 미술관에서, 수많은 미술 작품 앞에 서 있다 돌아오면 마음이 채워지기도 했지만 어딘가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작품이나 미술관에 대한 아쉬움이 아닌, 예술 작품들을 잘 모르는 나 자신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그냥 지나친 그림들도 원래 알던 그림이었다면 더 마음이 갔을 것이라 생각하니 아까웠다. 아는 그림을 더 많이 마주치고 싶다는 욕구가 들끓었다. 다음번에 올 때는 아는 그림을 아주 많이 마음속에 품고 오겠노라 다짐했다.

 

그러던 중 이 모든 고민과 아쉬움을 해결해 줄 책을 만났다. 365개의 그림을 만날 수 있는 책. 미술 에세이스트 김영숙의 신작, <365 모든 순간의 미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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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그림이 있다는 것


 

<365 모든 순간의 미술>을 처음 펼치자마자 놀랐다. 수록된 그림이 아주 크고 글이 적었기 때문이다.

 

그림에 대한 해석과 분석이 길게 적힌 미술책들과 달리 이 책은 그림이 페이지 가득 차 있다. 이 책은 그림에 대해 공부하는 책이 아니라 그림과 만나는 책이라고 느껴졌다.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세상에 있는 그림들을 소개받는 느낌이 드는데, 그 이유는 비단 그림의 크기뿐만이 아니다.

  

우선 작가의 짧은 설명이 작품을 감상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작가의 특징, 시대적 배경 등 외재적인 분석보다도 작품 전체적 상황이나 간단한 지식을 제공함으로써 감상의 '맛'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대표적으로 <존 브라운의 마지막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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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브라운의 마지막 순간>, 토머스 호벤든

 

 

결박당한 채 계단을 내려오는 남자는 존 브라운. 그는 노예 제도 폐지를 주장했고, 정부 무기고를 습격하여 흑인 노예들의 봉기를 주도하려 한 죄로 체포된 영웅이다. 이 그림을 그린 호벤든은 기차가 오는 것도 모르고 철길 위에서 놀던 한 소녀를 구하려고 뛰어들었다가 사망했다. 영웅이 영웅을 그렸던 셈이다.

 

- 350p, <존 브라운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설명

 

  

인물의 배치, 색감 등의 미술학적인 설명보다도 '영웅이 영웅을 그렸던 셈이다' 같은 여운이 남는 문장으로 감성을 자극한다. 이러한 문장으로 작품을 분석할 수는 없지만 작품과 가까워질 수 있다. 실제로도 설명을 읽기 전과 후 그림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이처럼 가벼우면서도 감상의 맛을 더하는 설명은 이 책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 포인트이다.

 

이 책의 또 다른 다정한 점은 책의 맨 뒤에 인덱스가 있다는 것이다. 1일차부터 365일차까지는 '아름다움, 설렘, 영감' 등의 주제별로 배치되어 있지만 작가별, 제목별, 나라/미술관별로 보고 싶은 이들을 위해 한 번 더 정리해둔 것이다. 덕분에 눈에 들어오는 작가가 있을 때 인덱스를 통해 해당 작가의 작품을 쭉 볼 수 있다. 나라와 미술관도 마찬가지다. 나는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을 추억하며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작품별로 찾아보았다.

 

이러한 구성들은 그림과 조금 더 쉽고 편하게 만나도록 도와준다. 그리하여 이 책을 끝까지 읽으면 아는 그림이 365가지나 생긴다. 앞으로 미술관에서 심장 뛸 일이 365번 생겼다는 뜻이다.

 


 

좋아하는 그림이 있다는 것


 

아래의 대화는 파리 교환학생 시절, 빈센트 반 고흐가 살았던 마을에 다녀온 날 엄마와 주고받은 메시지다.

 

 

엄마: 반 고흐네 놀러 갔어?

나: 응. 근데 고흐가 친구야? 놀러 가게?

엄마: ㅎㅎ좋아하면 친한 거지.

 

 

엄마는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했다. 그런 식으로 생각했던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좋아하면 친한 거다. 좋아하는 작가와 그림이 있다는 것은 마음속에 친구가 있다는 것이다. 친한 작가, 친한 거리, 친한 미술관, 친한 작품들을 많이 사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365 모든 순간의 미술>은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장이다. 이 책을 읽으면 내가 어떤 그림을 좋아하는지, 어떤 작가의 어떤 화풍을 선호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다양한 종류의 그림을 보다 보면 더 눈이 가는 그림과, 색감과, 기법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껏 유명한 작가들의 유명한 작품들만 남들 따라 좋아하기만 했었는데, 처음으로 나의 그림 취향을 알게 되었다. 처음 보는 작가들의 수많은 그림들 중 내 취향의 그림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채워진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기분이 든다.

 

마음에 드는 그림의 페이지를 접으며 읽었다. 모아두고 보니 내 그림 취향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나의 취향 컬렉션을 소개한다. <365 모든 순간의 미술>에서 만난 나의 새 친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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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배>, 에밀 클라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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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르강에 내리는 비>, 귀스타브 카유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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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과 금빛>, 헨리 스콧 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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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마티아스 알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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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 윈즐러 호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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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이 우거진 6월>, 헨리 스콧 튜크

 

 

모아보니 '끼리끼리'라는 말이 떠올랐다. 웃음이 나올 정도로 내 그림 취향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나는 주로 나무와 물, 푸른빛을 그린 풍경화에 마음을 뺏긴다. 또 풍경만 있는 그림보다는 그 속에 자연스레 사람이 스며있는 그림을 선호한다. 이렇게 알지도 못했던 나의 그림 취향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특히 에밀 클라우스와 헨리 스콧 튜크의 화풍을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작가 친구가 둘이나 생긴 것이다.

 

"꽃을 보고자 하는 사람에겐 어디에나 꽃이 피어있다."

 

이 책에 수록된 앙리 마티스의 말이다. 꽃을 보고자 하는 사람에겐 어디에나 꽃이 피어있다. 그림과 만나고자 하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나 그림을 만날 수 있다. 다가오는 봄, <365 모든 순간의 미술>을 통해 미술을 만나고, 나아가 몇 점 마음에 품어보는 것은 어떨까.

 

아는 그림과 좋아하는 그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꽃은 어디에나 피어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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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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