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이야기꾼 [사람]

글 입력 2023.02.19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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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나 추석같이 명절 시기가 다가오면 이모는 서울에서 청주로 내려온다. 웃을 때면 어머니와 유사한 입꼬리와 눈웃음을 보이지만 깊은 눈동자와 얼굴의 윤곽에서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우리 이모는 자타공인 이야기꾼이다. 웃어른과의 대화에는 보통 가르침과 위계가 있다. 그 곳엔 세월에서 얻은 그들의 노하우와 그것에 대한 우리의 배려와 존중이 담겨있다. 하지만 보통 그들의 후회는 비슷하고 우리는 이제 그것을 쉽게 눈치챈다. 불평은 아니고, 몸의 작동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영양소를 매일 같은 요리로 섭취하는 심심함 내지 지루함이다.

 

반면 이모는 같은 재료라도 색다른 요리과정을 보여준다. 이 레시피는 아마도 이모의 산전수전에서 비롯되었는데,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떨어져 경제적인 ‘화’가 불가피한 외국 생활을 지피었고 생존을 위한 절박함으로 상위와 하위의 굴곡을 모두 겪으면서 말이다. 물론 호기심이라는 천성적인 요소도 함께한다. 하지만 환경이 사람을 바꾸듯, 25시간 거리인 아르헨티나에서의 생활은 이모에게 색다른 삶의 레시피를 가르쳐 주었다.


낯선 남아메리카에서 생활은 소재부터 흥미로우며 이모의 말하기 기술이 양념되어 더욱 맛있는 이야기가 된다. 그녀의 말에는 세심한 디테일이 존재하는데, 말의 높낮이, 표정, 속도 그리고 연기력과 유머는 이야기에 화룡정점을 찍는다. 구연동화의 배우처럼 아주 리얼한 현장을 전달해준다. 그 덕에 가끔 이모가 전해주는 어머니의 어린시절을 들을 때면 그제서야 어머니가 5남매의 막내로 느껴진다.


또한 이모의 말에는 힘이 있다. 그것은 말이 아닌 행동에서 찾아온다. 그녀를 둘러싼 건강한 삶의 태도가 신뢰를 높인다. 말은 누구나 하니, 실천하는 이의 말은 더욱 설득력이 생기는데,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늘 운동하고, 일을 하고, 요리하고, 책읽는 모습들은 자연스럽게 모방의 대상이 된다. 지혜로운 학습방식이다. 

 

이모와의 대화에는 구체적인 위계가 없다. 그저 친구처럼 말하고 웃고 떠들고 혼자 느낄 뿐이다.

 

언제나 꿈꾸며 되고 싶은 어른의 모습이다.

 

 

[정현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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