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일어나, 출근해야지 - 스티키몬스터랩: 스틸 라이프 [미술/전시]

글 입력 2023.10.14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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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하면 식상하고 너무 다르면 피곤하다지만 익숙한 게 좋다.

 

10 중에 7 정도는 비슷한 사람과 만나고 싶다. 충돌보다는 공감으로 관계를 채우고 싶다. 삐걱 거리는 소음보다 알맞게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듣기 좋다. 날 모양이 하나도 안 맞는 톱니바퀴 두 개를 들고 부딪힌들 날만 상한다.


그래서 좋았다. 하루의 삶을 주제로 했다기에. 심오한 예술적 세계 같은 건 모르니까. 난해한 작품을 볼 때는 신기함 이상의 감흥은 없었다. 흐리멍덩한 이목구비의 매력적인 캐릭터. 아침부터 밤까지의 하루. 너나 나나 같은 세상을 사는구나. 매력적이었다. 어느 방향에서 어떻게 끼워도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 3인칭 관찰자 시점의 일기장이다.

 

우리의 하루를 따라 움직인다. 아침으로 들어서서 밤으로 나선다.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몬스터. 아침을 먹는지 욱여넣는지 모를 몬스터. 출근이나 등교. 각양각색 하루의 시작을 준비한다.

 

열과 성을 다해 일을 하는 척을 열심히 하며 바쁜 오전을 보낸다. 영혼을 불사를 각오로 누구보다 성실하게 늘어지는 저녁을 거친다. 야근에 치여 시체처럼 널브러진 풍경을 지나 버스 종착점을 통과해 밖으로 나온다.

 

누가 나를 사찰이라도 했나 싶어 찝찝하기도 하다. 이 삐걱 소름 돋을 정도로 정교하게 우리의 하루를 베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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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토불이 대신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라 바람 조금 빠진 풍선 같다.

 

작가가 미국에서 살다 왔거나, 교포거나, 어느 쪽도 아니라면 최소한 미국 문화에 깊은 관심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미국적인 요소를 곳곳에 아주 음흉하게 잘 녹여냈다. 우리 삶이 그 나라 사람들과 너무 비슷해진 나머지 눈치 채지 못한 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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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얼과 우유로 때우는 아침 식사. 검은색 일통의 경찰차와 경찰 제복. 노랗게 물들어 시민을 기다리는 뉴욕의 Yellow Cab.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한 때 배송이 아니라 투척으로 유명했던 택배사 FeDex. 청춘을 장식했던 록 밴드 Green Day 앨범. 컴퓨터 시대의 시작을 열어준 IBM.

 

일상부터 거대한 경제에까지 이르는 모든 것에서 미국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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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이 한창이던 시대의 모습을 패러디한 점도 흥미롭다. 열전으로 서로 피 터지게 얻어맞고도 정신 못 차리고 자존심 싸움하느라 바쁘던 시절. 그때를 대표하는 것들이 이스터 소음보다 숨어있다.

 

전체주의와 공산주의 세계를 디스토피아로 간주하는 1984, Metropolis 등의 고전 패러디. 자본주의 진영의 대표 국가였던 미국의 시선을 끝까지 끌고 간다. 우주 도시에서 살아가는 소음보다 세상. 달 착륙을 놓고 경쟁하던 구소련과 미국의 총탄 없는 전쟁이 겹쳐 보인다.


‘미국’이라는 커다란 대주제가 어색하지 않게 관통하는 전시였다. 작품에 소음보다 다양한 소품, 일상생활, 거시적인 역사까지 지극히 미국적인 시선을 보여줬다. SUNSET과 NIGHT로 끝나는 흐름과 지극히 일상적인 삶. Still Life라는 제목도 놓치지 않는다. 어찌 됐건 간에 전시장에 머무르는 동안 시야에 펼쳐지는 것은 몬스터의 삶이었다.


한 사람의 일상부터 한 세계의 일생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따라가는 것. 작은 것에 집중하면 큰 틀이 깨지고, 큰 흐름을 잡으려고 애쓰면 사소한 흐리멍덩한 흐려지기 마련인데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다.

 

이것저것 보여주려 하지 않고 한 측면을 선택한 것. 나머지는 과감하게 내다 버리는 선택. 그 덕에 어지럽지 않고 직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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