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에반 핸슨에게. 오늘은 근사한 날이 될 거야. [공연]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 속 에반에게 보내는 편지
글 입력 2024.04.29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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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에반 핸슨

 

 

안녕, 에반 핸슨. 오늘은 분명 근사한 날이 될 거야. 왜냐하면, 내가 너에게 편지를 전해주는 날이거든! 비록 정성이 담긴 손편지가 아닌 메일로 보내는 편지지만 말이야. 며칠 전 네가 지금까지 너에게 있었던 일을 전부 고백하는 메일 잘 받았어. 컴퓨터 화면에 써진 활자일 뿐인데도 읽으면서 너에게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전부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 그만큼 네가 글을 잘 쓴다는 의미겠지? 거봐, 너는 정말 글쓰기에 소질이 있는 아이라니까.

 

아무튼 에반 너의 과거 이야기를 상상하며 나도 여러 생각이 들었어. 처음 읽을 때는 너의 감정을 중점적으로 따라갔는데, 두 번째로 읽을 때는 에반 너만큼이나 너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감정까지 헤아리게 되었어. 모든 게 너의 거짓말로부터 시작됐지. 너 자신에게 쓴 편지가 코너의 유서가 된 것도 너의 거짓말 때문이고. 솔직히 처음에는 네가 왜 진실을 말하지 못한 채 숨기기만 할까 조금 답답하기도 했어. 그런데 메일 스크롤을 내리면 내릴수록 너의 심정을 조금씩 헤아릴 수 있게 되었어.

 

나는 네가 조이와 사귀게 되었다는 내용을 읽은 순간 확신했어. 조이와 너 둘 다 본인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만나는 것이라고, 완전한 진심은 아니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이내 생각이 바뀌었지. 조이도 자신의 친오빠인 코너가 죽은 후로 단 한 번도 온전한 본인으로서 살아보지 못했을 거야. 어떤 날은 학교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애가 말을 걸기도 했으니까. 아마 그 애는 그저 동정심 때문이라고 느끼지 않았을까. 하이디가 머피의 부모님이 자신을 동정 어린 시선으로만 봤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우리 둘만 있을 땐 우리 오빠 얘기 꼭 안 해도 된다고, 온전한 나로서 둘이서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조이의 말을 들은 순간 깨달았어. 너희 둘의 진심이었고 그렇기에 함께 있을 때 온전한 본인으로서 존재할 수 있었던 거야. 주변은 흐려지고 너희 둘의 모습만이 선명하게 빛나더라. 어떤 순간에는 거짓말보다 진실이 더 선명해지기도 한대. 에반 너에게 있어 가장 선명해지길 바라는 것이 ‘작은 관심’이지 않았나 싶어. 너를 온전히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 말이야. 래리와 단둘이서 대화를 나누며 서로가 서로에게 감춰왔던 상흔을 들춰 보일 때 네가 거짓말을 계속해서 이어나간 이유에 공감할 수 있었어.

 

과수원이라는 장소는 정말 중요한 정소야. 과거 코너와 코너의 가족들이 자주 방문했던 공간이니까. 그 공간을 네 덕분에 다시 살리게 됐잖아. 그렇게 된 이상 그 과수원은 더 이상 코너 가족들에게만 소중한 공간이 아니야. 코너 가족들에게도, 코너를 기억해 주던 이들에게도 그리고 에반 너 자신한테도 의미가 생긴 거야. 네가 만일 텅 빈 숲속에서 홀로 남게 된다면 나를 누가 찾아줄지 상상하던 때를 떠올려봐. 너는 머피 가족들에게 코너가 에반 너를 구해줬다고 거짓말을 했고 그것으로 인해 걷잡을 수 없는 불행이 시작되었다고 믿었지. 하지만 조이 머피가 결말에 다다랐을 때 말해줬잖아. 너와 코너가 과수원에 있는 모습을 몇 번이고 상상했다고. 나는 조이의 말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됐어. 

 

과수원은 에반 너의 죄책감과 코너 가족의 위로가 뒤섞인 신비한 공간이라는 걸 말이야. 어엿된 어른이 된 네가 몸을 기댄 그 나무는 세상 밖으로 나가기 전 품었던 두려움만큼, 가족을 사랑하는 만큼 컸는지 궁금해. 어릴 적 네가 스스로 나뭇가지에서 손을 놓았던 그 나무와 비슷했는지도. 너는 너의 어머니인 하이디에게 일을 하다가 팔을 다친 게 아니라 과수원에서 코너와 함께 있을 때 다친 거라고 거짓말을 했어. 하지만 이 둘 중 그 어떤 것도 진실은 아니잖아. 너는 나무 위에 올라가서 떨어진 게 아니라 네가 손을 놓은 거잖아. 이 사실을 그 당시 하이디에게 고백하고 지금 나에게 그떄 일을 다시 말해주기까지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었을지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할 거야. 용기내어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  

 

사실 이 편지는 내가 너에게 전해주는 편임과 동시에 내가 나에게 해주고픈 말을 담은 것이기도 해. 진실을 전부 말해버리면 혹여나 상대방이 나를 싫어하진 않을까 걱정하던 순간들이 내게도 항상 존재했기 때문이지. 너의 글을 읽으며 나는 ‘에반이 나와 닮은 점이 참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

 

세상에는 갈수록 흐려지는 게 있고, 흐려지는 게 있으면 그만큼 선명해지는 것도 있어. 이제는 어렴풋이 너의 마음을 이해한 것 같기도 해. 편지를 꺼내 읽어보고 싶을 때마다 에반 너를 생각할게. 내 편지 읽어줘서 고마워. 마지막으로 너에게 해주고픈 말은. 오늘도 내일도 분명 멋진 하루가 될 거야!

 

p.s. 대학 편입 시험 합격한 거 정말 축하해! 네가 진정으로 원하던 곳에 가서 정말 다행이야. 다음에 메일 보낼 땐 새로운 학교에서 찍은 사진도 함께 첨부해줘. yay

 

 

From. 그날의 에반 핸슨에게 또 다른 에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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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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