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호퍼의 시선으로 훔쳐보기 -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 [도서]

글 입력 2023.06.29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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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2m에 달했다고 전해지는 ‘에드워드 호퍼’는 남들보다 높은 시야에서 어떤 세상을 바라봤을까?

 

다르다는 건 나만의 고유한 특성이 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외로움의 원인이 되는 것도 같다. 에드워드 호퍼라는 이름 뒤에 따라붙는 수식어, 현대인의 만성적인 고독. 호퍼의 시선에는 그의 삶을 관통하는 그 고유의 외로움이 담겨있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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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과 외로움은 예술가로서 호퍼가 지닌 고유한 개성일 테지만, 이연식 미술사가는 그 키워드가 호퍼의 시각을 이해하는 방식의 일부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 미술사가가 집필한 저서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에는 호퍼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는 15가지 주제의 해설이 담겨있다.

 

흔히 알려진 ‘도시’와 ‘고독’, ‘빛과 어둠’ 등의 주제부터 ‘적막’, ‘어스름’, ‘극장’ 등의 다소 낯선 주제까지. 예술가의 고유한 시각이 좋은 예술의 판단 기준이라는 호퍼의 말처럼, 호퍼의 예술세계를 다각도로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예술가 에드워드 호퍼의 삶을 한 층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의 작품을 통해 호퍼의 시선에 담겼던 세상을 훔쳐본다. 작은 키를 지닌 내가 2m의 시야를 엿볼 수 있다니, 흥미로운 일이다.

 

 

좋은 예술을 판단하는 단 하나 변치 않는 기준은 세상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고유한 시각이다. 기법은 달라지지만 고유성은 영원하다. (62p)

 

- 에드워드 호퍼


 

호퍼를 알게 된 지는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짧은 순간 그의 이름이 기억 속에 강렬히 각인됐다. 좋고 싫다는 판단보다는 자꾸 신경이 쓰이고 잔상이 오래 남는 기분이다. 

 

지극히 대중적인 취향을 지닌 내게 호퍼의 첫인상은 뻔하게도 ‘고독’이었다. 미국 땅을 밟아본 적도 없기에 주로 미국의 일상이 배경이 되는 호퍼의 그림은 분명 낯선 분위기였을 텐데도, 왠지 한참을 바라보게 되는 그의 작품에서 진한 감정이 읽혔다. 그것도 꽤 익숙한 외로움이.

 

이연식 미술사가의 평처럼, 미술에 조예가 없는 내가 보기에도 호퍼의 작품들은 기술적으로 뛰어나지는 않은 것도 같다. 그럼에도 호퍼의 그림에는 힘이 있다.

 

복제가 아니라 아우라가, 회화의 기술이 아닌 고유의 시각이 예술에서 더 중요한 가치와 기준이 된다면, 묵직한 감정을 전달하는 호퍼의 작품은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를 지닌다. 여전히 호퍼라는 예술가를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의 고독에 시선이 가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어쩌면 나는 별로 인간적이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줄곧 그저 집 옆을 비추는 햇빛을 그리고 싶었을 뿐이다. (88p)

 

- 에드워드 호퍼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호퍼의 작품에서 ‘빛과 어둠’이 그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는 점이다. 그의 작품을 들여다볼수록 ‘모순’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특히 <일광욕하는 사람들>과 <공원의 밤>을 연달아서 감상할 때 감정이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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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노란빛은 따스하고 푸른빛은 차갑게 느껴지는데, 노란 햇빛 아래 있어도 사람들은 쓸쓸하게만 보인다. 그 뿐만 아니라 색채 없이 명암으로만 표현된 동판화에서도 신문을 읽고 있는 남성의 뒷모습은 굉장히 외롭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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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색과 한색, 색채의 유무 등이 아니라 호퍼의 작품에 스며들어 있는 특유의 쓸쓸함은 빛과 어둠의 조화, 색채의 대비, 구도와 시선 등에서 기인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리쬐는 차가움’이라는 이 미술사가의 표현이 인상적이다. 빛을 받고 있는 데도 춥게만 보이는 사람들과, 작품에서 풍기는 고독과 권태가 마음을 적신다. 외로움이란 본래 화합과 생명이 넘치는 곳에서 극대화되지 않던가. 따스한 날씨와 대비되게 시리던 내 마음. 그게 내가 느낀 고독이었던 것 같다. 

 

호퍼의 작품 중에 나를 가장 외롭게 만드는 <일광욕하는 사람들>, 그 안에 담긴 온기의 모순적인 기능 때문에 이 작품을 오래도록 가슴에 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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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퍼의 작품은 낯설면서도 익숙하고 일상적이면서도 비일상적이다. 미국을 주된 배경으로 삼는데도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을 공감 시키고,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그리는 듯하면서도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특유의 시선에서 조명한다. 

 

우리가 일상을 얼마나 당연하게 여기는지, 그래서 서로에게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반성하게도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푸른 저녁>을 감상할 때 충격을 받은 건 해설을 보기 전까지 ‘광대’의 존재가 내 눈에 띄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었다.

 

한번 인식하고 나면 의상과 분장이 상당히 이질적인데, 의식하지 않으면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어도 큰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참으로 이상하다. 

 

화폭을 가득 채운 사람들에도 불구하고 고독과 적막이 넘친다. 마주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서조차 시선은 어긋나 있고, 분명 한 공간 안에 함께 있음에도 결국은 혼자이다. 이질적인 광대나 평범한 사람들이나 고독한 섬일 뿐이다,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면 함께 있기에 더 외로운.

 

백여 년 전의 도시나 지금의 도시나 별반 다르지 않은 것도 같다. 출퇴근길 빽빽한 대중교통 안에서 우리는 각자의 세계에 몰두하느라 바쁘다. 광대의 외로움에 무심한 것처럼 누군가의 고독을 쉽게 지나친다. 아니 어쩌면 그 존재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앞사람이 광대 분장을 한 것을 모르는 것처럼. 

 

현대인의 만성적인 고독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현대인의 우울과 누군가의 고독한 죽음이 떠오른다. 늘어나는 것이 전혀 반갑지 않은. 외로움마저 객관화 시킨, 감정을 배제한 차가운 숫자들이.

 

 

어쩌면 그건 내 마음의 반영이고, 외로움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모르겠다. 아마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숙명일 수도 있겠다. (20p)

 

- 에드워드 호퍼

 

 

적막이 가득한 호퍼의 작품에서는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 그 그림이 생동적인 이유는 감정이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21세기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호퍼를 찾는 이유는 외롭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외로운 줄도 모른 채 지내다가 호퍼의 그림을 보고 오늘의 내가 참 외로운 하루를 보냈구나 생각한다. 백여 년 전의 한 장신의 화가 역시 참 고독한 삶을 살아냈겠구나, 그의 시선을 빌려 작은 위로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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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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