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이슬아와 노랫말

글 입력 2024.07.03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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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마지않는 사람이 있다. 그이는 유머와 낙관이 가진 힘을 잊지 않으려 애쓴다. 차오르는 밝음 만큼 짙게 드리우는 삶의 그림자도 외면하지 않는다. 타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귀찮은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다른 존재로 몇 번씩 거듭나며 구체적이면서도 현학적인 사랑의 모양을 그린다.

 

나에게 이슬아는 그런 사람이다. 사랑을 외치는 훌륭한 사람들 속에서 이슬아가 마음 깊이 스며든 이유를 오래도록 고민했다. 이슬아가 제안하는 사랑이 피부에 와 닿도록 쉬우면서 명료히 따스하기 때문이라고 지금의 나는 답한다. 그녀의 사랑이 바닥에서 유래하기에 느낄 수 있는 감각이다.

 

이슬아의 글에 주로 등장하는 대상은 초라하고 별 볼 일 없다고 쉬이 판단되는 것들이다. 세상의 응시에서 벗어나 어떤 서사도 존재하지 않는 황무지인 셈이다. 척박한 땅으로 이슬아는 굳건히 향한다. 아니, 이미 그곳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그녀는 애초부터 의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비옥한 서사의 씨앗이 누구에게나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그녀가 응시를 게을리하지 않은 결과 멸종할 것만 같았던 이야기가 발아하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을 거치면 무엇이든 웃기고, 한심하고, 훌륭하고, 이상하고, 귀엽고, 애틋해졌다. 어느 하나 완벽히 미워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그래서 결코 눈을 뗄 수 없는 캐릭터가 탄생한 것이다. 이전보다는 더 생생하고 또렷한 색채를 뽐내면서.

 

그녀가 자신의 글을 꼭 닮은 노래를 쓰고 부른다는 건 뒤늦게 알았다. 산문가임에도 압축적인 형태의 가사까지 쓸 수 있는 능력에 놀랐다. 예스럽고 따스하면서도 첨예하게 시린 목소리를 듣고서는 더욱.

 

이슬아의 노래 몇 가지를 소개하고 싶다. 모두 누군가를 오래도록 응시했기에 탄생할 수 있던 노래다. 부지런히 바라보는 사람은 지나칠 수 없는 밀도의 가사를 쓴다. 글 쓰는 이슬아를 사랑한다면 노래하는 이슬아도 사랑할 것이라 믿는다. 그녀를 경유하여 자기가 가진 초라함을 애틋하게 발견해 보길.


 

 

거북이와의 사치스러운 삶



 

 

남편인 이훤 시인의 생일을 기념해 만든 노래다. 그는 한 땀 한 땀 행진하는 거북이 같은 사람으로 말도, 행동도, 고민도, 결정도 모두 느리다. 그이와 함께하는 파트너로서 이슬아는 여유로워도 너무 여유롭고 느려도 너무 느린 광경을 수없이 포착했을 것이다.


석 달 전의 유행도 구닥다리로 여겨지는 광속의 시대에서 느리다는 건 분명한 결점으로 보인다. 느린 이에겐 트렌드를 좇아야 한다는 출처 없는 의무감도, 충분히 곱씹지 못한 채 이뤄지는 공감도 부담스럽다. 빠른 판단이 더 큰 이익으로 직결되는 법칙도 벅차다. 가장 슬픈 건 모든 주저함이 시대착오적인 ‘사치’가 된다는 것.


이슬아는 이훤이 어떨 땐 바보 같을 정도로 느리단 걸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비로소 가능하게 했던 일들을 관찰하고 읊는 것도 잊지 않는다. 분명 물렁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상냥할 수 있는 눈을 매일 아침 마주하면서, 그의 느림이 잘하고 싶은 욕망과 헤치고 싶지 않은 두려움에서 유래한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일 것이다.

 

이훤이 지켜내는 속도는 이슬아의 미친 기분을 끌어안을 수 있는 포용이 되고, 다른 속도의 존재가 만나 포개어지는 일이 다름 아닌 기적이란 걸 그녀는 깨닫는다. 그것이 우리를 자꾸 살고 싶게 하는 화학작용이란 걸 알아차린다. “세상 곳곳에 계신 느린 분들 부디 행복하십시오”라는 말은 그렇게 가능하게 된다.

 

 

재촉하지 않아. 네가 움직이는 것 알아

느릿느릿하지만 분명히

 

사고 싶은 것도, 묻고 싶은 것도, 두려운 것도 많은

나의 기린, 나의 시인, 나의 거북이

 

 

 

1인 여행사



 

 

신혼여행지에서 만난 여행사 대표를 그리며 만든 노래다. 누군가 자신이 살고 있는 장소와 잠시 멀어지기 위해 여행을 선택한다면, 누군가는 평생을 멀어지지 않으면 안 돼서 여행을 떠난다.

 

 

누구 위에도 아래에도 있고 싶지 않아요 난

모두와 멀어지더라도요


해가 갈수록 싫은 일들 선명해지고

비 내리면 아파오는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토마토 갈아 먹죠 혼자


라서 외롭진 않느냐고 묻질 마셔요 난 요즘

최고로 평안하니까

 

 

살아가려는 갖은 노력을 무색하게 만드는 환경도 있다. 버틴다는 것이 서서히 자기를 죽이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가진 세상도 있다. 여행사 대표는 모두와 멀어지는 상실을 감내하더라도 떠나야만 했을 것이다. 너무나 잘 살고 싶어서. 


함께 하는 기쁨과 평안한 마음을 동시에 쥘 수 없는 자신을 얼마나 미워했을까. 그런 세계의 질서를 얼마나 미워했을까. 지독한 고독 속에서 또 다른 고독을 선택하면서 자기를 살리려 한 생명력은 얼마나 슬프고 질긴 아름다움일까.

 

 

이름 난 관광지에 나는 살아요 모두와

적당하게 멀어진 곳


우리 사이엔 늘 선선한 바람이 들어요

거리란 그런 것이죠

거리란 그런 것이죠

난 여행지에 살아요

 

 

몸과 마음 끈적하게 밀착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절실한 건 틈일지 모른다. 조금은 외롭더라도, 조금은 무심해지더라도. 그 사이로 부는 선선한 바람, 자유로운 숨이 그 자리를 메꿔줄 것이니까. 그러면 조금 덜 무서울지도 모른다. 거리란 그런 것이므로. 




오매불망 - 문상훈에게


 

 

 

유튜브 채널 <빠더너스>의 호스트 문상훈을 위해 만든 노래다. “모퉁이에 있었던 사람은 서로 알아볼 수가 있어.” 작가 안담은 그를 이렇게 표현했다.


모퉁이가 고향이 되고야 마는 사람이 있다. 그이에게 웃음과 눈물은 그리 다른 언어가 아니다. 웃음은 대개 눈물로 끝을 맺고, 닳고 닳은 눈물은 웃음의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반드시 거두어질 기쁨과 반드시 지속될 슬픔을 인지하는 사람은 그런 기묘한 역학 법칙 속에서 살아간다.


 

한 떨기 꽃과 찬바람에

일렁이는 내 맘 미워요 음

고운 이들 우러러보아도

그 모습 제 것이 아니죠


아아 나는 새벽의 사람

눈물도 후회도 많은

그저 당신 눈에 들고 싶어서

모두에게 말을 걸었던

 

 

모퉁이에 머문다는 건  축축하고 그늘진 고요를 홀로 지키는 지난한 일이다. 웃어주고 봐주는 당신을 감히 초대하지도, 다가가지도 못하는 고독을 매 순간 인지하게 되니까. 마치 누구도 다가올 수 없는 질퍽한 늪지 같은 곳. 무엇보다 자신이 벗어날 수 없는 곳.


그래서 그들은 애써야 한다. 자신의 고독을 이해하기 위해. 그래서 그들은 애써야 한다. 다른 이의 고독을 이해하기 위해. 그래서 그들은 애써야 한다. 여러 빛깔의 고독을 이해하기 위해. 계속해서 애써야 한다. 늪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아이러니하게, 늪지는 그런 방식으로 생명이 모여드는 땅이 되기도 한다. 특유의 짙은 습기로 여러 생명을 머금을 수 있는 물의 요람이 되는 것이다. 안아주고 봐주는 당신의 눈물과 고독을 웃음과 상생으로 품어줄 회복력을 자기도 모르게 갖게 되었으므로. 그런 기적을 일상처럼 거쳐 왔으므로.


 

기다릴게요 그대가

모퉁이를 돌아올 때까지

모퉁이를 돌아올 때까지

모퉁이를 돌아올 때까지

 

   

그녀의 노래에서 문상훈은 결코 모퉁이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슬아는 문상훈이 모퉁이에서 가꿔온 슬픔과 재치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보송한 사랑이 있듯 눅눅한 사랑도 있다는 걸 알고 존중하는 사람은 그런 노랫말을 짓는다. 그렇게 또 하나의 사랑이 세상을 밝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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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는 지금까지 열 곡 정도의 노래를 지었다. 현재 진행 중인 「가녀장의 시대」 드라마 각본 집필이 끝나면 해당 노래들을 앨범으로 발표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그녀가 노래 역시 부지런히 사랑한다는 사실이 안심된다. 이슬아의 노래를 들으면 매번 알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은 너무나 잘 살고 싶다는 것을.


또 다른 이훤이자, 여행사 대표이자, 문상훈으로서 나는 그녀의 선율 속에서 자꾸만 살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사라지고 싶은 마음은 살아지고 싶은 마음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언젠가 우쿨렐레를 들고 노래를 짓는 미래의 나를 상상한다. 그이는 또 다른 거북이와 여행가와 모퉁이 인간을 떠올리며 고뇌하고 있을 것이다. 삶을 닮은 생명의 노래를 짓기 위해 애쓰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또 그저 살아가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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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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