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만 이것도 진짜의 삶이라면 [도서]

어디로 향하는 걸음이라도 괜찮다
글 입력 2024.04.20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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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소개도 없이 작가의 단상 하나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이 젊음이 미칠 것 같을 때가 있다. 뜨겁고 싱싱한 것을 대책 없이 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젊어. 젊음의 한가운데에 있다. 어떻게 쓰든 후회할 것만 같다. 젊음은 한 번뿐인데 예행연습 같은 게 없으니. 다 망쳐버리면 어떡하지? 이 젊음을 허투루 다 날리면 어쩌지. 마침내 후회하더라도, 심장이 터질 것처럼 울부짖더라도 되돌리지 못할 텐데.

<대책 없는 젊음(일부 발췌)>

 

 

단 몇 문장만으로 마음이 꿰뚫린 듯 심장이 내려앉는다. 이것이야말로 젊은 우리들의 두려움이 아닐까. 하루 더 살아갈수록 끝도 모르게 깊어지는 초조함이 있다. 마냥 푸릇푸릇하고 생기로 가득 차야 할 청년(靑年)의 매일일 텐데, 어쩐지 자신의 것은 따분하거나 별 볼 일 없는 것처럼 보여 괜스레 조급해지곤 한다. 정신과 육체, 그 어느 것 하나 어릴 적과 비교하여 성장한 것은 없는 듯한데 대관절 무슨 일인지 한참은 무르익은 모습이었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질까. 다 자라나서 수확을 가늠될 무렵은 언제고, 나는 어떤 과실의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할까.

 

막연하지만 언제 동나버릴지 모르는, ‘젊음’이라는 과분한 수식어를 짊어지고 이리저리 방황하던 필자에게 <무명의 감정들>은 방문을 두드리고 다가와 곁에 앉았다. 그리고 긴 시간의 고민 끝에 얻은 깨달음을 담백한 언어로 풀어낸다. 우리 모두의 모습을 한 주인공 ‘무명(無明)이’는 작가의 탁월한 글솜씨와 함께, 10장의 에세이툰으로 우리 안 모호한 감정의 정체를 밝히고, 거기에 새로운 의미를 담아 위로처럼 내어놓는다.

 

‘내일의 부끄러움과 오늘의 시시함과 내일의 오지 않은 불행(<선잠의 새벽>)’에 압도되어 일찌감치 말랑말랑 사그라든 우리의 가슴을 다시 북돋워 줄 ‘쑥’ 작가의 에세이툰, <무명의 감정들>. 온갖 감정의 실타래로 복잡한 마음을 아주 내려놓고, 작가의 언어로 새로이 명명된 우리의 감정에 주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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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내면을 뿌리내리지 못하고


 

비단 예술가나 창작자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나름의 취향으로 구축된 내면세계를 지니고 산다. 그 세계가 견고하고 분명할수록 으레 ‘자신을 많이 아는 사람’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것은 사소하건 중대하건 어떤 선택의 판단 기준이 되고, 그 결과로 얻는 경험과 깨달음은 또다시 내면세계의 건설에 쓰이는 재료가 된다.

 

그러니 일상에서 이런저런 결정을 하고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는 문제와 더불어 자신의 내면을 단단하게 일구고 지키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세파에 휘둘려 방황할 때야말로 그런 것들이 우리의 삶을 자기의 근간이 되는 토양에 단단히 붙들어주기 때문이다. 세찬 바람이 불어닥칠수록 우리는 더더욱 땅에 두 발 붙이고 서서 가만히 견뎌야 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런 것이 어렵다. 대신 한 결의 바람에도 휘청대고, 발 디디고 등 누일 땅 없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자신이 있다. 아래의 단상은 그러한 우리의 모습을 담고 있다.

 

 

동그라미 인간 같다. 지면과 점으로 만나는. 고정하기에 무척 고곤하고 가벼운 바람에 휭 굴러가는. 오히려 뾰족해서 그럴까. 무수한 점이 내가 되어서, 결국 나는 동그라미 인간이 된 걸까. 모든 것은 빌려온 것 같고, 끝없이 낯설고, 결국 사라지는 것은 시간 문제인 것 같다. 동그라미 인간이라 이렇게 굴러가고 있나. 내 진짜 자리는 어디에 있을까.

 

<동그라미 인간(일부 발췌)>

 

 

예민하고 뾰족하던 모습이 쌓여서 모순되게도 둥근 모양이 되어버렸다는 절묘한 표현은 순간 시선을 머물게 하고 가슴에 맺힌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또 시답지 않을 수 있는 것에 흔들리고 있는가.

 

분명 언젠가는 주관과 특징이 뚜렷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는데, 한참이 지나 같은 질문에 다른 대답을 내놓을 때 낯선 모습의 자신을 발견한다. 더는 확신할 수 없는 자신, 이것도 저것도 모두 내 것 같지 않은 모호함이 있다. 나만이 오롯이 가진 것은 없고, 일상은 끝없이 생경하고, 그러한 자극에 휘몰리는 매일을 살다 보면 결국 무너져내리는 자신이 있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든다. 어째서 우리는 이렇게 되었을까. 오히려 너무나 뾰족해서, 너무 섬세했던 탓에 세상에 어색하지 않은 척 스며들어가려 노력하다가 둥근 모양이 되었나.

 

누구나 마음으로 바라는, 똑 부러지고 주관이 확실해서 둥글둥글 어울리면서도 자신만의 굴곡을 지닌 자신의 모습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 상황에서 수많은 이유로 둥글어지기를 택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수긍에 능했을 줄이야.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회피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런 역사를 떠올리면 나의 동그라미가 이해가 된다. 아무런 무늬도 없이 밋밋해보이는 동그라미가.

 

   

 

나의 재능마저 발가벗겨질 때가 얼마 남지 않은 듯 


 

그러나 속절없이 흐르는 게 시간이다. 하루가 일곱 번 모이면 한 주가 되고, 그것이 네 번 모이면 한 달이 된다는 것이 믿을 수 없는 진실이다. 이제는 이러한 모습의 나를 짊어지고 세상으로, 사회로 나가야 할 때가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그러니 정당한 방황의 시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조급함도 당연하지 않을까. ‘젊음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것은 곧 정점을 지나 저무는 단계로 돌입한다는 의미일 테니.

 

젊음도 얼마 허락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매일을 지배한다. 이제는 나의 세계니, 꿈이니 하는 것은 전부 내려놓고 직업이라는 이름표를 얻기 위한 개발을 시작할 때인 것 같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먹기조차 쉽지가 않다. 온갖 고민 속에서 불안감이 슬쩍 고개를 내민다. 모든 것을 시작도 하지 못한 채 망쳐버릴 것만 같아서.

 

 

내가 일궈놓은 것들은 왜 이렇게 허상 같을까. 지금껏 받았던 칭찬은 모두 나에게 속은 사람들의 말 같다. 곧 무언가를 망쳐서 나의 무능을 증명할 것만 같다. 잘 포장된 재능이 발가벗겨져 알맹이만 초라하게 남을 것 같다. 나만 몰래 알던 부족함이 모두에게 내비쳐질까 내내 걱정한다.


<왈칵 망칠 것만 같은 날(일부 발췌)>

  

 

우습겠지만 자주 이러한 생각에 빠진다. 자신이 지닌 능력 중 그나마 가장 잘한다고 생각했던 일이 막힐 때, 그리고 마침내 형편없는 결과물을 내놓아야 할 때마다 나의 모든 성취는 거짓 같다. 자신은 아주 대단한 배우임에 틀림없다고.

 

“지금껏 저의 능력을 칭찬하신 분들은 모두 속으신 거예요, 사실 저를 뽐내는 일에는 아주 일가견이 있거든요. 겨우 이런 결과물이나 내놓는 사람이었다구요”라는 분노 섞인 말을 한탄처럼 쏟아내고 싶어진다. 그나마 믿어왔던 능력조차 겨우 이만큼에 불과했다니,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좌절이 분노의 분화구로부터 솟아오른다. 사람들이 찬사를 보내오던 그것은 사실 나의 속임수, 혹은 우연과 행운이 촘촘히 짜여서 만들어진 허상이었던 것이다. 곧 세상에 나서야 하는데 그 무엇도 자신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니 겁이 나기 마련이다. 편안한 이불 속에 누워서 한탄하곤 한다. 너무도 쉬운 회피, 너무도 무책임한 도망임이 분명하지만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한 상실감이 너무도 크다. 예전의 분명하고 자신감 넘치던 모습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대신 여기에는 그때보다 몇 걸음, 혹은 한참을 뒤로 물러나 있는 자신이 있다.

 

 

   

그렇지만 이것이 진짜의 삶이라면 


 

여기까지 내용을 요약해보면 참으로 막막하다. 우리는 자신을 잘 모르고, 마음 붙일 곳 없이 휘둘리곤 한다. 지금껏 이룬 성과는 모두 거짓 같고, 오히려 과거에 비해 더욱 뒤처진 것 같다. 그런데도 세상으로 나아갈 날은 얼마 남지 않았고, 이러한 나를 메꾸기 위해 훨씬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할 것이 두려울 따름이다.

 

우리 앞에 놓인 이러한 현실을 작가는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이야기에서 다시금 상기된다. 그럼에도 독자가 괴롭지 않은 것은 작가의 에세이는 거기서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는 현실에 대한 암울함에서 그치지 않는 대신, 우리가 지닌 아픔과 결함, 좌절이 당연한 것임을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진짜’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짜는 늘 싱싱해. 진짜는 시들기도 하고. 조화, 음식 모형, AI 아바타. 늘 완벽하고 반짝이는 것들은 사실 가짜야. 나는 진짜다. 진짜로 여기에 있다. 숨을 쉬면서. 그러니 시들기도 하고 완벽에서 멀어지기도 한다.


 진짜인 나는 지기도, 피기도, 상하기도, 멍들기도, 반짝반짝하기도 한다. 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진짜 마음을. 

 가짜는 늘 반짝이지만 늘 반짝여서 한편에 불쾌함을 주지. 조화와 음식 모형의 반짝임 같은 것들. 그러나 간혹 져버리기도 하는 진짜는 다시 빛나기 시작할 때 몹시 밝게 빛난다. 행복할 때의 눈빛과 웃음 같은 것들.


<오히려 가짜는 늘 싱싱해(일부 발췌)>

 

 

이러한 작가의 태도가 책을 읽는 내내 우리를 지탱해준다. 이를테면 때때로 무기력해지는 모습, 무능력한 자신, 이성으로 갈무리하지 못하는 감정의 폭발, 꾸준하고 지루한 노력으로 메꿔나가야 하는 미완의 삶, 우리의 삶에 녹아있는 옥에 티와 같은 것들은 오히려 삶이 진짜의 것임을 의미한다. 진짜라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고, 살아있다는 것은 앞으로의 날들에 여지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변화의 가능성과 무한한 잠재력이 허락된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우리는 의도된 대로 만들어져 의무를 다하는 제품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이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이었다면 흠이 있는 불량품으로 취급되었을 것이다. 그런 불량품에게는 잘못조차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공기 중의 산소를 흠뻑 들이마실 줄 알고 세상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할 줄 아는, 그럼에도 세상에 묶이지 않고 자기만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독립적인 주체이다.

 

인간의 본능은 온갖 잘못과 악덕을 저지르기를 충동질하고, 쾌락은 미덕을 파괴할 때 강해진다. 그러한 이유로 인간은 바르게 살지 못하고 옥에 티를 품고 말지만, 이러한 어둠이 존재함으로써 우리의 선량함이 빛을 발하고 작은 성장마저 귀중해진다. 예상치도 못한 악덕을 벌일 수 있는 존재이기에 오히려 선함과 발전을 추구하려는 노력이 진가를 발한다. 그리고 이것이 진짜의 삶이다. 그 누구도 부정을 들이밀 수 없는, 있는 그대로의 우리인 것이다.

 

세상의 모든 생명이 항상성을 지니고 본래의 무탈한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본능을 띄는 것처럼, 진짜로 살아있는 우리의 삶도 그러할 것이다. 지금은 조금 못난 모습일지언정, 우리는 더 나아지기 위해 온갖 노력을 쏟을 것이다. ‘지금 시들어 있어도 그건 내가 진짜라서 라는 걸 기억’하자. 지금의 퇴화도, 혹은 미래에 다가올 진화도 모두 진짜인 우리만의 전유물이다. 이것 앞에서는 그 어떤 자책이나 비난도 소용이 없다. 다만 우리의 삶은 어떤 모습이든 괜찮다는 것만이 정설이 된다.

   

 

 

어떤 모습의 매일이라도 괜찮다 


 

<무명의 감정들>은 마냥 위로만 하는 방식으로 독자를 격려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명확히 통찰하고 이제와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우리를 위로한다. 그렇기에 우리를 응원하는 작가의 메시지에 힘이 실린다. 그러한 이유로 작가의 메시지가 나가떨어지지 않고 가슴을 명중해온다.

 

그래, 삶이란 게 어떻게 분명하고 깨끗할 수 있을까. 특히나 젊음이란 세상에 갓 나와 혼돈의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는 나이다. 그러니 불안하고 두려운 것도 그럴 수밖에 없겠지. 작가는 그것을 다시금 상기시켜 준다. 우리의 혼란이 그럴 수밖에 없음을.

 

우리가 지닌 어쩔 수 없는 결함과 한계는 그대로 내버려두자. 대신 다른 것에 주목해보는 것이다. 이미 동그라미 인간이 되었다면, 아랫부분을 깎아내 어디든 자유로이 굴러다니면서도 원할 때 멈춰설 수 있는 존재가 되면 된다. 자신의 능력이 꾸며낸 가짜로 보인다는 말은, 도리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우리의 잠재력이 보인다는 의미일 수 있다. 상황은 그대로일지언정,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인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가짐은 어떤 종류의 회피나 자기 위로가 아니다. 우리의 삶은 정해진 것 없이 개척해나갈 여지가 있는 진짜의 삶이니까. 새로움을 추구하고 변화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생명으로서의 본능이니까.

 

그러니 여러분에게도 작가의 단상이 닿아 위로가 되길 바란다. 인간의 삶은 진짜인 만큼 혼란스럽고, 불안하고, 나의 품으로 껴안기에는 너무도 과분하게 느껴지니까. 대신 이 책이 그러한 여러분에게 어떤 힘이 되어주길 바란다. 이 책 속에서 당신과 닮은 쌍둥이를 마주할 수 있기를, 당신의 삶에 희망된 이름을 붙여볼 수 있기를, 그렇게 매일 꾸준한 노력을 행할 힘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며 이제는 여러분에게 이 책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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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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