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을 등진 것은 당신의 이름 [영화]

<연지구>의 쓸쓸함에 대하여
글 입력 2023.03.07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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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사랑은 실재의 여부를 초월한 믿음의 한 종류로서 기능한다. 누군가와 변하지 않을 사랑을 나눌 수 있다가 아니라 나누고 싶다는 것이 정확한 설명이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바라면 그것을 믿고 싶어진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영원이 없다는 사실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괜히 입 속으로 ‘그래도’를 중얼거리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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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불꽃처럼 일생을 태워버리니 계속되기 쉽지 않아


 

어느 시대의 누구나 그랬듯 1930년대 후반의 홍콩에도 영원한 사랑을 바라는 연인이 있었다.

 

이름난 기생 여화(매염방 분)는 장난스럽지만 어쩐지 눈을 뗄 수 없는 부잣집 도련님 진진방(장국영 분)과 사랑에 빠진다. 그들은 홍콩의 낮과 밤을 함께 즐기며 아편 같은 즐거움에 눈을 감고 뜬다. 사랑은 색색의 불꽃처럼 타올라 젊은 연인의 주위를 감싸고 열기에 취한 여화와 진진방은 미래를 약속한다.

 

이후 기생과 부잣집 도련님이라는 신분의 차이로 진진방의 집안이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하고, 이에 두 사람은 세상의 말은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듯 동거를 시작한다. 그렇지만 점점 강해지는 압력과 스트레스로 두 사람은 3월 8일 11시, 아편을 이용해 자살을 시도한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지만 우리의 사랑은 영원할 것이므로 내세에서 서로를 찾아 변하지 않는 사랑을 하자는 여화의 약속, 그리고 그 증표인 연지합과 함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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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등진 것은 당신의 이름, 많은 그리움을 잘못 주었네


 

영화의 첫 장면은 1990년대 홍콩, 신문사의 기자 앞에 여화가 나타나 광고를 싣는 것으로 시작한다. “도련님, 3811 그곳에서 기다립니다. 여화.”라는 짧은 광고에는 여화의 여전한 사랑과 죽음을 불사한 어느 젊은 연인의 약속이 담겨 있다.

 

그러나 여화가 아무리 기다려도 진진방은 나타나지 않는다. 사실 여화는 죽음 이후 53년 동안 저승에서 진진방을 기다렸다. 그때도 진진방은 나타나지 않았기에 여화는 자신이 죽었던 그곳으로 그를 찾으러 온 것이다.

 

사실 두 사람의 음독자살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비관한 여화의 주도 하 이루어졌다. 세상 물정을 모르던 유약한 십이공자 진진방은 주변의 압박에 정혼자와 결혼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고 그가 자신을 떠날까 두려워진 여화가 차라리 진진방과 함께 죽는 것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여화의 사랑이 얼마나 절박했는지를 알게 한다.

 

방해할 것이 없는 세상에서 다시 만나 사랑하기를 원하던 여화는 도련님이 3811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다며 초조해하다 곧 두려움대로 자신이 버려졌다는 사실에 절망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현재의 그를 찾길 원한다. 기자와 그의 애인의 도움으로 찾은 진진방은 이전의 총기가 사라진 70세 노인이 되어 있었고 주변의 가족 하나 없이 엑스트라 일을 전전하는 볼품없는 모습이었다.

 

여화는 자신이 잘못했다고 부르짖는 노인에게 연지합을 돌려주며 이별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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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같은 나의 마음을 더는 저버리지 말기를


 

<연지구>가 사랑의 쓸쓸함을 홍콩의 시대적 변화와 결부시켜 전하는 이유는 사랑이 언제나 공간과 함께하는 감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화가 가장 찬란한 웃음을 보이곤 했던 극장은 차가운 불빛의 편의점으로 변했고 누구보다 아름다웠던 청년은 소변마저 제대로 보지 못하는 노인이 되었다. 오지 않을 진진방을 기다렸던 여화, 많은 것이 달라진 미래에 자신이 아는 과거를 덮어씌우는 여화의 모습에서 우리는 쓸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예전과 같지 않은 마음, 예전과 같지 않은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슬픈 미소와 함께 우리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고작임을 알고 있어서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과 지금의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이고, 내가 사랑했던 시대는 지금의 이 시대와 다른 시대라면 우리는 오지 않을 것을 더 기다리지 않을 자격이 있다. 바보 같던 나의 마음을 당신이 더는 저버리지 않도록 빈 손을 쥐고 돌아서야 한다. 돌아간 곳에서는 우리의 방식으로 그때의 마음을 추억해야 한다.

 

<연지구>의 두 주연을 이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결말을 더욱 쓸쓸하게 만들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들의 영화를 필름이 늘어지도록 돌려 본다. 관객이 그리운 배우를 추억하는 방식은 지나간 사랑을 돌아보는 방식과 비슷한다.

 

<연지구>의 쓸쓸함이 유독 긴 이유는 떠나간 배우들이 그리는 보내주기의 방식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김지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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