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의 느낌을 믿어요 [문화 전반]

글 입력 2022.09.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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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어느 날 지하철을 기다리던 중 한 광고 영상이 내 눈에 띄었다. 평소라면 지하철 광고보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내적 바운스를 즐겼겠지만, 다양한 매력의 젊은 여자 배우들이 연기를 하고 있었고 단편영화를 보는 듯한 영상미에 자연스레 궁금증이 일었다.

 

오고 가는 대화와 작은 효과음까지 자막으로 알려주는 친절함 덕분에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 광고인지는 금세 파악할 수 있었다. 나는 신나는 노랫소리 대신 이 영상의 음성을 듣기 위해 곧바로 유튜브에 이 광고의 제목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

첨부한 광고 영상 두 편과 글을

순차적으로 향유해 주시길 바랍니다.

 

 

 

은하와 은하




 

 

반복되는 전화 와 장문의 sns 메시지는 은하(차희재)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이런 순간이 처음이 아닌듯한 메시지 내용과 함께 어찌할 바 모르는 은하에게 한 통의 전화가 또다시 걸려온다. 애인의 전화를 줄곧 피하던 모습과 달리 기다렸던 전화인 듯 다급하게 의문의 상대와 통화를 하기 시작하는 은하.

 

- 있잖아. 걔가 날 너무 사랑해서 그런 거 아닐까?

- 근데 너 지금 걔를 두려워하고 있잖아.

 

애인을 두려워하면서도 이해해 보려고 하는 은하에게 의문의 상대는 이 상황을 조금 더 뚜렷하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건넨다.

 

- 네 느낌을 믿어. 네가 잘못됐다고 느끼는 일은 잘못된 게 맞으니까.

 

어두운 집안에서 지치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은하와 달리 맑고 푸른 하늘 아래 편안한 미소를 머금은 의문의 발신인의 모습이 드러난다. 넌 앞으로 잘 지낼 거라며 은하의 미래를 장담하는 확신에 찬 목소리는 바로 은하 자신이다.

 

둘 중에 무엇이 현재인지 알 수 없으나 이것만은 확실하다. 은하가 이 상황을 이겨내고 살아남으리라는 것, 과거의 자신에게 힘을 주는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말이다.

 

 

 

은하, 지수, 수정, 선영 그리고 혜원




 

 

- 와, 미친..

 

2편은 지수(호솔희)의 욕과 함께 시작한다. 지수가 보고 있는 단톡방이 욕의 원인 제공임이 틀림없었고 내용을 읽은 나도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대학 동기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단톡 대화 내용은 혜원(주인영)과 민혁의 데이트 폭력과 관련한 뒷얘기였고 피해자인 혜원에게 비난의 화살을 날리고 있었다. 분노의 타자로 이 상황을 바로잡으려던 지수는 두 친구의 탑승으로 인해 잠시 멈추게 된다.

 

그놈 얼굴에 던질 거라며 계란 2판, 즉 60알의 계란과 함께 탑승한 수정(박민선)과 그놈을 죽일 거라며 이민 가방 가득 각종 무기들을 챙겨온 선영(박지안)이 등장하고 두 사람을 태운 자동차는 다시 출발한다. 분명 혜원의 편에 서 그놈에 대한 분노가 가득한 세 사람이지만 이어진 대화 내용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익숙한 듯 불편하게 만든다.

 

- 근데 생각해보면 혜원이도 또 너무 답답해. 아니, 왜 그딴 놈이랑 사귀고 있는 거야?

- 아니, 왜 아직도 안 헤어지고 있는 건데?

- 내 말이!

- 그니까. 평소에 똑 부러진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이게 뭐야? 바보같이.

 

다양한 폭력의 형태 속 피해자를 향한 이야기 중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이다. 피해자를 걱정해서, 답답한 마음에, 너무 속상해서 등 여러 변명을 늘어놓지만 결국 이 모든 이야기는 명백한 비난에 불과하다. 가해자로부터 당한 폭력의 원인과 책임을 피해자에게 씌우는 언행은 우리 사회에서 예나 지금이나 끊임없이 존재해왔고 쉽게 남발되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이 비난의 화살을 중단시키는 은하의 대사는 이 영상의 궁극적인 메시지가 된다.

 

- 너희들 이따 혜원이한테도 정말 그렇게 말할 거야? 너희들이 말하는 거 전부 혜원이가 생각 안 해봤을까? 우리 이따 혜원이 만나면 아무 소리 말고 그냥 혜원이 얘기 먼저 듣자.

 

자신들이 내뱉은 말에 대한 세 친구의 후회와 부끄러움만이 차 안을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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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해는 저물어 가고 어느새 조수석에는 혜원이 앉아 있다. 고요한 차 안에서 지친 듯 담담한 듯한 혜원의 표정이 눈에 띈다.

 

뭐하고 싶냐는 질문에 어디든 가주라는 혜원의 대답과 함께 어딘가로 향하는 자동차는 한밤이 되어서야 육교에 도달한다. 육교로 달려온 다섯 친구들은 혜원의 큰 고함 소리를 필두로 너도 나도 할 거 없이 고함을 지르기 시작한다.

 

- 다들 오늘 시간 괜찮아? 나 하고 싶은 얘기가 정말 많거든.

 

숨이 턱 끝까지 차서 토해내듯 말하는 혜원의 모습은 꼭 서럽게 우는 아이 같았다. 그런 혜원을 위해 모인 친구들의 뒷모습은 어느 순간 모두 연결되어 다 같이 웃는 모습을 만들어 낸다.

 

이야기를 한다는 것 그리고 듣는다는 것, 모두 큰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용기로 이뤄낸 이 순간들을 조심스럽게 하지만 단단하게 붙잡아주는 누군가가 더 많아지기를 그리고 말해주기를 바란다. 당신의 느낌을 믿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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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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