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달큰하되 씁쓸하다. 술도 인생도 [영화]

글 입력 2023.07.20 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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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중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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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묘미 중 하나는 직접 살아보고 경험해 보지 못했던 미지의 것에 잠시나마 가닿을 수 있는 것이다. ‘어나더 라운드’는 나에게 그런 매력으로 각인된 작품이다.

 

기껏해야 유소년기의 방황과 청년기의 열패 정도의 감각 정도에만 이입할 수 있던 나에게 중년 남성의 권태로 점철된 이 작품은 이해의 외연과 깊이를 한층 확장시켜주었다.


극 속에는 교사이자 친구인 네 명의 중년 남성이 등장한다. 지난한 육아에 무력하고, 따분한 수업에 흥미를 잃고,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고리타분한 존재가 되었다는 충격에 자기효능감마저 바닥이 된 그들은 권태로운 일상에 돌파구를 찾고자 한다. 

 

이때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충족하면 직업적, 사회적 능률이 상승한다’는 호기로운 가설에 구미가 당기고 네 친구는 반신반의하면서도 매일 조금씩 음주를 한 채 가정과 사회 내에서의 변화를 지켜보도록 합의한다. 


 

 

달큰하되 씁쓸한 술 그리고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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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알코올 농도 0.05%를 정확히 계량하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개인마다 효과가 판이하게 나타나자 그들은 한층 대담해져 수치를 자율적으로 조정하게 된다.

 

술의 힘을 빌려서일까 네 친구는 학생들의 존경과 관심을 한몸에 받는 융통성 있는 스승이 되기도 하고, 재치 있는 가장이 되어 헐거워진 가족 관계를 봉합하기도 한다. 한층 발랄해진 그들은 그렇게 가설의 효용성을 입증해 낸다. 

 

그러나 달큰함과 씁쓸함이 공존하는 술처럼, 첫 잔은 가볍지만 숙취는 무거운 것처럼 인생도 그렇다. 정도를 벗어난 일탈은 책임을 부르고,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더한 욕심이 생긴 네 친구는 개인의 알코올 최대 한계치를 시험하기 위해 과음하다 종국에는 그저 처량한 고주망태가 되고 만다. 

 

심지어는  학교에서 술병들이 무더기로 발견되며 탄로나게 되고, 취기로 인해 뱉어서는 안 될 속내에 감춰둔 진심들을 토해내며 애써 봉합된 부부 관계에 금을 내기도 한다.

 

이후 알코올 중독에 대한 우려로 실험을 중단하기는 했지만, 그 늪에 잠식되고 만 친구의 자살로 인해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실험은 비극으로 남고 만다. 

 

 

 

실패할 용기는 낙관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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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그렇게 음주 가무라는 소재를 빌려 그에 대한 예찬과 부정 언저리를 오가며 인생에 대해서도 사유하게끔 이끈다.

 

이때 후반부의 한 대사가 의미심장하다. "타인과 삶을 사랑하려면 자신의 실패 가능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즉,  때로는 조금은 비워내는 것이 통제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사랑할 수 있는 적확한 방식이라는 것.

 

극의 긴요한 뼈대처럼 보이는 알코올 농도와 관련된 궤변 그리고 이를 직접 입증해가며 네 친구들이 겪는 시행착오는 인생사와 궤를 같이하는, 메타포일 뿐이다.

 

친구들의 요구와 채근에도 꿋꿋이 춤을 추지 않았던 마르틴(매즈 미켈슨)은 극의 후반부, 친구를 떠나보낸 뒤, 군중 사이를 오가며 술을 들이붓고 자유로이 독무한다.

 

친구는 죽었고, (화해하게 될 것임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긴 하지만 외도로 모멸감을 느끼게 한) 아내와는 멀어졌고, 권태로운 일상이 여전히 기다릴지 모르지만, 그런 확실한 비관 속에서도 인간은 이유 모를 낙관을 찾고, 즐기고, 해방감을 만끽함을 몸소 표현한다.

 

실패 가능성을 사랑의 또 다른 이름으로 겸허히 받아들인 사람처럼.

 

 

[김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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