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제2의 선수, 관중 [운동/건강]

관중에게는 힘이 있다
글 입력 2022.12.09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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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3일부터 4일까지 의정부 실내빙상장에서 전국 남녀 피겨스케이팅 회장 배 랭킹대회가 열렸다. 랭킹대회가 관중석을 개방한 것은 2019년 이후 처음, 그러니까 3년 만이다. 직접 관람이 오랜만에 풀린 탓에 매우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빙상장의 객석이 모자라 서서 관람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선수들의 경기력은 전반적으로 좋은 편이었다. 여자 싱글, 남자 싱글 상위권에 랭크된 선수들 대부분이 평소보다 준수하게 경기를 이끌어간다고 느껴졌다. 오랜만에 만난 국내 관중들에게 클린 연기를 보여주고 싶은 선수들의 의지가 느껴졌다. 많은 선수가 인상 깊은 경기 내용을 보여줬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김민채(16, 신정고)였다.


김민채 선수는 이번 시즌 쇼트에 뮤지컬 미스 사이공 OST를, 프리에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OST를 선곡했다. 앞서 두 번의 주니어 그랑프리와 데니스 텐 메모리얼 챌린지, 아이스 챌린지에 출전했는데, 가진 잠재력에 비해 만족할 만한 수행을 보여주지 못해 고전하는 시즌을 보냈다. 실수가 반복되며 선수가 위축되지는 않을까 팬들의 염려가 컸다.

 

그래서일까, 이번 랭킹 대회에 김민채 선수가 입장하자 관중석에서는 뜨거운 응원과 함성이 터져 나왔다. 여자 싱글 선수 중 가장 많은 응원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쇼트 프로그램 / 피겨 경기 기록 유튜브 채널 'JewelskatersCross')

 

(프리 프로그램 / 피겨 경기 기록 유튜브 채널 'JewelskatersCross')

 

 

김민채 선수는 쇼트와 프리 모두 실수 없이 경기를 마쳤다. 쇼트 프리 합산 198.03점, 최종 순위는 6위. 선수는 쇼트를 마치고는 입가를 가리고 조용히 눈물을 훔쳤고, 프리를 마치고는 주먹을 불끈 쥐며 울음을 터트렸다. 관중들도 같이 눈물을 흘렸다. 선수가 겪어온 역경과 그 순간의 벅찬 감정에 동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경기장에서 관중이 선수에게 주는 힘을 느꼈다. 함께 음악에 감화되어 오롯이 선수에게만 집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기술 요소를 마칠 때마다 쏟아지는 박수와 함성이 있다는 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실제로 운동선수들이 홈그라운드에서 관중들의 응원을 받으며 경기를 뛸 때 테스토스테론이 40에서 70% 정도까지 증가해 순발력과 체력을 향상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 감독을 맡은 히딩크 감독이 붉은악마 단장에게 ‘심판에게 압박이 될 만큼 야유를 하라’고 지시한 것도 이제는 꽤 유명한 이야기가 됐다.


이렇게 관중이 경기에 간접적으로 개입하는 모습은 연극과도 꽤 닮았는데, 마블 시리즈의 ‘로키’ 역으로 유명한 톰 히들스턴은 연극 <배신(Betrayal)>의 배우로 참여하며 “<배신>은 블랙 유머가 많은 공연인데 어떤 날은 관객이 웃음보를 터트리고, 다른 날은 객석이 그저 조용하다. 그런 사소한 것들이 같은 대본 안에서도 새로운 경험을 하게 만든다”고 인터뷰했다.

 

마찬가지로, 스포츠 경기장에서의 관중은 제4의 벽을 넘어 선수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수 있다. 연극에서 관객이 제3의 배우가 되듯 관중은 제2의 선수로 경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김민채 선수는 경기를 마친 후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추운 링크에서 끝까지 응원 너무 감사합니다. 응원 덕분에 더욱 용기가 났고 자신 있게 보여드린 것 같아요. 앞으로 더 멋진 모습 보여 드리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김민채 선수가 관중의 응원만으로 좋은 결과를 얻었을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선수가 열심히 훈련에 임했을 것이고, 여러 가지 전략의 보완이 있었을 것이다. 관중들이 보낸 응원은 그 노력을 좀 더 수월하게 끌어내는 촉매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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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가 항상 자신을 응원해주는 관중이 준비되어있는 경기장에서만 뛸 수는 없다. 그러나 관중으로부터 받은 응원이 경험이 되고, 경험이 기억이 된다면 형태만 바뀔 뿐 에너지는 계속 유지될 수 있다. 김민채 선수에게는 그 에너지를 끝까지 끌고 가는 새로운 과제가 생겼다. 동시에 그 현장을 목격한 관중들에게는 선수를 믿고 볼 수 있는 근거가 생겼을 것이고. 경기를 하나의 연극이라고 가정했을 때, 그 극의 서사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관중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1월에 예정된 다음 경기를 기다리며.

 

 

[김서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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