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섭지만 따뜻해 [영화]

영화 〈미드소마〉 관람 후기
글 입력 2023.04.26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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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는 공포의 대상을 다루는 과정에서 그 영화가 담고 있는 시대·문화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아리 애스터 감독의 영화 〈미드소마〉는 북유럽의 전통적인 마을의 풍습을 소재로 공포를 끌어내었다. 이러한 〈미드소마〉의 공포는 단순한 두려움의 대상을 넘어서 현대 문명을 살아가는 우리와 비교하여 생각해 볼 점이 있다.

 

주인공 대니는 어릴 적 사고로 부모님과 동생을 잃고,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에 시달린다. 대니에겐 그녀가 의지하였던 남자친구 크리스티안이 있었으나 심리적으로 불안정하며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내는 모습에 크리스티안도 지쳐간다. 그러던 중 크리스티안과 그의 친구들이 떠나는 여행에 대니가 동행하게 되고, 호르가 마을이라는 곳에서 지내며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담은 스토리다.

 

대니는 흡사 사이비 종교와 같은 호르가 마을에 점차 동화되며 함께 왔던 다른 친구들은 하나둘씩 사라져 간다. 결국, 대니를 제외한 모든 친구가 제물로 바쳐진다. 일반적인 현대 문명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눈에는 파멸적인 결말이지만 영화 속 전통적 문화의 호르가 사람들에게는 일상적이면서도 행복한 모습으로 그려진 결말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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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정신적 고통


 

현대인의 정신적 고통은 작품 속 중심 소재 중 하나로 나타난다. 크리스티안은 남자친구라는 명목하에 표면적으로는 대니를 위하지만, 대니는 진정한 위로와 공감을 받지 못하고 혼자서 고통을 삭여야 했다. 크리스티안은 동생의 심리 상태가 좋지 않다는 대니의 말에 “너가 호들갑일 때가 있어”, “관심받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라고 말하기도 한다. 공동체의 유대가 소멸한 현대 사회 속에서  개인의 고통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 된다.

 

크리스티안과 친구들이 대니를 떠나는 내용의 악몽은 대니의 관계 단절에 대한 두려움이 엿보인다. 이러한 대니의 관계에 대한 절박함은 호르가 마을의 풍습에 따라 투신한 노인들과 가족들의 죽은 모습이 겹쳐 나타나는 장면을 통해 가족들의 죽음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원인이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곧 대니에게 있어 호르가 마을에서의 생활은 호르가 공동체에서 이러한 단절의 두려움과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되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대니는 점차 호르가 마을과 유대감을 쌓으며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존재하게 된다. 이는 메이폴 아래에서 춤추는 장면에서 점점 고조되는 분위기와 함께 그녀가 갑자기 스웨덴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는 모습으로 보다. 춤이라는 행위를 통한 진정한 의미의 소통이 일어나는 순간이며, 단순한 언어의 전달을 넘어 깊은 내면으로부터 타인과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니는 왜 호르가 마을에 안정감을 느끼며 동화되었던 걸까. 이는 호르가 마을이 대니가 본래 살았던 현대 도시와는 다른 질서를 살펴봄으로써 유추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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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가 공동체: 현대 문명과 다른 질서


  

먼저 고통의 분담과 정서의 공유라는 특징이다. 호르가 마을 사람들은 고통을 비롯하여 모든 감정을 함께 나누며 슬픔을 개인에게만 짊어지게 하지 않는다. 절벽에서 뛰어내린 남자 노인이 잘못 떨어져 죽지 않고 고통을 느끼자 함께 고통스러워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나, 대니가 남자친구 크리스티안이 마야(호르가 마을 사람)와 관계 의식을 맺는 장면을 목격하여 겪는 괴로움, 슬픔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장면은 이를 보여준다.

 

호르가 마을은 자연과 교류하며 조화로운 삶을 추구한다. 신체에서 자라나는 풀을 보는 환각은 물아일체, 곧 자연과 하나 되는 순간을 느끼는 것이며 자연을 먹고 살아가는 건 신에게 빚지는 행위라고 여긴다. 때문에 인신 공양은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호혜의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의식이며 자연스러운 섭리로 받아들인다. 죽음에 대한 가치관 역시 이러한 의식을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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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가 공동체는 나이를 계절에 비유한다. 사람의 생애는 18년을 단위로 봄, 여름, 가을, 겨울로 구분되며 72세가 되면 절벽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생을 마감해야 한다. 제사장 시브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을 기다리다가 죽는 건 영혼을 더럽히는 일", "뛰어내림은 자연의 순환 원리로써 기쁜 일"이라고 말하며 인신 공양 장면에서 장로들은 “순환에서 죽고 살아날 것”임을 주창한다.

 

로트벨타라고 불리는 뿌리뽑혀 죽은 나무 역시 그 자리에 새 생명이 자라날 가능성을 상징하며, 죽음으로부터 다시 새로운 생명이 시작된다는 순환성을 의미한다. 즉 현대인이 죽음을 부정적인 것으로 여기고 외면하며 마주할 준비가 되지 않아 맞닥뜨렸을 때 고통을 느끼는 반면, 호르가 공동체는 죽음을 제대로 인식하고 자연의 순환 과정으로서 순응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질적 대상의 공포감 vs 공동체적 유대의 안정감


  

결국 이러한 현대 사회의 질서와 대조되는 가치관으로 인해 호르가 마을은 광인들의 집단으로 보인다. 특히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인신공양 의식 중 제물이 된 사람들의 고통을 마을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는 장면은 혼돈 그 자체를 보여주며 이질적인 공포감이 극한에 달하게 된다.

 

영화는 통상적으로 '미치광이'들에 해당하는 집단의 모습이 가감 없이 드러내며, 그 속에 신비성을 극대화하는 상징적인 요소들이 풍부하다. 현대 사회와 전혀 다른 가치관과 질서를 가진 원시적 종교관의 사회 속에서, 현대 사회에 속해있던 인물들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그러면서도 호르가 마을 사람들은 그러한 공동체를 이어 나가며, 대니는 제물로 바쳐진 친구들이 노란 집과 함께 불타는 장면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경제의 성장은 삶에 윤택함과 편리함을 가져다주며 질병을 하나둘씩 정복해 감으로써 죽음을 멀리하였지만 그만큼 불안과 우울을 더 내재화한 현대사회의 모습은 작품 속 호르가 마을과 많은 측면에서 비교할 수 있다. 〈미드소마〉는 대립적인 공동체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의 현재 모습을 생각해 보게끔 만드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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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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